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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크? 바이오필름!

구강미생물 에 대한 15가지 질문<6>

 

김혜성 이사장(서울치대 졸업, 동대학원 박사)


사과나무의료재단의 이사장이자, 재단 산하 의생명연구소의 미생물 연구자이다.

구강미생물에서 시작해 장내 미생물, 발효 음식의 미생물까지 폭넓게 공부하며 몇 권의 책을 냈고 논문을 발표했다.

『미생물과의 공존』 『입속에서 시작하는 미생물이야기』 『미생물과 공존하는 나는 통생명체다』등 3권이 과학기술부 선정 우수과학도서를 수상했다.

 

 

 

 

 

 

지구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우리 인간, 호모사피엔스는 잘 알려진 여러 생물학적 특질이 있을 겁니다. 뇌가 크고, 직립보행을 하는 거대 다세포 동물 등등 말이죠. 이런 특질들은 우리 인간의 상당 부분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뭔가 핵심적인 어떤 면이 빠진 듯도 합니다. 인간사 대부분의 희로애락이 서로 간 ‘관계’에서 올 텐데 말이지요. 사회라는 거대한 협업구조를 만들어 자신의 생존력을 높인 인간의 이런 관계의 특질이 왜소한 원숭이의 후예인 호모사피엔스가 이 지구를 접수하게 만든 힘일 텐데도 말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진정한 생물학적 특질이 포착되려면 이 사회와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는 거죠.


이것은 미생물, 혹은 세균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균들도 군집을 이루고 사니까요. 매일의 진료실에서 보는 플라크(plaque), 실험실의 콜로니(colony)가 바로 세균들의 군집입니다. 하루만 이를 안 닦으면 허옇게 긁혀 나오는 플라크, 세균들의 군집이 충치와 잇몸병을 만든다는 것은, 이제 초등학생도 다 아는 상식이 되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 이런 21세기의 과학적 상식은, 꽤 깊은 과학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1680년대, 아침에 깨어 자신의 치아를 손톱으로 긁어 손가락만한 현미경에 올린 남자가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무역업자로,  돈을 많이 번 레벤후크(Leeuwenhoek)라는 이 사나이는 과학에도 관심이 많아 성능이 매우 좋은 현미경을 직접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 손가락만한 현미경을 통해 플라크 속에서 꼬물꼬물 기어가는 작은 생물을 관찰한 레벤후크는 그 녀석들을 작은 동물(animacules)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눈으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미시적 생명의 세계가 처음으로 인간의 시야에 잡히는 순간이 얼마나 신기했을까요? 이 작은 동물들의 그림을 영국왕립협회에 보낸 기록을 근거로, 지금까지 레벤후크는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호기심 차원의 작은 동물들이 인간의 삶과 생명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주역이란 사실은 레벤후크 이후 거의 200년이 지나서야 밝혀집니다.  파스퇴르와 코흐라는 두 걸출한 거목이 열어젖힌 이른바 미생물학의 황금기(The golden age of Microbiology)인 1870년대 즈음이지요. 이들의 연구덕에 탄저병, 콜레라 같은 전염병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이른바 세균감염설(germ theory)이 확립된 겁니다. 이후, 20세기 동안 인류는 항생제와 백신의 개발에 몰두하여 천연두를 비롯한 많은 감염병을 제압하는데 성공하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 미국의 의료책임자는 21세기 들어서면, 인류는 모든 감염병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 호언장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코로나 사태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류는 여전히 감염병으로부터 취약합니다. 구강 내로 보아도 수많은 치약과 가글액과 항생제에도 불구하고 충치와 치주질환은 여전하며,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다빈도상병의 상위에 랭크됩니다. 심지어 MRSA(Methicill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를 비롯해 갈수록 증가하는 항생제 저항성은 인간의 삶이 항생제 개발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크게 합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일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바이오필름(Biofilm)이라는 개념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바이오필름은 한마디로 세균들의 도시(City of Microbes)입니다.(Watnick and Kolter 2000) 그 도시 안에서 세균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끈적끈적한 세포 외 물질(ECM, Extracelluar Matrix)을 만들어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생존력을 높입니다. 서로 먹을 것도 교환하고 먹여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신호물질(quorum sensing)로 서로 간 소통하여, 일정 시점에서는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하지요. 이렇게 세균들은 바이오필름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 마치 세포와 기관의 역할이 분화된 다세포 생물처럼 행동합니다.  인간이 협업과 도시를 만들어 생존력을 대폭 높인 것처럼 자신의 생존력을 높인 겁니다.


이런 이유로 바이오필름 안의 세균들은 항생제로도 쉽게 제압하기 힘듭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플라크 속 구강 내 세균을 헥사메딘에 노출시켜도, 만약 그 세균이 바이오필름을 형성하고 있다면 48 시간이 지나더라도 오직 바깥 쪽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항생제에도 저항성을 보임을 보여주고요. 그런 환경이라면, 바이오필름 안쪽의 세균들은 항생제 저항성을 획득하는 더 고약한 녀석이 됩니다. 그런 이유로 인체 내의 대표적인 바이오필름인 플라크가 항생제 저항 유전자의 저장고라는 지적도 있을 지경입니다.


세균들의 생태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planktonic) 개별 세포가 아닌, 집단적 행태라는 개념, 그리고 그것을 바이오필름 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 것은 1990년에 이르러서입니다. 치과계를 중심으로 보자면, 1996년 미국 치의학연구소 격인, National Institute of Dental & Craniofacial Research에서 개최된 한 컨퍼런스에서 플라크를 바이오필름이라는 맥락으로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이 컨퍼런스에서는 치과 내의 플라크의 미시적 구조가 여러 면에서 볼 때, 세균의 생존력이 대폭 높아진 바이오필름이라는 사실이 지적됩니다. 그 전까지 플라크라는 임상적 관찰을 한 단계 더 넘는 미시적 구조에 대한 인식이 확장된 겁니다.

 


그런 면에서 플라크라는 거시적 임상적인 포착에서 바이오필름으로 인식이 전환되는 것은, 미생물학이나 의학에서는 커다란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세균들의 힘이 훨씬 더 막강하다는 새로운 인식인 거죠. 수많은 항생제 항균제에도 불구하고 감염병은 증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국 NIH의 추계에 의하면 약 80% 의 감염병이 바이오필름 때문이라니까요.


이렇게 우리가 늘 접하는 플라크를 바이오필름의 맥락 하에 본다면 치과진료에서 구강위생관리가 정말 중요함이 드러납니다. 구강위생활동은, 몸 곳곳에 감염병을 일으키는 인체 내 대표적인 바이오필름을을 제거함으로써, 나를 찾는 환자들과 국민들의 건강을 챙기는 활동이니까요.

 

 

Watnick, P. and R. Kolter (2000). "Biofilm, city of microbes." J Bacteriol 182(10): 2675-2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