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Relay Essay 제2484번째

새해 아침, 2022년을 힘차게 맞이하겠다는 마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부지런히 동네 뒷산을 올랐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르곤 했지만, 새해라는 생각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둠을 뚫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어둠을 살라 먹고 떠오르는 밝은 태양을 보며 나는 호랑이와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임인년 새해가 호랑이 해이기 때문이고, 매년 아버지 당신이 새해를 맞이하던 바로 그 장소에 이제는 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내 아버지는 나에게 당신의 소중한 “말씀”들을 남겼음을 알게 되었다. 그 말씀들이 여전히 살아 내 삶의 분명한 이정표가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병·의원 전문 관리회계, 인사 노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하며 어려움에 부딪히면 “전공도 아니고, 의료진도 아닌 내가 왜 이런 걸 하겠다고 한 것일까?” 한탄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이 생기면 법학이 전공임에도 사법고시 대신 외무고시를 공부하고 2차에 떨어진 내게 당신이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금광에서 금을 캐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금광인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금광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네가 하는 모든 경험이 바로 그런 노력의 과정이니 결코 헛되지 않다.” 그 말씀 덕분에 다시 또 힘을 내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어떤 날은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것 같아서 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색소폰 연주가 늘지 않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며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되고 있다”라고 말씀해주신 날이 떠오른다. 보너스로 당신의 웃는 얼굴도 함께 떠오른다. 너는 너의 일을 나는 색소폰 연습을 될 때까지 게을리하지 말자고 힘차게 말씀해주신 그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러면 또다시 해보자, 오기를 닮은 용기가 생긴다.

 

아버지께서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만족하라.” 우리 집 가훈이다. 어릴 때는 너무 평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살아가며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알게 된다.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정말 최선인가, 라고 내게 묻고 아니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다시 더 다시 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런데 심지어 그렇게 어렵게 최선을 다하고 다한 일에 그 결과가 무엇이든 만족하라니. 그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럼에도 너무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살게 된다. 덕분에 과거를 돌아보면 아쉬움은 있어도 미련은 별로 없다.

 

아버지가 내게 해주신 가장 귀한 말씀은 “사랑해”이다. 무뚝뚝한 경상도 싸나이신 아버지가 어느 해 보신각 종이 울리자마자 전화하셔서 “사랑한다, 우리 딸”이라고 말씀해주셨었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어색했지만, 단 한 번이었던 그 순간을 회상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지. 내가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다시 또 경험한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고 물었다. 나는 내 아버지가 내게 주신 말씀들이 그랬듯이.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누는 말들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믿는다. ‘고맙다. 사랑한다. 기쁘다. / 훌륭하다. 충분하다. 소중하다 / 힘내자 해보자’와 같은 힘차고 아름다운 말들. 살아가는 기쁨과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말들, 그 말들이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믿는다.

 

하여 생각해본다. 나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떤 말들로 기억될까, 나도 내 아버지가 그러신 것처럼 기쁨과 감사의 말들을 미루지도 아끼지도 않으리라, 그저 사랑으로 기억되리라, 마음 다해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