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국방부는 국회국방위원회에 ‘국방현안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국방현안보고 내용에 의하면 전입신병 즉, 일병·이병에 실탄대신에 공포탄만을 지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10일 경기도 가평군 육군 모 부대에서 이모 이병(20세)이 동료 2명에게 실탄을 발사하고 무장 탈영한 사건을 보고 그 후속대책으로 긴급 마련한 대안(代案)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軍)생활 적응기에 있는 신임병에게는 공포탄만을, 함께 경계근무를 서는 상병·병장에게는 공포탄과 실탄을 함께 지급한다는 개선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국방부 개선방안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무사안일주의에서 비롯된 소치다.군(軍)의 존재가 무엇인가? 강한 훈련을 통하여 엄정한 군기(軍紀)를 확립하고,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침입자나 적을 분쇄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군(軍)의 특수한 조직의 본질이 아닌가?총기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군(軍)의 규율이 문란하기 때문이다. 군(軍)의 규율이 문란하다는 것은 병사들에 대한 확고한 군(軍)의 존재가치와 사명감에 대한 확고한 교육이 부족한 것을 의미하며, 결국 강한 안보훈련교육이 취약함을 의미한다. 군기(軍紀)가 문란하다는 것
참된 진료가 이것이고여기서 얻어지는 마음의 기쁨은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고 보람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심지어 열대야로 잠까지 설치는 진정한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런 무더위에 나는 몇 주 전에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던 홍천 삼생마을 계곡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최초에 이 여정이 시작된 계기는 (주)모아치과네트워크와 한국방송공사(KBS)가 뜻을 같이 해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는 ‘싱싱 일요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서 이었다. ‘一社一村’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방송공사에서 도시의 사람들과 농촌의 사람들이 자매결연을 맺고, 이를 통하여 도시 사람들에게는 편안한 휴식과 농촌체험을, 농촌사람들에게는 지역 특산물 소개와 농촌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에 네트워크에서 의료봉사까지 병행하면 좋지 않을까하고 제안을 했더니 담당 PD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진행을 서둘렀던 것이다. 7월의 마지막 주말인 29일 새벽 5시부터 나의 홍천 여행기는 시작되었다. 잠이 덜 깬 딸아이를 부여잡고 짐들을 하나하나 챙기면서 마음속으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어제까지만 해도 강원도 2차 호우 피해가 심각하다는 뉴스를 들은 터라,
최근에 이스라엘이 레바논 지역을 공격하는 장면이 연일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민간인 사상자도 많이 발생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가와 전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독 이방인을 경멸하고 싫어하는 대목이 성경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남쪽 유대에서 북쪽 갈릴래아로 갈 때 이방인의 땅,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지 않고 두배나 되는 먼 길을 돌아다녔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접촉은 금기시 됐다. 그래서 성서에 보면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직접 들어가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시다 더위에 지친 피곤한 몸을 쉬기위해 우물가를 찾으셨다.(요한 4장 참조) 그때 예수님은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건넸다. 보통으로는 이방인과 말하는 것이 금지됐던 당시의 관습으로 보면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래서 여인은 “당신은 유다인이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왜 유다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서로 적대적으로 상대 했을까?지금의 이스라엘 전체
최근 모 손해보험회사는 이달 7일부터 모 보험상품의 특약 가운데 고액진료비(식도암, 췌장암 등 진료비가 많이 소요되는 암)가 소요되는 암을 진단받을 때 보험사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는 보험금 한도액을 3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낮췄다고 밝히고 있다. 또 다른 손해보험회사는 지난 6월부터 암 수술 1회당 최고 5백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상품의 담보특약 판매를 중단했다.또한 지난달부터 생명보험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이 암 전용보험 판매를 중단한 데 이어 대한생명과 교보생명도 별도의 암 보험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보험회사들의 보험상품의 판매중단, 폐지 혹은 보험금 한도액 축소와 같이 보장범위를 줄이는 조치는 기본적으로 암 발병률이 증가함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클 것으로 보인다. 즉 보험회사들이 최근 폭증하는 암발병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암으로 진단 및 치료받은 환자는 2004년 36만3천8백63명으로 2000년보다 66.3% 가량 급증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한 사전인식이 쉽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보험가입자의 역선택으로 인해 보험회사의 보험재정 안정성이 위협
