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쓰리엠 치과교정사업팀 마케터로 일하게 된지 벌써 6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Lean Six Sigma부서에서 일하다가 전공과는 상관이 없는 직군인 마케터로 옮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MBA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선배에게 상담을 하기로 하고, MBA를 먼저 이수한 선배에게 MBA가 도움이 되는지, 된다면 어느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어떤 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 자문을 구해보았습니다. 마케터로서 MBA를 도전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꼭 도전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학교는 집 가까운 곳으로 선택하고 준비사항으로는 체력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조금은 의외의 답변이었지만 MBA과정을 이수하면서 선배가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금요일 저녁 4시간 토요일 8시간 수업을 듣고, 매 수업마다 Project 과제를 수행하고 졸업 논문(Business Project)까지 써야 하는 과정에서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였고 토요일 아침에 지친
요즘 주말에 하는 드라마 중 ‘참 좋은 시절’이라는 드라마가 있던데… 드라마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얼마나 좋은 시절이길래. 내용은 잘 모르지만 현실이 많이 피곤한 사람들이 먼 훗날 보았을 때 지금의 현실을 참 좋은 시절로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는 우리 모든 이들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에 대해 그려지고 있다.흠… 나도 참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참~좋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회상할 만큼 나도 나이를 먹은 건가? 씁쓸함과 함께 내가 그 동안 먹어놓은 나이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정말 참 좋은 시절이 있었다.어릴 적 철 모르고 나댔고 딸이 귀한 집안에 태어나 무한한 사랑과 관심 속에 유년기를 보내며 정말 세상이 내 것과 같이 느껴졌었는데… 크고 작은 사고들도 많이 쳐서 부모님 속도 많이 썩히고 정말 철이 없었던 시절을 보낸 것 같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년기를 비슷하게 보내긴 하겠지만 철이 온전히 들면서 내 인생에 책임을 지려 노력하는 지금에 다다르기까지(아직 철이 완전히 들었는지는 모르겠다).정말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참 좋은 시절’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 편으로 그 좋은 시절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겨울과 봄을 오가던 변덕스럽던 날씨가 어느새 또 바뀌어, 이제 정말 여름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5월이다.매일 아침, 저녁으로 병원과 집을 오가며 햇빛 따사로운 시간대에는 작은 진료실에 틀어박혀 환자를 돌본다. 이 단조로운 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10년. 이런 내게 이동진료는 작은 변화이자 기쁨이 되기에 충분했다.2005년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2008년 처음 장애인 이동진료 차량이 병원에 생겼다. 큰 대형버스를 개조한 이동진료 차량에는 치과용 체어 두 대와 작은 진료실이라는 말이 어울리게끔 다양한 장비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저 병원에 앉아서 이곳을 찾는 환자들을 기다리던 것에서 벗어나, 치과진료가 필요한 더 많은 장애인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발걸음이 시작된 것이다.서울 시내에는 생각보다 이동진료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곳이 많이 있다. 장애아동들을 위한 특수학교, 서울시립정신병원, 장애인 생활시설 그리고 다른 시립병원들과 함께 공동으로 찾아가는 쪽방촌 및 노숙인들까지…. 긴 시간동안 이동진료를 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는 서울시립축령정신병원이다. 축령산 자연휴양림을 옆에 둔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 자리 잡고 있는 병원
연세대 치위생학과에 서류를 넣고 인터뷰를 보고 최종합격 결과를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을 앞두고 있다. 국가고시도 준비하며 병원 실습도 하고 많은 인연을 만나면서 뜻 깊은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바쁘고 분주하지만 모교의 학생으로 지내는 하루하루의 나날이 감사함의 연속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나는 호주에서 치과기공학과를 졸업 후 한국에 오게 되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일과 공부를 동시에 했는데,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또한 치기공사로 2년을 근무하며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배우고 일하면서 뭔가 내가 이것을 통해 남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의료봉사에 관심이 생겼다.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 직장도 다니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몸은 피곤하고 지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너무 좋았고 이런 예배 시간이 나에게는 한 주를 힘껏 달릴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호주에서 졸업 후 바로 의료봉사를 가려했으나, 그 때 가는 것보다 치위생학에 대한 지식을 익혀서 사람들의
