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전골목 초입에 올망졸망 맛집이 몰려있었다. 오전 11시 ‘소문난 육개장’ 앞, 두 여인이 대야를 두고 마주 앉는다. 고부간 수다를 떨어가며 잘 삶아진 양지머리를 결 따라 자디잘게 찢는다. 무심결에 발길 따라 들어가 주문을 하니까, 첫술에 “아, 이건 어머니 손맛(Mom’s Touch)!”,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예로부터 “극한극서에는 원행을 피하고 안방 방사도 삼가라.”(極寒極暑 遠行 房事) 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소중한 몸을 알뜰히 보전하라는 뜻이다. 기공소가 없던 시절에 점심에는 치과직원만 대여섯이니, 부뚜막에는 크고 작은 가마솥 세 개에 국수 삶는 풍로가 따로 있었다. 어머님은 한여름 한겨울 주말에는 보양(補養)식을 빠뜨리지 않으셨다. 직업상 분진(粉塵)을 마시는 치과 식구들에게, 수육에 새우젓을 곁들이거나 고기가 넉넉한 육개장을 끓여 내셨다. 잘게 찢은 양지머리에 대파를 겅중겅중 잘라 함께 육수에 투하, 대파가 살짝 익을 만큼 한 번 더 끓인다. 맛깔 나는 육수에는 질긴 고기를 써야하므로, 잘게 찢어 한 번 더 우려내면, 육향이 그윽해지고 살도 연하다. 고기 맛 돋우는 고사리는 많으면 제 맛만 내세우니까 살짝 데쳐서 두어 꼬집만, 머리 따낸 식감
장모님은 여걸이셨다(金貞姬; 1929-2020). 여고시절에는 청주 시내를 말을 타고 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탄허 스님이 법명 벽안(法名: 碧眼)을 주실 만한 미모에 사업수완 또한 만만치 않았고, 여신도 회장과 불교신문사 사장을 역임하셨다. 진잠에 큰 절을 세울 꿈을 품었던 스님은, 대전에 오면 처가에서 점심공양을 하셨는데, 장모는 “큰 스님이 오시니 귀한 말씀 좀 듣자.” 전화를 했다. 불경번역으로 한문 실력이 걸출한 학승이라는 명성과 예지 능력은 익히 잘 알려져 있고, “허공을 삼킨다.”는 법명이 예사롭지 않아, 달려가 몇 차례 뵌 적이 있다.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탄탄한 씨름선수 몸매에 말수는 뜸하여, “역시 뜬금없는 스님의 알 수 없는 방언?”이라는 건방진 생각에, 더 자주 뵙고 듣지 못한 젊은 시절의 오만이 후회로 남아 있다. 흘리듯 지나가는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여성 대통령이 나오고, 그 전후에 일본열도가 바다에 잠기며, 곧 이어 세계가 조공(朝貢)을 바치러 온다는 얘기였다. 그때만 해도 너무 황당무계하다고 웃어 넘겼는데, 30년이 채 못 되어 박근혜대통령이 나오고 도후쿠 지방이 쓰나미에 잠기더니, K-컬처를 동경하는 세계의
힘든 수술을 이겨낸 막내 누님이 지난 연말에 귀국하여, 8남매가 함께 묵으며 정담을 나누었다. 길 건너에 박정희대통령도 자주 묵었던 군인휴양소(現 스파텔)가 있으니, 추억의 라디움 온천 원탕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온천 하면 한적한 사우나보다 아이들이 꺅꺅대는 대중탕이 제격이다. 바글바글한 탕 한구석에서 오래간만에 보는 때밀이(洗身士)가 반가워, 동생과 나란히 몸을 맡겼다. 피부과 의사는 이태리 타올로 박박 문질러, 때가 떡가래처럼 밀려나오는 때밀이를 한사코 말린다. 떡가래 대부분이 실은 피부각화 층으로, 가벼운 찰과상이나 세균으로부터 내 몸을 지켜주는 보호막인데, 왜 쓸데없이 무장해제를 하느냐는 얘기다. 지당한 말씀이지만 아직 경험 못한 분은 한번 받아만 보시라.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 느낌을 무슨 말로 설명할까? 깨끗한 상쾌감은 물론이요, 맨살을 손아귀로 강하게 주물러 혈액순환을 돕고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에 더하여, 안마(按摩)를 통한 ‘기(氣)의 전달’이 분명히 느껴진다. 그래서 때밀이 10년이면 기가 쇄하여, 골병을 앓는다는 속설이 있는가보다. 휴일도 없던 개업 초기에는 두 시간이 채 못 되는 점심시간이 유일한 낙이었다. 혼밥에 적당한
