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심재철 의원이 실손형 민간보험의 보장범위 제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민간보험사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상품은 실손형과 정액형이다. 이 가운데 치료비 전액을 보장하는 실손형의 경우 그 보장 한계가 없을 경우 과도한 의료이용이 예상돼 결국 공보험 재정 악화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그 법안의 취지다. 지난 정권부터 논의돼 온 민간의료보험 도입 문제는 현 정권이 공식화함으로써 본격적인 논쟁이 불붙었었다. 즉 정부는 공약사항으로 건보의 보장성을 80%까지 확보하겠다는 방안을 내세웠으나 재원마련을 국고지원을 올리든지 보험료를 올려 추진해야 하는데 둘 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 민간보험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병협을 제외한 의료계나 시민단체들이 반대해 왔던 것은 민간보험이 활성화될 경우 건보 가입률이 떨어지고 이어 재정악화로 이어져 시간이 흐르면 건보 보장성이 점점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민간보험사 입장에서 의료비 지출이 높을 수 있는 가입자를 공보험에 떠넘길 수 있으며 동네의원은 민간보험 환자로부터 외면받게 돼 병원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지고 아울러 병원들은 수가인상이나 규제완화를 통해 경영난 해소에 주력
지난 여름, 한국에서 개최할 국제학술대회의 준비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Skype로 전화한 저널 편집장은 시작부터 집회이야기를 꺼낸다. ‘쇠고기 수입문제로 오늘 집회가 있었다는데, 자네도 갔는가? 사람들이 또 다쳤는가?’ 치의학교육관련 워크숍을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하던 최근 어느 날, 서울에 살고 있는 절친한 외국인 교수가 BBC World 뉴스 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왔다. ‘용산에서 시위하던 사람들이 죽었다는데 들었나?’ 바쁜 일에 골몰한 서울사람조차 알기도 전에 서울 도심의 한 복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전 세계인들에게 생방송된다. 이제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만 23만명. 한국은 이제 국제화된 도시임에 틀림없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연말에는 태국에 갈 일이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시위대에게 점령되었던 스완나폼 공항은 이미 질서가 회복돼 있었고, 특히 공항에서 순서대로 손님을 태우고 미터대로 가격을 부르는 택시기사들은 방콕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안겨 주었다. 또한, 여행 내내 만났던 사람들의 친절함과 예의바름은 태국사람들의 캐릭터와 시민의식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게 했다. 일정의 마지막 날. 우리는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VBN_42585 {WORD-BREAK: break-all; font-family:굴림;font-size:9pt;line-height:normal;color:#000000;padding-left:10;padding-right:10;padding-bottom:15;padding-top:15;}.VBN_42585 p, .VBN_42585 td, .VBN_42585 li{font-family:굴림;font-size:9pt;color:#000000;TEXT-DECORATION:none;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42585 font{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97131{font-family:굴림; font-size:9pt;}아마도 아이들 공부에 대한 관심이 없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독서운동을 오랫동안 하면서 느끼는 것은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이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도서관에 열심히 다녔던 학생이 성적이 올랐다고 좋아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당장 성적이 오르지 않더라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눈에 띄게 성적이 올
어느 광고 카피를 보니, 일생 동안 웃는 시간이 21일 밖에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통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차이가 있어 봐야 오차 범위 안이다.왜 그럴까. 우리의 삶이 즐거운 것보다는 그렇지 못한 시간이 많게 된 것은 왜일까?사실 아주 어렸을 적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로서야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들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고 하지는 못했지만, 즐거운 나날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자신에게 허락된 범위 내에서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허용된 범위는 비할 수 없이 늘어났지만, 져야 될 짐의 무게 또한 비할 수 없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에서 볼 때, 어른이 즐겁지 못한 이유는 짐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짐을 벗어 던지고 산 속으로나 들어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한가지 해결책일 수 있다. 속세를 떠난 승려들이 평생을 그곳에서 보낼 수 있는 것도, 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예수님도 자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따라 오라"고 이야기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가벼운 마음