1924년 4월 경성치과의학교 임상실습은 총독부의 이비과의 진료실의 일부를 빌려 시작했다. 이것은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의 부재중에 일이었다. 1923년 10월 1일 나기라 다쓰미는 고베(神戶)를 떠나 배로 서양 여행을 다니고 1924년 6월 귀국했기 때문이었다. 경성치과의학교 임상실습은 의학전문학교 시료 담당에서 먼저 도움을 주었다. 시료환자용 기계 2대를 빌려 썼고 보철은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보철을 희망하는 사람이 가끔 있었기 때문에 하루의 수입이 100원 정도가 된 경우도 있었다. 환자는 학생에게 할당됐고, 학생이 환자를 데리고 왔다. “부속의원을 어디에 만들까?” 야오 타로(失尾太郞)와 요시다 야고에몬(吉田彌五右衛門)은 사무관의 도움을 받아 이비과의 진료실 일부를 빌리고, 부속의원을 야기(八木)치과상점 치료의자 3대로 시작했다. 그 때 토미다 기사구(富田儀作)는 황금정 1번지에 있었다. 수차례 토미다 기사구의 집에도 갔었고, 그 사이 다소 돈도 받아놓지 않으면 안 됐다.오카다 시로(岡田四郞)가 부속의원의 주임으로 부임했다. 기공실은 그 아래편에 야오 타로의 연구실를 사용했다. 그 방에 있던 2대의 연구대는 기공대가 됐다. 하루 5명이나 10명 정
최근 정부가 건강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의 부과·징수 업무를 국세청 산하기관으로 일원화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찬반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4대 보험이 1964년부터 1995년까지 차례로 도입되면서 징수근거와 관리조직이 별도로 설치돼 있어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으며 가입자들에게도 불편을 주고 있다고 제도도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는 이에 대해 시기상조를 외치며 4대 보험의 각기 특수성을 고려치 않고 부과징수하는 것만 강조해 국민적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국민들도 현재 각기 따로 보험료를 납부할 때는 형편이 어려울 경우 일부 보험료만을 연체했으나 통합 부과할 경우에는 연체시 그 연체료 부담이 커져 가계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보노조 측도 납부해야 할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전체적인 징수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 주장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보면 정부의 통합방침이 그리 잘못됐다고는 볼 수 없다. 행정의 일원화를 통해 불필요한 행정업무를 줄이고 이에 따른 행정비용도 절감시킬 수 있으며 조직개편을 통해 인력 재배치로 업무의 효율
사회 극심한 양극화는계층내 양극화를 초래하며이는 의료계도 시작됐다는 것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에게는 세계가 인정하는 두 가지의 신화가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개발의 신화가 그 하나요, ‘민주화’라는 한국 민주주의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신화가 그 하나다. 경제와 정치라는 상이한 영역에서 이루어진 성과로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경제성장으로 형성되고 또한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중산층의 형성과 발전, 그들의 사회적 욕구, 가치지향성, 삶의 지향성 등등 총체적으로는 그들의 의식과 문화가 이러한 두 가지의 신화를 이루어 내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사회는 그러한 신화의 영광은 희미하게 기억되고 새로이 많은 어려움에 노출되면서 불안과 갈등만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한 사회현상의 대표적인 것이 우리사회의 ‘양극화현상’ 이다. 양극화란 말 그대로 양쪽의 극단만이 존재하고 가운데의 영역, 중첩과 완충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이는 우리사회의 발전의 동력이었던 중산층이 와해돼가고 있거나 그 사회적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산층의 몰락은 IMF 이후 경제위기에 따른 부
1885년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밝혀진 에베레스트산. 1차 에베레스트 등반 대원으로 선발돼 새로운 등산로를 발견했으며, 2차 등반 때는 8225m 지점에 이르렀고, 3차 등반 때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출발한 후 1924년 실종됐다는 맬로리라는 등산가가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도대체 왜 당신은 에베레스트에 꼭 오르려는 겁니까?”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지난 5월 31일,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있었다. 나는 광주광역시 시의원으로 출마를 했었다. 비록 낙선을 했지만 보람차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보냈었다. 60일의 예비후보자기간과 13일의 후보자기간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무척 궁금해 하는 질문은 “도대체 치과의사가 치과나 잘하지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였다. 나의 대답은 “치과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80세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정치는 지금이 아니면 어려울 것 같고, 이제는 나도 정치에 관여 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보며, ‘좋은 제도와 정책’으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나왔다”였다. “나와 나의 가정만을 위한다면야 이제 겨우 여러 가지 공부를 끝내고, 여러 면에서 적응이 된 치과를 하는 것이 훨씬