계절의 여왕인 푸르른 5월에는 항상 가족, 사랑, 감사, 은혜라는 긍정적인 단어들이 함께 하는 달이다. 그러나 이번 5월은 유독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이 크다. 아마도 지켜주지 못한 못다 핀 어린 꽃들에 대한 미안함은 전 국민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일시정지’ 상태가 길어지지 않기를 기도한다.하루하루 주어진 삶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더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마인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오늘은 스쳐가듯 한 페이지에 실린 글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감과 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준비하려고 한다. 나는 현재 치과병원에서 여러 가지 업무를 하고 있는 기획자이다. 스스로는 메디컬 브랜드, 마케팅, 홍보, 전략, 의료관광 등 여러 가지 업무를 맡고 있지만, 한 단어로 말하면 ‘잡케팅(잡다한 모든 마케팅)’이라 부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양한 일들 중에 스스로 가장 뿌듯해 했던 ‘스토리’ 하나를 들려주고자 한다.치과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은 치과위생사이다. 치과의사 다음으로 국가에서 주는 ‘라이센스’가 있는 직종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부심(Pride)이 강할 수 밖에 없
사람들이 천형이라 부르는 한센병. 과거에는 나병, 심지어 문등병이라 칭하며 천대와 멸시를 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한센인은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우리 인간사에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왔다.그러나 내가 가족같이 생각하면서 누구보다 더욱 사랑했던 이들. 오직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사는 이들. 많은 사람에게 접근하기 두려운 대상일지 모르지만, 오직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사는 이들. 이번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며 누구보다도 많이 울고 아파했던 이들 또한 한센인이다. 어렸을 때 한센병에 걸려 이웃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았고, 부모님과 생이별을 경험한 아픔 때문에 더 슬펐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친다.과연 우리가 한센인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단지 육체적 건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인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살고 있기 때문인가?소록도는 한때 천형의 땅이라 불렸던 곳이다. 단지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교육도 받을 수 없었다. 가족과 일가친척, 심지어 살던 동네에서 추방당했던 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본인의 이름과 호적이 없어지고 새로운 이름이 생겼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다. 사
요즘 가족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캠핑은 직장과 일터에서 지친 아빠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일등공신이다. ‘1박 2일’과 ‘아빠 어디가!’라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캠핑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겐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는 병만 족장처럼 든든하고 멋진 모습으로 변신하는 아빠의 모습을, 캠핑을 싫어하는 아내에겐 육아와 살림에서 벗어나 모처럼 자유로운 시간이 허락된다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져서 처음 캠핑을 시작하게 되었다.캠핑장비 일체를 매장에서 구입한 친구와는 달리, 나는 캠퍼들이 많이 가입했다는 블로그와 카페를 뒤져가며 일단 필요한 장비들의 리스트를 만든 후 하나씩 구입해나가기로 했다.캠핑을 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지인들에게 캠핑장비들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더니, “아니 깨끗하고 시설 좋은 펜션이나 호텔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캠핑 장비를 사요?”, “캠핑가면 남자가 다 해야 하는데 남자만 생고생해요!”라며 다들 뜯어 말리는 분위기다.주말이 되어 아들과 함께 다양한 크기의 텐트가 전시돼있는 대형캠핑용품매장에 갔다.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비는 매장 안에는 나처럼 캠핑을 막 시작하려고 텐트며 여러 장비