검은 피부의 미군 해병대 상사가 젓가락 두드려가며 구성지게 뽑아내던 ‘동백 아가씨’ 얘기를 쓴 적이 있다(뽕짝의 세계화: 1996. 5. 치과타임스). 삶의 고달픔이 배인 흑인영가나 재즈와 우리나라 한(恨) 문화의 닮은꼴을 들어, 뽕짝이 만국 공통음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꿈꾸어본 것인데, 실제로 꿈이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깜짝깜짝 놀라는 요즘이다. 케데헌이 대체 뭔고 했더니 K-pop Demon Hunters란다. 예전에는 줄임말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어 머리만 조금 갸웃하면 정답이 나왔지만, 요즘 유행어는 땅띔도 못한다. 세대 간 소통부재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줄임말이 아닌가 한다. 케데헌을 꼼꼼히 들여다보자. 으뜸가는 특징은 국민개병제가 심어놓은 군대 집단문화와 품세(品勢)우선의 태권도를 결합시킨 칼 같은 군무(群舞)다. 자세가 제대로 나올 때까지 대한민국에 와서 먹고 자며 배워도, 몇 년으로는 어림도 없다. 필자가 알기로는, 서양 8음계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본 엥카(演歌)와 전통적인 타령조의 5음계가 얽히면서, 묘하게 떠는 ‘악극단 창법’이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었다. ‘홍도야 우지마라’ 3막 5장 막간에 한곡씩 등장하던 3절짜리 유행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을 관통하는 독립기념일 대로(大路)는, 오뉴월에 연수정 빛 꽃이 피는 가로수 하카란다(Jacaranda)가 화려하다. 핑크궁전으로 꺾이는 어귀에 한 남자가 열 마리쯤 개를 몰고 간다. 몇 년 전 파리에서 처음 본 반려견 도우미(Pet-sitter)다. 늑대가 조상인 개에게서 질주와 추격 즉 사냥본능을 빼앗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도심에 사는 반려견은 달릴 기회를 얻기가 힘드니까, 건강유지와 정서적인 안정을 위하여, 산책을 시켜주는 배려다.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죄로 경제적인 고통을 겪지만, 유럽 보다 더 유럽답다는 아르헨티나의 문화유산은 이어진다. 작년 가을 벼르고 벼르던 아프리카 여행 중에, 케이프타운에서 개 산책 도우미를 다시 만났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반려견 교육이 의무적(Compulsory)이라 한다. 일정기간 훈련을 시켜서 불합격이면 재교육을 하고, 그래도 합격하지 못하면 안락사(Euthanasia)를 권한다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의 진실과 화해위원회라는 선견지명이 답보(踏步)하면서, 인재의 탈출(예; 일론 머스크) 등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세계최초로 심장이식을 한 나라요 표준영어(King’s En
대전우체국 맞은편 임 치과에는 발로 돌리는 푸트엔진과 커다란 틀니 제작용 경질고무(Vulcanite) 프레스가 있었다. 대동아전쟁 총동원령 하에 물자가 부족하니까, 인상 채득은 모델링 컴파운드에 모형 복제는 까다로운 아가, 합금은 언감생심으로 크라운은 삼뿌라(Sun-Platina) 판을 두드려 맞추는 둥 열악한 환경에 중노동이었다. 그래도 일제(日帝)는 의(醫)자가 붙은 모든 기관에 쌀 배급을 멈춘 적이 없었다. 해방이 되자 선친은* 오시이레에 걸린 금장식 일본도 두 자루와 수천 권 장서와 지하실 가득 고려자기를, 3층 건물과 함께 일본인 치과의사 이시미츠(石光)씨로부터 인수하였다. 미 군정청은 치과에 금과 항생제를 꼬박꼬박 배급했는데 이제 한숨 좀 돌릴 무렵 6·25가 터져, 대전역 폭격에 전 재산이 재로 변하고, 선친은 방 두 칸을 세 얻어 야전체어를 놓고 치과간판을 달았다. 휴전 후, 대동아전쟁 때 피난가려고 산내면 복호리 산중에 지은 집을 헐었다가, 철도청에서 불하받은 정동에 단층집을 짓고 치과를 옮겼다. 용운동 할아버님 댁에 피난 갔던 유니트체어에, 불 탄 체어를 사포질과 페인트로 재생하고, 야전체어와 도합 3대로 구색을 갖추었다. 부정 유출된 리도