치료 중 개교교합이 생긴 경우(중) Q 미국에서 교정치료와 연관돼 일어났던 소송들을 분류 정리해 소개해 주시고 교정치료와 관련해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소송 내용들을 알려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소송 예를 보니 환자가 요구하는 사항이 다양하고 소송 이유도 상당히 구체적인 것 같더군요. 소송을 처리하는 방법에서도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사실을 중시하지만 의사보다는 환자 편에 유리하게 배상액 등을 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환자를 보는데 더 조심을 해야 하고 주의를 해야 할 사항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의료사고나 소송과 관련돼 어떤 경우에 일어나는지 궁금하군요. 실제로 의료사고나 소송과 관련해 다른 병원에서 의뢰됐던 사례들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사건을 통해 얻는 교훈(표 3, 사진 5∼9) 처음 치료 받을 당시 치료 전 사진을 보면 상악 전치부는 반대교합이며 수직피개가 굉장히 작았습니다. 치아가 배열될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crowding이 돼있는 상태이고 구치부의 교합이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환자의 처음 주소(chief complain)가 crowding이었고 환자의 나이가 11세로 성장
일본 치과보철 보험화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일본 치과계의 위상을 매우 약화시켰으며 치과 의료비 비중조차도 감소시켰다는 박사논문이 발표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들이 툭하면 치과보철 보험화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볼 때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의 치과보험의 현주소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치과보철분야를 보험화하려던 당시 일본 치과계에서도 찬반 논쟁이 뜨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일본 후생성조차 치과보철 보험을 반대하고 나섰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정부의 보험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치과보철을 보험화할 경우 재정을 감당해 내지 못한다는 판단에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치과의사회는 오히려 치과계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치과보철 보험화를 강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일본 정부는 저수가 정책으로 치과보철을 급여화했고 그로 인해 제한된 보험 재정내에서 치과 보철이 보험에 포함됨으로써 다른 치과치료 항목의 수가 역시 억제 시키게 된 결과를 빚게 됐다. 이 후 일본 치과계는 수가 인상 시나 신기술 도입 시에도 크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으며 심지어 약가 차액에 의한 수가 인상 시에도 배제됨으
나이가 든다는 것은삶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그래서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치과대학을 갓 졸업한 당시에는 모든 것이 어설펐다. 학부에서 배운 지식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임상경험도 원내생과 무의촌 진료뿐이어서 환자를 볼 때면 진땀이 나곤 했다. 교수님과 선배의 지도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도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당시의 내 용모가 갸날퍼서 환자로부터 “선생님, 그 팔 힘으로 이를 뺄 수 있습니까?”하는 걱정을 듣곤 했다. 임상경험도 절실했지만, 우선 빨리 어린 티를 벗어버리고 싶었다. 하얀 까운이 어울리게 노숙해 보이고자 안경도 중후한 것을 쓰고, 옷도 정장을 입었다. 나의 20대는 그렇게 나이가 빨리 들어 보이고 싶어 궁리하며 보냈다. 30대에는 치과의사가 내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힘들어 하기도 했고 임상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그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금요일 일과 후 밤 12시경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아직 캄캄한 새벽 5시 30분경이고 지하철로 교대역에 도착해도 어둑어둑했다. 인근에 있는 공중목욕탕에서 잠시 쉰 다음 세미나를 들었다. 그 당시 존경하는 고석훈 선생님께서 개설한 강좌로, 오전 8시에서 오후 6시까지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