세월호 사태로 일손도 잡히지 않고 머리나 마음까지도 뒤숭숭하여 나라 전체가 집단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아이들부터 건져내야 할 것인데 구조에 애쓰고 있는 노고에도 불구하고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걱정입니다. 아이들 부모님들의 마음이야 숯검정이 되어 어디 남아 있기나 하겠습니까?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9·11 사태만큼이나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할 말을 잊게 만드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참담한 현 주소이며, 우리 사회의 현 주소라 여겨집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안에 있는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사는 형편은 좀 나아졌는지는 모르지만 경제적인 한 곳으로 너무 편향되는 경향이 있어 다른 모든 부분을 소홀하게 됨으로써 얽히고설킨 부조리 속에서 마땅히 터져야 할 것이 세월호 사태라는 괴물의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우리 모두가 챙겼어야 할 일들을 챙기지 않고 우리자신들의 일에 무관심하고 스스로 방기한 탓입니다. 잊어버리기 잘하는 우리 국민들은 한동안 어수선한
삼각산은 인수봉-백운대-만경대가 보이는 모양 그대로 여서 보기만 해도 그냥 알 수 있는 산이다. 세 봉우리가 세 개의 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쪽과 서쪽에서 보면 그 모습과 이름은 꼭 들어맞는다. 미아리에서 소아시절을 보내고 돈암동과 안암동에서 청소년과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눈만 뜨면 보던 산이 삼각산이다.일제강점기에 어머니께서는 나를 업으신 채 삼각산 기슭에 올라 할당받은 송진을 채취하셨다. 등에 업혀 곤히 자다가 고개를 들다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질 번 한 적도 있다. 그 송진은 일제가 전쟁에 쓰려고 모았다고 한다. 미아리 시장 앞, 비포장 신작로 8·15에 감격적인 태극깃발의 물결이 넘치던 때도 삼각산은 우뚝 솟아 있었다.이 삼각산이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북한산으로 바뀌어 불리게 됐다. 어인 이유에서인지 정부, 국립공원관리공단, 경기도, 서울특별시 등 모든 기관에서조차 북한산이라 하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 늘 불만스러워 나는 ‘삼각산, 삼각산’하면서 지나고 있다. # ‘삼봉’은 도담삼봉이 아니다 원고청탁이 오면 우선해서 삼각산관련 글을 쓰고 있다. 한 문예지에 날짜를 맞추기 위해 제목을 ‘삼각산으로 가자’로 정해 놓고 끙끙거리고 있
작년 10월 크로아티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지금이야 ‘꽃보다 누나’라는 방송 덕에 크로아티아가 유명해졌지만 우리가 크로아티아를 가기로 결정한 것은 ‘선택의 불운(?)’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사실 처음 신혼 여행을 체코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큰 가스폭발이 일어났고, 어쩔 수 없이 터키로 결정했더니 벌룬투어 열기구가 떨어지고,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어쩔 수 없이,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아 조마조마 크로아티아로 결정.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크로아티아는 아무 일이 없었다. 지금에야 크로아티아와 관련된 많은 여행 서적이 출판되었지만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중간정착지로 잠시 머무는 여행객 정도이지 크로아티아만 다녀오는 여행객은 흔치 않아 여행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다. 크로아티아에 다녀온 결혼 선배들의 블로그나 까페 등에서 어렵사리 정보를 수집해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와 플리트비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를 코스로 잡았다. 여행을 다녀온 뒤 ‘꽃누나’를 보고 우리가 제일 놀라고 어쩜 저럴까 했던 점은 배우들이 크로아티아의 음식을 먹지 않고 숙소에서 한식으로 해결했다는 점이다. 크로아티아의 음식들은 한국 음식과 꼭 닮았다. 소고기부터
영화 ‘어바웃 슈미트’를 보면, 볼품없이 나이 들어가는 은퇴한 노신사의 절망과 우울이 등장한다. 자신의 쓸모없음을 한탄하고 점점 밉상이 되어가는 그. 그런 노년을 변화시킨 건 먼 나라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받은 아이들의 편지다. 영화는 거기서 끝이 나지만, 그가 그를 행복하게 하는 ‘나누는 삶’을 살아가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인정받는 것, 쓰임이 되는 것 모두 중요한 행복의 조건일지 모른다. 그래서 ‘봉사’, ‘기부’, ‘나눔’같은 단어들을 실천하는 이들은 나눔의 기쁨을 알고 계속 하게 된다.나도 열아홉 살에 처음 봉사동호회에 나가서 나눔의 행복을 맛본 뒤 틈틈이 봉사활동과 작은 기부들을 했었다. 꼭 드러내고 싶지도 않을 만큼 너무도 미약했던 활동들이어서 티가 나지도 않았지만, 여유가 생기면 승냥이처럼 나를 ‘봉사자’, ‘기부자’로 만드는 기회를 찾았다. 얼마 전 250km 요르단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면서도 그랬다. 내가 좋아서, 내가 행복하려고 떠나는 길에 ‘나만 행복할 수는 없지, 좀 더 의미 있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스마일재단의 많은 사업들 중 하나에 지원하는 캠페인을 벌인 거다. 1만km를 달려 1km당 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