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은 인수봉-백운대-만경대가 보이는 모양 그대로 여서 보기만 해도 그냥 알 수 있는 산이다. 세 봉우리가 세 개의 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쪽과 서쪽에서 보면 그 모습과 이름은 꼭 들어맞는다. 미아리에서 소아시절을 보내고 돈암동과 안암동에서 청소년과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눈만 뜨면 보던 산이 삼각산이다.
일제강점기에 어머니께서는 나를 업으신 채 삼각산 기슭에 올라 할당받은 송진을 채취하셨다. 등에 업혀 곤히 자다가 고개를 들다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질 번 한 적도 있다. 그 송진은 일제가 전쟁에 쓰려고 모았다고 한다. 미아리 시장 앞, 비포장 신작로 8·15에 감격적인 태극깃발의 물결이 넘치던 때도 삼각산은 우뚝 솟아 있었다.
이 삼각산이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북한산으로 바뀌어 불리게 됐다. 어인 이유에서인지 정부, 국립공원관리공단, 경기도, 서울특별시 등 모든 기관에서조차 북한산이라 하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 늘 불만스러워 나는 ‘삼각산, 삼각산’하면서 지나고 있다.
# ‘삼봉’은 도담삼봉이 아니다
원고청탁이 오면 우선해서 삼각산관련 글을 쓰고 있다. 한 문예지에 날짜를 맞추기 위해 제목을 ‘삼각산으로 가자’로 정해 놓고 끙끙거리고 있을 때다. 이런 광경을 보던 경향신문 문화부장을 역임한 조운찬 기자가 내게 e-메일로’정도전의 호 ‘삼봉’은 도담삼봉이 아니다’를 보내주었다. 그는 정도전의 호 ‘삼봉’이 단양팔경에서 유래했다는 통설에 의문을 품고서 자료를 조사하던 차에 삼봉이 삼각산을 가리킴을 밝혀냈다. 삼각산이라는 명칭이 고려말~조선초기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얘기다.북한산둘레길 왕복 트레킹을 끝내고 서울둘레길 8구간 중 한 구간만 걸으면 끝나게 된다. 서울둘레길을 가면서 언덕만 오르면 삼각산이 보인다. 서울둘레길을 돌면 서울의 발전상이 한눈에 확확 들어온다.
아울러 서울둘레길은 태고부터 삼국시대-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현장학습지이기도 하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 경복궁과 도성 및 사대문을 설계하고 창건한 정도전의 역사를 알게 된다. 조선개국초기에 일진광풍을 일으켰던 이방원, 조선3대 태종이 묻힌 헌인릉은 서울둘레길 제4구간인 대모산 남측에 자리해서 서울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요즈음 KBS-TV에서 역사드라마 ‘정도전’이 방영되고 있다. ‘대장금’이후에 처음으로 오랜만에 ‘정도전’에 심취해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밤마다 본다. 극중에서 정도전을 부를 때면 그의 호 ‘삼봉’를 쓴다. 그럴 때마다 삼각산이 떠오른다. 이 대목에서 조 기자의 글을 인용해 보자.
“삼봉재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했다. 오랫동안 삼각산 아래 살았던 정도전은 삼각산과 한강을 훤히 꿰뚫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봉재는 권력자가 철거했고 정도전은 부평으로 피해갔다가 거기서도 지내기가 어려워지자 김포로 옮겼다. 정도전이 정착한 곳은 삼각산 밑이다. 삼봉 정도전과 삼각산을 알 수 있는 시가 있다.
(1) 삼봉에 올라
홀로 있다가 먼 그리움이 일어나 / 端居興遠思(단거흥원사)
삼봉마루에 올라 / 陟彼三峰頭(척피삼봉두)
서북쪽으로 송악산을 바라보니 / 松山西北望(송산서북망)
높은 산에 검은 구름이 떠 있네 / 峨嵯玄雲浮(아차현운부)
그 아래 벗님 있어 / 故人在其下(고인재기하)
밤낮으로 어울려 놀았지 / 日夕相追遊(일석상추유)(하략)
(2) 산중(山中)
하찮은 나의 터전 삼봉 아래라 / 弊業三峰下(폐업삼봉하)
돌아와 송계의 가을을 맞네 / 歸來松桂秋(귀래송계추)
집안이 가난하니 병 수양에 방해롭고 / 家貧妨養疾(가빈방양질)
마음이 고요하니 근심 잊기 족하구려 / 心靜定忘憂(심정정망우)(하략)
삼봉 아래에 기거하는 정도전이 개성에 있는 벗과 나눈 두 편의 시에서 삼봉은 삼각산이 분명하다. 삼각산이 서울에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서울이라는 명칭이 삼각산(三角山)의 삼각(三角)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서는 三→ 삼→ 세→ 서 (예: 서너 사람, 서네 사람.)
울은 角→ 뿔→ 불→ 울
위처럼 발음이 변화해 서울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
# 삼각산의 이름과 명예 원복돼야
삼봉 정도전이 설계한 한양, 서울의 삼각산은 의연하다. 오늘날 우리나라 거의 모든 지도에는 삼각산의 세 봉우리인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가 북한산이라는 한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로 표기돼 있다. 삼국시대의 한 시기에 한(漢)은 한강이고 한산(漢山)은 한강 유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북한산은 한강 북쪽 지방이란 뜻이다. 삼국시대의 한 시기에 행정구역으로 북한산 또는 북한산주(state)라 하였을 뿐, 역사 속에 장기간에 걸쳐 삼각산이라 하여왔다. 조선시대의 많은 문집과 지리서에도 삼각산으로 돼있다.
정도전의 호 삼봉은 도담삼봉이 아니고 삼각산의 삼봉으로 밝혀진 마당에, 삼각산의 이름과 명예는 원복 돼야 한다.
서울은 아름답고 삼각산은 서울의 상징이다.
이병태 대한치과의사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