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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대통령 테디 - 러시모어의 위인들 1

임철중 칼럼

전설의 히치콕 감독은 ‘현기증(Vertigo)’의 참패를 만회하려고, 다분히 흥행을 의식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를 만든다(1959). 우연히 첩보전에 말려드는 아마추어와, 오만한 북구 금발미녀의 커플은 그의 전매특허다.


고해상도와 와이드스크린을 접목한 첨단기술인 비스타비전은, 35mm 네가 필름을 두 배나 잡아먹는 낮은 가성비 탓에 단명에 그쳤지만, 필자가 기억하는 비스타비전영화에 졸작은 없다.  ‘Vistas of Orthodontics(展望)’가 서울대학교 교정과 초독회(抄讀會)의 첫 교재였던 때문일까? 이 책은 영화 ‘북북서’처럼 치과교정학의 고전이 되었다. 미국영화연구소 선정 위대한 미국배우(1926~60) 50인 중 남성 2위인 캐리 그랜트도 좋지만, 러시모어 산 화강암절벽에 새긴 네 대통령의 거대한 조각상을 넘나들며 벌이는 추격 장면은, 보는 사람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한다. 보글럼과 400여 조각가들이 만든(1927~41) 이 국립기념물에는, 워싱턴·제퍼슨과 링컨·루즈벨트의 네 대통령이 있다. 이들이 250년 역사를 통 털어 면면히 존경받는 이유는 위대한 업적에 못지않은 국민들에게 남긴 정신적인 유산에 있다.

 

불굴의 용기로 독립전쟁을 이끌어 초대 대통령이 된 워싱턴은 제퍼슨의 간곡한 재선 권유는 수락했으나, 3선 사양의 전통을 확립한 명실 공히 국부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내전(內戰)을 불사하며 노예해방에 성공하여 국제 인도주의 실천에 큰 획을 긋고 국론을 통일하여, 사실상 합중국은 재탄생하였다. 이 두 인물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거니와, 본 칼럼에서는 남은 두 대통령을 조금 더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지금도 가장 국민의 사랑을 받는 영원한 대통령이다.


당시 국제관계를 살펴보자. 식민지 쿠바가 종주국 스페인에 항거하여 봉기하자, 미국은 쿠바를 도와 미·서 전쟁이 일어나고(1898), 패전국 스페인은 미국에 필리핀을 넘겨준다. 청일전쟁은 동학 난에 속수무책이던 조선황실이 살려달라며 양쪽에 매달려 청과 일본이 충돌한 결과로서, 시모노세키조약(1895) 제1항은 “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독립국임을 확인하며, 일본과 대등한 국가임을 인정한다.”이다. 청은 패배의 대가로, 조선의 종주국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러일전쟁은, 조선·청을 두고 맞서 눈에 가시인(3국 간섭) 러시아를 일본이 선제공격하여 시작되고, 포츠머스조약으로 마무리 된다.


조약 1항은 만주·조선에서 러시아의 철수, 5항은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배타적주권’ 인정이다. 미국은 급팽창하는 일본제국의 태평양 침략을 견제하려고,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배타적주권과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상호 인정하고 봉합한 것이다. 가쓰라-태프트 합의(Agreement)는 조약체결(Treaty 1905. 9. 5) 전 통상적인 물밑작업이므로 공문화 할 필요가 없었고, 1924년에야 내용이 공개되어 ‘밀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일이 비밀리에 만나 나눠먹기 했다는 오해가 탄생한 이유다. 다만 조약 합의문에, 러일전쟁의 직접원인으로 양다리 걸친 대한제국 정부를 명기(明記)한 가쓰라는 실로 얄밉다. 대한제국을 국제평화 교란자로 낙인찍은 것이다. 포츠머스조약 조인과 태평양의 평화성취 공로로 시어도어는 미국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우리에게는 결국 독배가 되었고, 뒷날 일본은 끝내 필리핀을 침략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킨다(1941).

 

미서전쟁이 일어나자 시어도어는 해군차관 직을 박차고, 제1 자원(自願)기병연대(Rough Riders)를 조직하여 중령으로 참전한다(1898). 전쟁영웅은 뉴욕주지사를 거쳐, 부통령 반년 만에 매킨리의 암살로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최연소 대통령 42세, 선출직은 케네디 43세) 대기업 제한·철도 조정·유해 식-약품의 퇴출·삼림 자원 보호 등 당시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과감한 개혁을 한다. 백악관 무관과 권투시합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퇴임 후 브라질 탐험에서 얻은 열병 후유증으로 타계하는 날까지 그는 열혈남아였다. 그의 커리커처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한 동물인형은 시어도어의 애칭인 테디 베어(Theodore: Teddy Bear)라는 이름으로 오늘날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국 국민의 가슴에는 그의 인간성과 생애 전부가 나라와 국민을 향한 무한한 사랑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