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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소송 : 1. 소송과 소송질

임철중 칼럼

삼 년 전 최초의 협회장 직선제 선거 후에 ‘불복 움직임’ 소문이 돌더니, ‘설마 했던 악몽’이 현실로 나타났다. 무슨 ‘소송단’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선거무효와 재선거의 비극만은 피하자는 칼럼 3편을 썼으나, 극단론에는 극약처방 외에 답이 없다는 통설만 증명한 채로, 결국 협회의 장래를 법의 심판에 맡기게 되었다.


지성인의 공식 단체로서는 부끄러운 무능의 노출이요, 회복하기 힘든 신뢰 추락을 자초(自招)한 것이다.  재선거 직전, 높은 투표율을 호소하는 글 제목을 ‘명예 회복과 재충전을 위하여’로 붙인 이유다(본지 2018년 4월 23일자 게재). 그에 앞서 썼던 세 편의 제목은, ‘1. 소송공화국  2. 신임절차  3. 재발 방지’였는데, 당시 또 다른 불복에 대비해 써둔 제3편은 다행히 게재 필요성이 사라졌다. 이제 선거철이 다시 돌아왔으니, 또 한 번 법적 공방을 벌이는 불미스러운 사태를 우려하는 심정에서 올리기로 한다.

 

먼저 법원 조정위원 20여 년에 느낀 점을 정리해본다. 첫째, 생활관습·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고소·고발 건수가 16배가 넘고, 최종심까지 가는 비율은 더 높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생활 법 미숙과 성급함 탓이요, 사법부가 판결보다 조정·화해를 적극 권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상식 존중하기다. 본과 3년 학예부장 때 김형석 교수와 석진강 검사 두 분을 축제(儲慶祭) 연사로 모셨다. “법률이란 상식과 유치원 때 배운 도덕 윤리를 최소한의 문장으로 얽은 것”이라던 석 검사의 강의가 기억에 남는다.


셋째, 임관식 때 검사는 정의 구현을, 판사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선서한다. 그러나 실무에 들어가면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 진실 공방(팩트 체크)은 물 건너간다. 법리다툼은 고사하고 소장(訴狀)과 변론에 쓴 자구(字句) 해석에 좌우되고, 사건 본질이 아니라 지엽적인 꼬투리가 승패를 가른다.


넷째, 판사는 폭주하는 사건에 쫓겨, 방대한 기록의 숙독과 판단에 시간이 모자라 재판은 길어지고, 상급심에 가면 말할 나위가 없다.


다섯째, 율사(律士)의 문제다. 핵심을 정확히 찔러 정리된 변론은 변두리만 짚는 문장보다 당연히 승소확률이 높다. 물론 이런 예(例)들은 소수에 속하며, 일반론이라는 주장은 아니다.

 

흔히 소송당사자는 “분하고 원통해서, 나쁜 놈 본때를 보여주려고, 대법원까지 가더라도”라며 재판에 나선다. 막상 현실에서는 첫째 생업의 리듬이 깨지고, 둘째 재판은 부지하세월로 질질 끌며, 셋째 자꾸만 올라가는 법률비용에 기겁한다. 예상 밖의 패소, 또는 승소해도 기대 이하의 결과에 거듭 놀란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 “다시는 휘말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여기까지는 아직 ‘소송’이다. 그 심리를 악용하여 걸핏하면 “법으로 하자”며 겁주는 짓이 ‘소송질’이요, 그 인간이 ‘소송꾼’이다. 이언 플레밍은 007에서 “첫 번은 우연이요(Happenstance), 두 번째는 우연의 일치지만(Coincidence), 세 번째는 적의 준동(蠢動: Enemy Action)”이라 했다. 상습범은 이미 우군이 아닌 내부의 적인 것이다. 


법적 분쟁의 비율이 높으니까, 판·검사들의 최종 희망 직업도 대부분이 법정 변호인(Court Attorney)이다. 변호사 천국이라는 미국에는 법정 변호사보다는 대부분 개인 변호사(Counselor)나 기업 내 변호사(In-house)로서 법적인 문제점을 미리 검토해주거나, 사건이 생겨도 변호사끼리 만나 재판 전에 해결한다. 시 군청 공무원은 물론 형사 중에도 로스쿨 출신이 많아 검경 수사권에 다툼이 적다는데,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하여, 한국 경찰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수사 인력을 과연 몇 %나 확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처럼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배운 우리부터 ‘소송질’을 삼가고, 인권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에도 앞장서자.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