모처럼 가는 대전예술의전당후원회 문화기행이지만, 아직은 시원치 않은 건강에 편도 세 시간 버스여행이 유럽 코치투어(Coach Tour)처럼 미덥지가 않아서,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통영은 노산이 몽매에도 가고파하던 예향 ‘내 고향 남쪽바다’ 아닌가? 막상 특급 버스를 타보니까 허리에 부담이 거의 없어서, 과연 대한민국의 자동차산업이 세계 첨단급임을 실감하였다. 물론 1970년대 초 해군 시절이나 공연관람 등 몇 차례 익숙해진 곳이다. 기행의 주제는 2025 통영국제음악제의 피날레,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브리튼 전쟁 레퀴엠(Britten; War Requiem) 연주’였다. 오가는 길에 들른 맛집 기행과 남강 상류 함양의 거연정·동호정 등을 지나는 ‘Drive-Thru Tour’는 덤이었다. 시내에 들어서기 2Km 쯤 전방부터 부처님 오신 날 연등처럼 오색풍선이 연도에서 반기고 있어, 통영시청이 이번 행사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은 아담한 언덕에 자리 잡아, 계단을 올라서자마자 항구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이다. 육백 여석의 아늑한 아래층 오른편 좌석에 앉아, 3월 28일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으로 막
데니스(Denis)는 중학교 때 많이 읽은 미국만화 주인공이다. 취학 전인 5, 6세의 아이인데, 엉뚱한 고집으로 계속 사고를 저질러서 어른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맥주를 마셔도 어린이용 루트비어가 아니라 알코올이 들어간 라거 비어를 달라고 떼쓰고, 말문도 더디 터져 1 2 3 숫자 셀 때, 7까지는 잘 나가다가 곧장 11로 튄다. Seven과 eleven은 운(韻: rhyme)도 잘 어울리기에, ‘7-11’이 편의점 이름에까지 쓰이게 된 것은, 데니스 만화 덕분인지도 모른다. 하도 사고를 저지르니까 부모나 이웃은 그에게 별난 별명을 붙여준다. ‘Denis the Menace; 겁나는 데니스’라고. 요즘 2기를 맞아 천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는 트럼프 미국대통령을 보면, 데니스가 아니라 도널드가 한술 더 뜨는 악동 같다. 그가 쓰는 형용사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Beautiful과 Terrible 단 두 개뿐이요, 연설을 하면 CBS(Cheat-Bluff-Swear)방송의 초등학교 저학년 버전(Version)이다. 그러기에 대학교수를 비롯한 많은 엘리트가, “거짓말과 협박과 욕설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니, 4년만 피해있자”라면서 해외로 탈출한다고 한다. 허황된
겁 많은 염소도 사람 손바닥 위의 소금을 망설이지 않고 핥는다. 염분이 없으면 몸 안의 흡수 현상 즉 생명과정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열량을 공급하는 고랭지의 감자와 바닷가 염전에서 거둔 소금을 바꿔 먹는 것이 유통의 첫걸음이었다. 따라서 유통이란 물의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기처럼 위치에너지를 극대화한 생산업이다. 등짐 멘 보부상은 산 넘고 물 건너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위치에너지를 팔아 먹고 살며 당시의 알량한 GNP 성장에 기여했을 것이다. 조선조 후반기의 생산성 추락은 신분서열을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못 박은 유교 탈레반 탓이요, 문명의 선두주자 청나라 몰락의 원인도, 수구적 중화사상에 절어 무역 결제를 은(銀)에 국한 한 소국-쇄국주의로서, 모두가 물류유통을 얕본 업보다. 수출주도 성장으로 방향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항만관리의 경험을 살려 고속도로 건설에 매달린 이유이며, 그렇게 깊은 뜻에 무지했던 DJ와 YS는 결사반대를 한 것이다. 보부상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무엇이었을까?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산에 들어가 행인을 터는 산적들이었다. 폭력에는 폭력, 절대 폭력인 국가가 나서서 산적을 토벌하는데, 본시 군사력이란 매우 값비싼 장치라서 세금을
