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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가 드리는 1분 묵념(默念, Meditation)

최치원 칼럼

각종 공식행사에서 애국가 제창 후에 이어지는 묵념 시간이 되면, 참석자들은 모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내리며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1분간 묵념의 예를 다한다.


이 1분간 나에게 주어지는 경건한 묵념시간 동안 나의 기도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자문(自問)해 보니, 솔직히 ‘여러 가지 생각!’이었다고 자답(自答)할 수밖에 없다. 경건하게 울리는 묵념 음악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지난 8일 ‘2020 치협 신년교례회’에서도 식순에 따라 어김없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행사 참석자들에게 안내된 묵념의 대상이 ‘순국선열’로 특정된 이유가 뭘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2017년 1월 1일 시행이 된 ‘국민의례 규정 일부 개정령’ 제7조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방법’이 있다.


첫째, 묵념은 바른 자세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둘째, 행사 주최자는 행사 성격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이외에 묵념 대상자를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


묵념대상자에 제한을 둔 이유는 국가 주최 행사이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국가 행사가 아닌 타 (직역)단체의 식순 속 묵념의 대상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파악이 된다.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순국선열 및 작고 회원에 대한 묵념’, ‘작고 회원에 대한 묵념’.


각 직역 단체에서 ‘순국선열’과 더불어 ‘작고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묵념’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의 사후 평안을 마음속으로 빌며 감사함과 존경을 표하는 의례(儀禮)가 국가적 차원의 1분 묵념이었다면, 각 단체의 1분 묵념은 생전(生前)에 소속되었던 작고 회원들의 숭고한 희생과 발전적 기여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는 의례이면서, 동시에 후배들을 향한 나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차분히 다짐해 보라는 소중한 시간의 할애이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우리나라 경어(敬語)는 이렇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진다고 하여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는 ‘사망(死亡)’.
‘윗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별세(別世)’.
‘고인이 되셨다는 뜻을 갖고서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로 상당한 예를 갖추고 있는 ‘작고(作故)’.


이 글을 준비하면서 필자는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명부에서 치과의사의 죽음에 대한 특별한 경어(敬語)가 존재했었음을 발견하고 정말 대단한 치과의사 선배님들이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3년 회원명부를 보면, 작고하신 치과의사 회원분들을 ‘서세회원(逝世會員)’이라는 존칭으로 묶어 치과의사 회원이셨음을 회원명부에 존함과 면허번호까지 꼼꼼히 기록해 우리에게 전해주셨음을 알 수 있다.


 ‘윗사람’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서세(逝世)’라는 존칭은 지체 높으신 분이나 위대하신 분들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최고의 존칭인 ‘서거(逝去)’에 근접하는 표현으로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우리 선배 치과의사들은 다른 치과의사의 진료작품에 대해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치과의사 스스로를 자존(自尊)해 주시던 분들이셨음이 틀림없다. 더욱이 서로의 죽음에 대해서까지도 최고의 예우를 해 주시고 회원명부에 기록하면서까지 기억을 지우지 않으려 애쓰셨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진정한 죽음은 ‘육체가 죽었을 때가 아닌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완전히 잊혀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현재 치과의사의 윤택한 삶과 사회적 지위, 경제적인 안정, 치과 의술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노력하시다가 작고하신 치과의사 선배님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편의적으로 기억에서 덜어내 버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자문(自問)해 보자.


1980년 이후부터, 선배 치과의사분들의 존함을 수록하기 위해 10여 페이지도 할애하지 못하고 있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회원명부에 우리는 무엇을 담아 놓았는지 펼쳐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내 자식과 후손들이 치과의사가 되어 펼쳐 볼 회원명부에서 나를 발견해 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뛰지 않는가?


또한 치과의사 작고 회원을 위한 묵념 시간만이라도 그분들을 기억해 낼 수만 있다면, 현재 치과의사를 향해 사회가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윤리와 도덕성 회복을 이룰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서 사망, 실종된 미군은 비록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더라도 기필코 유해를 찾아 본국으로 송환한다는 ‘미국의 사명’이라는 글귀가 있다.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Leave no man behind)’


대한치과의사협회 역시 ‘단 한 명의 회원도 기억 속에서 버리지 않는다’는 사명을 1분 묵념에서 다짐해보고 회원명부에 기록해 보기를 제안하면서 글을 맺는다. 이것이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