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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치과의사는 돈 보기를 돌같이 해야 하는 걸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34)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어떤 선생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치과의사는 돈에 관해 관심을 가지면 안 되고 사람들의 구강 질병을 해소하는 것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 같이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치과의사의 존경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환자에게 치과의료를 제공했는가로만 결정된다는 것이죠.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다른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많은 환자에게는 아닐지라도 각 환자에게 더 좋은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어떤가요? 윤리적 관점에선 어떻게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익명


저는 전문의를 딴 이후에 의료인문학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의료윤리에 관해 가지고 있었던 제 선입견을 발견했습니다. 의료윤리는 고루한 학문이거나, 전문가로서의 삶을 방해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었죠. 여러 이유가 겹쳐 의료윤리를 진지하게 공부한 다음엔 이런 것이 그야말로 제 선입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할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랫동안 의료윤리는 돈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의사’의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이 ‘의료윤리가 고루’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훌륭한 의사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제가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에는 슈바이처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지금의 표현으로 옮기자면, 그는 식민 국가로 찾아가 지역의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 헌신한 의료봉사자일 겁니다. 슈바이처의 노력과 업적은 존경받을만하나, 그가 훌륭한 의사의 전형으로 제시되었던 상황에 관해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의료 업무는 상류층이 저소득 하위계층에게 제공하는 봉사와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것은 이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일제 강점기 말기부터 형성된 국가가 가부장주의적 관점에서 하향식으로 제공하는 의료 제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국가의 감독하에 의료인이 ‘불쌍한’ 국민을 치료한다는 생각이 그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전통적인 의학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고상함 때문인지, 현실적인 문제는 덮어두려 합니다. 의사는 의학과 의술의 담지자일 뿐, 경영과는 무관한 자로 그려집니다. 의료윤리는 그런 관점을 규범으로 구현하기에 ‘돈’을 다루는 문제는 심지어 그것이 제도에 관한 논의라 해도 담론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이전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문제가 될 때 이익충돌(conflict of interest)이 잠깐 문제가 되었을 뿐입니다. 최근 들어서야 의료자원 분배의 문제를 다루는 의료정의(medical justice) 담론이 조금씩 지분을 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반적인 인식에선 돈은 정치나 관료, ‘경제학’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의료 자체나 의료윤리의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지요.


치과의사가 의사와는 별도로 자신을 성찰하는 일은 최근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의과적 관점을 치과가 그대로 수용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 결과, 훌륭한 치과의사 또한 돈 문제는 이야기하면 안 되는 봉사자로서의 이미지가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헌신과 자비를 익힌 치과의사가 도탄에 빠진 국민의 구강건강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살피지 않고 뛰어드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고매한 치과의사의 삶이라는 생각이지요.


그런 삶은 존경받아야 합니다. 헌신하는 이의 노력을 칭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 이게 전부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를테면, 우리 의료 제도가 어떤 진료와 의료적 관계를 제시하고 있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그 안에서 최선의 임상 진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치과의사는 어떻습니까? 비싸더라도 더 좋은 재료와 장비를 통해 기능이나 심미적인 측면에서 더 높은 만족감을 제공하고 더 오래가는 치료를 하는 치과의사는요? 상담을 위한 시간을, 예방을 위한 치과의사의 부차적인 노력을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 제도 안에서 최대한의 상담과 지도를 통해 환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려 하는 치과의사는 어떠신지요? 제가 주변에서 만나본 이런 선생님들을 저는 훌륭한 치과의사라고 부르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습니다만, 사회에선 잘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치과계 안에서도 이런 분들의 노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분명, 전통적인 ‘봉사하는 의사’의 모습에는 잘 맞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학문적 지위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던 의학과 달리 치과는 전문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시초부터 경제적인 측면에 대한 고민이 무척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미국에서 1850년대 벌어졌던 “아말감 전쟁”은, 처음 물성이 나쁜 아말감으로 문제 있는 진료를 하던 유럽 출신 치과 술자를 몰아내려고 시작했으나, 점차 아말감의 임상 활용을 거부하는 인습적 태도로 악변(惡變)했습니다. 20세기 초 미 서부지역의 치과를 주도하던 페인리스 파커의 이야기는 의료광고의 힘을, 그리고 진료비용에 관한 고민이 치과에서 매우 큰 쟁점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치과는 진료비용에 관한 태도나 논의가 그 전문화 과정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이런 문제를 부차적인 것, 의사가 직접 손댈 필요가 없는 하찮은 것으로 여기던 의과의 맥락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입니다.


현대에 와선 돈 문제가 의료인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어진 비용 안에서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고, 그것을 병·의원 경영과 그 감독체계인 의료 제도 안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살펴야 합니다.


저는 치의학이 의학보다 훨씬 현실적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이나 비용적인 부분에 눈을 감는 의학과 달리, 치의학은 애초부터 그런 부분에 눈을 크게 떠야 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현실에 밀착해 있는 치과의 특성 때문에, 저는 치과에서 나온 논의가 의과에 새로운 관점과 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문제가 치과계의 큰 화두가 되었지요.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어떤 선택이 환자의 구강건강을 향상하면서도 치과의사와 종사자 또한 만족하는 제도적, 실천적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은 무척 윤리적인 질문입니다. 여기에서 결코 ‘싸게 해주는 것이 최고다’라는 식의, 현실적인 고민 없는 뭉툭한 처방은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진료의 질, 비용, 환자-치과의사 관계, 이후 관리 등 더 좋은 진료를 결정하는 여러 요소를 조율하는 것은 치과의사의 책임이며 그 선택은 다분히 가치와 원칙의 문제이기에 이것은 의료윤리의 작업이라고, 우리가 함께 논의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