진보정당 민주당이 미국 대선에서 참패하고, 79세의 공화당 트럼프가 새 바람을 타고 거짓말처럼 승리하였다. 정의와 개척정신으로 무장하고, ‘거짓말쟁이!’ 한마디에 목숨 걸고 결투를 하던 퓨리턴 미국인들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경제적 위기에 몰린 저학력 저소득의 백인들에 더하여, 속으로는 부끄러우면서도 지지했다는(Shy Trump) 지식인들의 이기주의가 가세한 탓이며, 심지어 민주주의의 장점이자 약점이라는 선거제도 자체를 탓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노골적으로 “너 죽고 나 살자(America First)”라며, 벌거벗은 포식자를 자처하는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한 배경에는,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PC)에 식상한 국민과, 그 점을 꼭 찍어 선동-공격하여 증오 부풀리기에 성공한, 트럼프의 덮어씌우기 선거 전략이 있었다. 공화당이 이겼다기보다 민주당의 오만과 지나침이 패배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주장은 말 그대로 바르고 이상적이다(correct & ideal). 2010년경부터 미국에는 인종 성별 성정체성 등에 따라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진보적 가치가 화두였다. 가치를 설명하는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Diversity, Equity, In
큰딸의 법무팀장 승진기념으로 안식구가 사준 카디건을 그만 손녀에게 빼앗겼다(?)고 한다. 새 것을 사주려고 큰마음 먹고 들린 백화점에서 낯익은 이름을 만났다. 소쉬르(Chaussure), 분명 프랑스어인데 국산 수제구두 가게다. 알파벳은 조금 달라도 기호학의 창시자로서 구조문학 이론을 탄생시킨 스위스 Saussure와 이름이 같다. 유럽 이름은 찰스 칼 카를로스 샤를르가 같고, 피터와 페드로도 한 이름 아닌가? 상품이든 예술작품이든 간에 이름이 같거나 울림이 크면, 그 친숙성(Congeniality)이 사람의 눈길을 끌고 인기를 보장한다. 작가가 글을 쓰거나 회사에서 신상품을 기획할 때 이름 짓기(Naming)에 골몰하는 이유다. 우주선 개발계획에 관심 모으기와 예산확보를 위한, 미 항공우주국의 멋진 이름짓기를 칼럼에 쓴 적이 있다(1995.12). 한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 전령(傳令)은 머큐리계획, 두 사람 태우기는 쌍둥이 별자리인 제미니, 달 착륙용 3인승은 세 바퀴 수레를 탔다는 아폴로의 이름을 붙였다. 옷을 사면서 “둘째에게는 수제구두 한 켤레 사줘야지.” 마음먹었다. 치문회(齒文會) 월례모임에서는 서로의 글을 평하고 바루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지난
일본식 조어(造語) 냄새가 물씬한 관광이라는 낱말을, 볼 관자에 빛 광자로 풀어(觀光), ‘빛을 보다(See the light!)’라는 재미있는 직역(直譯)도 있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 세계 제일로 가난했던 우리들에게, 해외관광은 사치요 ‘김찬삼의 세계여행’은 그저 꿈이었다. 80년대 초 5공 때 해외여행 자유화가 선포되었지만, 국제정세와 주머니 형편으로 대부분 국민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배낭을 메고 당당하게 나서는 MZ 세대와 달리, 여행에 서투른 꼰대들이 패키지여행에 매달리는 이유다. 필자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처음 본 것도 1987년 교정학회, 캐나다 쪽은 1996년 Roth/ Willimams 학회 끝에 딸린 패키지였다. 보면 볼수록 젊어진다는 “나이야 가라(Age, go away)!”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폭소가 터졌던 게 생각난다. 환갑기념 마추픽추 여행에서 만난 이구아수 폭포는 그 광대한 크기와 수량에 감탄 불금으로, 필자의 연상(聯想) 기억법에 따라, ‘이구아나의 눈물’로 입력해두었다. 김찬삼의 3대 폭포 중에 이제 하나 남은 빅토리아를 버킷리스트에 찍어두었는데, 코로나에 죽죽 밀리더니만, 지난 3월 그만 ‘중환자실 입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