명확한 치과영역은 지켜줘야 치료영역에 대한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가.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치료영역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서로 남의 영역 넘보기가 일상화돼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번 턱관절 치료를 성형외과에서 잠식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다. 치과의사를 고용 또는 공동 개원하는 형태로 영입해 적극적으로 이 영역에 진입하는 것으로 드러나 대책마련을 당부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의계에서 구강질환 치료를 중점화한 신종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어 의외의 복병을 만난 기분이 아닐 수 없다. 한의계에서 최근 일고 있는 구강질환 마케팅은 잇몸질환, 입냄새 등 가벼운 질환들에 대해 한방으로 치료하면 효과가 크고 환자만족도도 90%나 된다는 주장이다. 과거 치과진료 영역의 문제는 구순구개열 같이 구강악안면외과 영역과 성형외과 영역 간처럼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금을 긋기에도 어려운 문제여서 현재는 각 진료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서로 인정하는 치료분야가 돼 있다. 그러나 이 처럼 서로 각기 인정하며 경쟁하는 진료분야는 드문 편이다. 수 해 전 한의계에서 스프린트를 이용한 턱관절 치료를
남을 부러워 하는또는 남들이 부러워 하는 나 유 종 환/한길치과의원 원장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라는 말이 있지요.이전에 생각했던 나의 과거들은 어두움의 연속이었지요.고등학교 3년은 30년보다 길었다. 대학생들이 제일 부러웠고, 밤마다 마음 놓고 텔레비전 볼 수 있는 어머니가 제일 부러웠다.정말 고통스럽고 숨막히는 나날들이 아닐 수 없었다.단번에 대학에 들어왔지만, 치대 6년은 너무 길고 힘들었다. 보조금 받으러 가면 항상 쇠고기 사주시던 개원한 선배님들이 제일 존경스럽고 부러웠다.나도 개원하면 후배들 배터질때 까지 쇠고기 사주고 말꺼야라고 결심했다.(주먹 쥐고 결심)개원 초반에 돈벌이는 시원찮고, 보증선 것은 여지없이 사고가 터졌다.개원한지 10년쯤되어서 집도 있고, 땅도 있고, 차도 있고, 여윳돈도 있는 선배들이 너무 너무 부러웠다. 지금은 개원한지 15년이 넘었는데….내 이름으로된 집도, 땅도 없고, 차는 아직도 1997년식 최신형 뉴프린스 뿐이고 펀드는 반토막나고 엔화 대출한 것은 원금이 1억이나 올라서 쪽박차게 생겼고 이제는 신용대출 5백만원도 안되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버렸다.지나가는
보험 징수통합문제 대책 절실 그동안 말이 많던 사회보험 징수통합이 이제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5월 21일 관련법이 공포됨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일부터 사회보험징수통합실무추진단을 구성했다. 실무추진단의 준비가 완료되면 2011년 1월 1일부터 징수통합이 시작된다. 그러나 법은 이미 통과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징수통합 준비 작업에 들어갔기는 했지만 예상되는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1998년부터 논의된 4대 보험제도 자체의 통합도 문제가 많았지만 징수업무만을 통합할 경우 역시 문제점들이 상당수 노출되고 있다. 우선 정부는 징수통합을 공단에서 할 경우 업무효율화와 징수율 증대에 따른 사각지대 해소를 기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보험 부과기능을 각 해당 공단에 그대로 둔 채 건보공단에서 징수업무만을 통합할 경우 실질적인 업무효율화에 대한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해당 공단에서 보험료를 부과하고 건보공단에서 징수할 경우 가입자의 불편이 예상된다는 지적도 있다. 해당 공단의 보험료 부과기준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가입자가 보험료에 이의 있을 시 징수를 맡은 건보공단과 해당 공단을 번갈아 방문해야 하는 등 오히
그대는 지난 시간의 추억의 집합체이다 얼마 전 대학 졸업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을 하여 오랜만에 많은 대학 동기 동창들의 얼굴을 보고 악수를 나누고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졸업을 한지 벌써 20년이 지나다니! 젊음은 벼락처럼 지나간다고 하더니 친구들의 얼굴에는 20년의 연륜이 때로는 허옇게 바랜 머리칼에서, 원숙한 미소에서, 그리고 때로는 다소 지쳐 보이는 눈빛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게는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만이 아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매년 들어오는 신선한(?) 제자들의 모습에 가만히 20년 전 그 나이 때의 내 모습을 겹쳐서 바라보는 것이다. 자식을 여럿 낳아도 다 제각각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남의 자식들의 모임인 학교의 제자들은 제각각을 넘어 때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지경을 넘는 생각과 행동을 하기도 하니, 그 겹쳐진 풍경은 제자들마다 달라서 그 중첩된 인물화 감상에 발을 딛는 대학 건물과 강의실은 실로 다양한 인물화 전시장이 된다. 