경제상황이 어렵다고 한다. 일부 기업조직은 존립을 위하여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 감원을 하거나 임금 일부 삭감 내지 반납을 통하여 비용절감 등을 도모하기도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감원보다 임금의 일부를 삭감 내지 반납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견해 차이는 있을지라도 불가피한 상황에서 위기 극복의 여러 방법 중 자주 등장하는 방법이다. 임금을 삭감 또는 반납은 생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여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임금삭감은 기존의 임금 수준을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임금삭감은 하향 조정된 새로운 근로조건 결정을 의미한다. 임금삭감은 각 회사마다 임금결정 방식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여야 한다. 임금관련 규정에 의하여 호봉제나 그에 준하는 제도로 임금을 결정하는 사업장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절차에 따라 근로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절차를 거쳐 임금관련 규정변경을 통하여 임금을 삭감하여야 한다. 단체협약이나 임금관련 규정 등에 의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연봉 내지 월급을 적용하는 사업장은 근로자와 사용자간의 합의를 통하여 임금을 삭감하여야 한다. 이때 합의형식은 새로운 근
최근 정부와 언론 등 사회 각처에서 다문화 가정 지원과 관련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이 이젠 우리나라 국민의 일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어 이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이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하기 위해 국가나 사회가 나서서 적극 지원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현재 약 11만8400여명의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한국인과 결혼해 다문화 가정을 이룬 수는 약 3만 8000여 건이다. 이는 전체 우리나라 혼인 중 무려 11%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 2005년 전체 혼인 건수의 13.6%인 약 4만3000여 건에 비하면 약간 감소된 수치이긴 하다. 문제는 이들 다문화 가정들이 사실상 경제 사회적으로 비교적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나라 언어와 습관 등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곤란을 겪는 이들이 상당수이며 이들 자녀들에 대한 교육이나 사회진출에서 오는 좌절 등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3월 21일에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제정하고 정부와 지자체 등이 나서서 다문화 이해교육과
H 원장 결혼식 때 특급 호텔에서 11코스의 정찬을 먹고 향기 좋은 와인을 한 병이나 마셔서 배는 부르고 취기도 적당히 오르는데 뭔가 허전하고 덜 채운 듯 한 느낌은 뭘까?방배동 유명한 일식집에서 싱싱한 회와 여러 가지 음식 그리고 매운탕에 소주를 한 병이나 마셔도 역시나 배는 불록하고 목구멍까지 음식이 가득한데 아직 뭔가가 그리운 건 내안에 걸신이라도 살아서 인지. 훼밀리 레스토랑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켜 배불리 나눠 먹고 맥주를 1000CC 정도 마셔도 아직은 뭔가가 그립다. 많이 먹어서 불유쾌한 느낌만 들고 몸에 좋게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위장만 혹사시켜 고단한 연동운동만 가중시켰다는 죄책감마저 든다.외식을 많이 할수록 수명이 짧아진다는 어느 영양 학자의 말이 공감이 간다. 좋지 않는 식자재, 너무 많이 사용하는 조미료도 문제지만 더욱 중요한건 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 결여라 할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음식을 만들었지 사람을 살지게 하기 위해서 만들진 않았으리라. 모처럼 한가한 휴일오후에 나를 위한 식사를 차려봤다.가장 중요한건 밥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찰기 좋은 밥만 보면 나는 군침이 돌고 먹고 싶어서 정신이
어떤 분이 초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데 엄마 속을 무척이나 썩이고 학교에서도 온갖 말썽을 다 피워 불려다니기가 바쁘고 심지어는 다른 학생의 부모들까지 찾아와서 항의한다며 하소연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 엄마, 나도 안 그러려고 하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안돼요.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했다고 합니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하는 그 부분을 우리는 업식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에 지나왔던 여러 가지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내 무의식의 저변을 견고하게 형성시켜 놓고 있다가 때가 무르익어 과거의 인연들을 만났을 때 연기처럼 스멀스멀 그 업식들이 풀려나와 이런 일 저런 일들로 내 앞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좋은 일(善業)도 하고 나쁜 일(惡業)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한 업(業)을 지은 결과는 좋은 일로써 오고 악한 업(業)을 지은 결과는 좋지 않은 일로써 닥쳐오게 됩니다. 어려서 잘 알지도 못하고 저지른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본인의 사정일 뿐이고 그 아이가 저지른 일로 인해 고통 받은 상대방은 그것을 은연 중에 마음에 새겨두게 되고 그 마음이 녹지 않았다면 언젠가
