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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이야기

황충주 칼럼

코로나19로 우리들의 생활이 거리두기가 뉴노멀이 되고 언택트가 일상화가 되고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고 차가운 바람이 불면서 자연은 어김없이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초록빛이었던 나뭇잎들이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가더니 이젠 푸른 숲이 다양한 색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다.


단풍 시작일은 기온, 토양수분, 일사량 등 다양한 환경요인의 영향을 받는데,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관계자는 “10월 하순까지 이상 저온 및 이상 고온 발생 가능성이 작다는 전망을 고려하였을 때, 올가을 단풍은 10월 중순에 지리산, 한라산 등 남부지방에서 들기 시작해 10월 말께 절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12일 산림청 국립수목원 ‘2021년 산림 가을 단풍 예측 지도’에 따르면 가장 일찍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곳은 지리산(세석)으로 오는 20일 전후 6일간이며, 제주 한라수목원은 11월 13일(±11일)로 가장 늦을 전망이다. 그 밖에 설악산(권금성)은 10월 23일(±10일), 속리산은 10월 23일(±4일), 내장산은 10월 23일(±12일), 한라산(1100도로)은 11월 4일(±4일)에 단풍이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대개 하루 최저기온이 영상 5℃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단풍이 들기 시작하며, 첫 단풍은 산 정상에서 아래로 전체의 20% 정도 물들었을 때를 기준으로 하며 단풍이 절정이라는 것은 산 전체 중 80%가 물들었을 때를 말한다. 절정은 흔히 첫 단풍이 나타난 지 2주 뒤가 되며 하루에 약 20~25km 속도로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 평균 단풍 절정 시기는 10월 26일로, 작년보다 3일가량 늦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이건 기후 온난화의 영향이라고 한다.


이 가을, 전국의 산을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들이는 단풍이 드는 이유는 뜨거운 여름에 지친 사람들을 화려한 색으로 유혹하고 마음을 들뜨게 하여 구경하러 오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점점 내려가 곧 겨울이 닥친다는 걸 아는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세포 안에 영양분(당분)을 쌓고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이파리를 떨군다. 광합성으로 만들어내는 당분보다 호흡 활동으로 사용하는 당분이 많아져서 균형이 맞지 않게 되면 잎 내의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엽록소에 가려져 있던 카로틴이나 크산토필 등의 색소가 드러나는 현상이다. 단풍나무는 카로틴이 압도적으로 많고 은행나무는 크산토필이 훨씬 많은 경우이며 카로티노이드가 많으면 주황색을 띠게 된다. 단풍은 이파리를 떨구기 전에 일어나는 일이며 카로틴과 크산토필이 이파리에 있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크산토필과 카로틴은 엽록소가 흡수하지 못하는 약한 빛을 흡수해 그 에너지를 엽록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엽록소가 다 파괴된 단풍철에도 마찬가지다. 카로틴과 크산토필은 여전히 아주 적은 양의 광합성을 한다. 이들은 나무가 세포 속으로 물을 아끼기 위해 이파리를 떨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애쓰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30일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로 활동한 매그너스요양병원 한원주 원장이 향년 94세로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원주 원장님은 젊은 시절, 의과대학교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를 딴 뒤 미국으로 건너가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귀국했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귀국 후 개원을 하니 환자들이 수없이 밀려왔고,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자기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결핵 퇴치 운동과 콜레라 예방 운동, 한센병 환자와 산골 주민들을 위한 무료진료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의학을 공부하게 한 것도 어쩌면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그녀는 부와 명예를 한순간에 버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살았다. 1982년, 국내 최초로 환자의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과 환경까지 함께 치료하는 ‘전인치유소’를 열어 가난한 환자들의 생활비, 장학금을 지원하며 온전한 자립을 돕는 무료 의료봉사에 일생을 바쳤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흔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환자를 돌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가족들도 힘겨워하는 치매 노인들을 위해 의술을 펼쳤다.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하며 주말이면 외국인 무료 진료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주기적으로 해외 의료봉사도 다니셨다. 환자들에게 평생 최선을 다했던 한원주 원장님. 그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은 세 마디였다고 한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푸르게만 인식했던 숲이 가을이 깊어지며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공원이나 산에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주말이면 단풍 구경에 도로가 막힐 것이다. 감홍난자(   紅爛紫)의 계절에 형형색색의 가을 풍경은 다양한 물감으로 색칠한 자연이 만든 멋진 그림으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우리는 나무에서 광합성을 위해 엽록소가 중요하고 큰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가을에 멋진 단풍을 만들기 위해서는 카로틴이나 크산토필의 역할이 필요하고 이들은 잎이 떨어지는 마지막까지 묵묵히 제 일을 한다.


중요한 일을 한다고 우쭐거릴 이유도 없고 하찮은 일을 한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큰 일하는 사람이나 작은 일을 하는 사람 모두 우리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그 존재마저 잊고 산다. 가을 단풍을 보며 나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고 우리 주변에서 드러내지 않고 수고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감사할 때다. 그리고 한원주 원장님 마지막 말같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힘내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