연구실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조금 전 만난 제자는 20년 후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VBN_42585 {WORD-BREAK: break-all; font-family:굴림;font-size:9pt;line-height:normal;color:#000000;padding-left:10;padding-right:10;padding-bottom:15;padding-top:15;}.VBN_42585 p, .VBN_42585 td, .VBN_42585 li{font-family:굴림;font-size:9pt;color:#000000;TEXT-DECORATION:none;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42585 font{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97131{font-family:굴림; font-size:9pt;}월요 시론배 광 식 본지 집필위원구강보건의 날을 맞으며1946년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전신인 조선치과의사회(1945.11 창립)에서는, 6월 9일을 ‘구강보건의 날’로 정했고, 금년으로 64회 구강보건의 날을 맞게 되었다. 근세 우리나라에 이와 유사한 날로, 조(전)선치과의사회(1921.10.2 창립)에서 1926년
불황의 늪…길을 찾아야 경기불황의 늪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나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어렵다는 말이 한 숨 섞여 나오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상황을 잘 견뎌 나가는가가 개원가의 화두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5억원 이상 고액채무를 지고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은 62명이며 이 가운데 중 45%인 28명이 치과의사, 의사, 한의사라고 한다. 치과의사 20년 경력의 S원장의 경우 2006년 의원을 확장 이전하면서 3억원을 대출받았다가 경영악화로 빚이 14억원이나 늘어나 회생신청을 냈다. 이렇듯이 올 들어 이들 의료 전문직들은 병의원을 이전 또는 확장하면서 은행대출을 받다가 경영악화로 이자의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지난해부터 불어온 경기불황이 한몫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영악화를 탈출할 수 있는 비결은 없는가? 본지가 최근 연재하고 있는 ‘불황 없는 잘나가는 치과’는 바로 이러한 불황시기에 어떤 방식의 경영방법이 불황을 잊게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환자관리의 프로그램화를 통해 체계
사진 취미 전 사진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대한민국은 사진공화국이라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사진 인구가 정말 많아졌죠. 제가 사진이라는 취미와 인연을 만든 시기는 지금의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사진동호회라고 해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때였죠. 사진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다가 사진에 대한 정보와 카메라에 대한 상식 등을 얻기 위해 작은 사진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남이 찍은 사진을 감상하는 등 온라인이라는 활동 자체가 참으로 재미있더군요. 그렇게 온라인으로 친해진 사람들을 어느 날은 문득 직접 보고 싶어졌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니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사람들 간의 격이 없어지는지 실감했습니다. 흡사 같이 골프 치는 사람들이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듯이 말이죠. 그렇게 1~2년 지나다보니 사람들을 만나면 어느 정도 수준의 토론이란 걸 하게 됩니다. 대개 사진에 관련된 이야기죠. 사진이라는 것은 요즘에 크게 둘로 갈립니다. 전통적인 필름이냐, 아니면 디지털이냐. 그리고 디지털도 여러 갈래로 갈리게 됩니다. 사진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한
弔崩御岩 (조붕어암) 삼가 명복을 빕니다.2009년 5월 23일은 서글픈 날 이었습니다.초여름 가랑비가 산야를 적시는 가운데 비보가 전해졌습니다.가신님의 영혼을 애도하는 눈물 같은 보슬비가 내렸지요.63세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님이 가신 날 이었습니다. 서민정치인으로 일관했던 대통령! 아쉬운 생애를 권위에 연연하지 않고 서민과 함께 정치무대를 만들어 보였던 수승한 평민대통령이셨지요. 참으로 애절하고 아쉽습니다.지나치게 순박한 탓 이었을까요. 아니면 治世의 술수를 외면한 탓 이었을까요.역사의 흐름과 정치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암수가 있음을 짐짓 무시해 버렸기 때문이겠지요.왜 하필이면 생애의 공과를 공개적으로 평가받아야 될 즈음에 침묵으로 대항하려 하십니까.大人다운 풍모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다시는 국정이 변칙적으로 자행되지 않을 방도를 천명하셨어야지요. 