1997년이 되면서 보건복지위원회 주변에 묘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구강보건법이 의원입법으로 곧 상정될 것이라는 것이다. 의료법·약사법 등이 완비되어 있고 여타의 보건의료관련법에 치과분야에 관한 사항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 굳이 치과를 분리해서 별도의 법을 만들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치과의사의 권익을 위해서 구강보건법이 제정되면 여타의 의료분야에서도 단독법을 제정하려 할 것이고 도미노현상으로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되면 많은 예산과 인원이 보충돼야 되기 때문에 치과인을 위한 구강보건법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속설에 분연히 대응하였다.구강보건법은 치과의사를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보편적인 일반법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생활을 하는 시민의 육체적인 건강이나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 구강(口腔 : 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느냐. 先賢(선현)의 말씀에도 病從口入(병종구입) 禍生口出(화생구출)이라는 금언이 있다.모든 영양소(음식)를 받아들이는 구강(입)이 건강하고 입을 통해서 나가는 말이 사리에 맞아야 文化市民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구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모든 병이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 나가는 망언이 화를
“현행 건강보험 수가제는 사실상 정부 고시제다.” 이런 주장이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건강보험 수가 결정체계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정책토론회에서 주제발표 과정에서 지적됐다. 즉 정부가 이미 수가를 정해놓고 관련 단체와 협상을 하다가 결렬되면 이를 근거로 고시하기 때문에 나온 지적이다. 이 말은 사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제도의 모순점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수가는 시작점부터 저수가로 일관돼 왔다. 보험역사가 30여년이 흘렀는데도 변한 것은 없다. 그동안 정부는 의약계의 급여 수가를 최대한 줄이는 한편 선심성 보장성 강화를 계속 확대해 오고 있어 누적된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토론회 주제발표에서는 이러한 현행 수가제의 문제점은 결국 전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비급여 진료에 전력케 하는 기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도 지적하고 있다. 정당한 수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수가체계로만은 경영난에 시달리는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러기에 의료기관들은 새로운 술식 및 새로운 의료기기 등을 통해 비급여 항목의 치료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밝혔지만 이제 우리나라 건강보험수가
어려서 방학 때면 늦은 밤 시간까지 길 건너 교회에서 ‘지선상의 아리아’, ‘유머레스크’, ‘찌고이네르바이젠’같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교회 목사님 아들이 방학 때면 시골집에 내려와 늦은 밤 시간까지 연습을 했었던 모양인데. 제가 직접 그 형아를 찾아가서 그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좋은데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냐고 물었더니 바이올린만 사오면 그냥 가르쳐 준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바이올린 사 달라고 했는데 사주시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악기를 배울 기회가 없어지고, 음악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어요. 고등학교 때 짝이 밴드부였는데 플루트가 전공이었어요. 그 넘, 그 악기 은이라며 만지지도 못하게 했어요. 나도 정말 은이라고는 생각도 안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은이 맞았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플루트 케이스에 찍혀 있던 야마하 글자가 지금도 선명하게 생각나네요.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플루트를 가르치는 학원에 들어가게 되 게시판에 50에 가까운 중 늙은이인데 지금 나이에도 플루트를 배울 수 있냐고 글을 올렸더니만 아무때나 방문하라고 해서 발을 디디게 되었어요.내게 플루트와의 인연은 이렇게 맺어진 것 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