숨긴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답답하기만 합니다.허물은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님의 그 깊은 뜻을 어이 헤아려야 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어이해야 하겠습니까. 남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주셨군요. 우선 의식수준을 한층 높여야 하겠지요. 도덕적 양심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이 세상에 괜히 태어났다, 어쩌다가 잘못 태어났다고 한탄하는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개구리 한 마리, 저 날짐승 하나, 풀벌레 하나도 괜히 태어난 게 아닙니다. 태어날 만하니까 태어난 것입니다. 수십억 년 전으로 돌아가서 본다면 인간은 물에서 살다가 겨우 물 밖으로 나왔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돌고 돌아서 지금 인간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생명에 대한 갖가지 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그 과정의 시련과 고난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찰나찰나 죽고 사는 생사의 고비를 넘겼고 때로는 새나 짐승의 몸으로 쫓고 쫓기는 천차만별의 시련도 겪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되었는데 그런 반복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차원의 높낮이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인간의 몸을 받아 나와서 나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차원의 승화를 도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과거 미생물에서부터 수없는 나날들을 거치면서 스스로 애쓰고 노력한 끝에 진화하고 또 진화해서 인간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어찌 잘못 태어났다든가, 원치 않는 인
치과계와 노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갑자기 서거하는 믿기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서민 대통령으로 칭송 받기도 하고 반면 탄핵 대통령이 될 뻔하는 등 부침을 거듭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보건의료정책에 대해 무엇을 남겼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업적과 실정에 대한 평가는 훗날 국민과 역사에 의해 이뤄지겠지만 치과계를 비롯한 의료계의 시각은 여러 측면에서 애증이 교차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치과계로서는 때로는 협력자로서 때로는 대립구도로 양극을 오갔었다. 치협은 지난 2003년 대통령 재임초반에 참여정부 취지에 동참하는 의미로 저소득층 노인 1만 5000명에 대해 무료진료사업을 펼쳤으며 2006년에는 영유아 12만명과 노인시설 8400개소 24만명의 노인에게 구강검진과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참여정부와의 협력관계를 돈독히 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치과계와의 협력관계는 2007년 재임 막바지로 가면서 최악의 관계로 돌변했다. 당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입성하자마자 의료법 전부개정안을 만들었으나 전
Turning Point 박혜미여주대학 치위생과 3학년 고등학교 때 진로학과를 선정할 땐 정말 멋모르고 선택했던 치위생과. 하지만 치위생과를 선택한 것이 나의 터닝 포인트라는 것은 학교를 1년씩이나 다니고 난후, 대학교 2학년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 1학년 때는 학과에 적응도 못하고 많은 방황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차 치위생과의 매력을 느끼고, 치과위생사가 단순한 치과 진료실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학과에 더 많은 애정을 쏟았던 것 같다. 치위생과에 다니면서 나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배우고, 나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온 것 같다. 그 중에 하나가 봉사활동에 관한 나의 생각들이다.봉사활동은 귀찮은 일,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이렇게 부끄럽고 손발이 오그라드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을 해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봉사활동은 가짜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진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봉사활동은 내 인생 제2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아무것도 모르고 치위생과에 들어온 나를, 1학년 때 학교에서 방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