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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의 가치: 가벼운 산수놀이

시론

필자는 먼 중동 국가의 요르단 치과대학 학생들의 졸업 평가 구술 시험을 위해 출장 중이다. 10점 중 5점 미만은 탈락으로 평가가 된다. 이틀 간 진행한 76명의 피평가자 중 3-4명은 5점이 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몇몇 학생들은 다른 항목의 평가가 좋으면 졸업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졸업을 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정수 단위의 평가기준표가 있었지만 필자는 0.5점 단위로 4.5점도 주고 3.5점도 준 것으로 기억한다. 비록 낮은 점수를 주었지만 다른 평가 결과와 함께 산수가 잘 진행되어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학생도 있었고, 산수에 의해 운좋게 졸업이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학생도 한명은 기억이 난다.

 

졸업 평가 점수는 말하기에는 무게감이 다르지만, 수학이라는 단어보다는 산수가 더 정겹다. 굳이 정겹기까지나 할게 있겠냐만 입시공부도 아니고 난이도가 높지도 않은 산수가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산수(算數)는 수학(數學)과 달리 학문이라기보다는 일상의 숫자 도구로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산수에도 어쩌면 불편할 수 있는 사회적 약속이 숨어있다. 소수점 이하 올림 반올림 내림 등 인위적으로 간편하게 만드는 수를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1과 2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소수점 이하의 수가 존재한다. 예를들어, 1.1이 있고 1.11이 있고 1.1111도 있고 무수(無數)히 많다. 1.9인들 1.1인들 올림 처리하기로 하면 모두 2로 되기도 한다. 반대로 버림을 하기도 하고 반올림을 하기도 한다.

 

현대 디지털 세상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0과1을 이용하여 많은 것을 처리하고 있다. 두 개뿐이지만 수많은 조합을 통해 무한을 표현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것도 디지털이 아니면 그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 수단이고 도구이다. 가상화폐인지 암호화폐인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은 사람들의 눈이 번쩍뜨이게도 하였고 눈물나게도 하였다. 세상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가고 가상 현실이 현실로 다가왔고 현실과 가상세계를 혼돈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현상이 일어나는 세상의 중심이자 주인인 사람은 정수로만 존재한다. 사람의 수에는 반올림이 없고 버림도 없다. 말못하는 아기도 1인이고 은퇴하신 어른도 1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사람만이 가장 디지털적 수 개념의 기본인지도 모른다. 다양하고도 무수한 사람들의 아날로그의 생활방식 사이에, 사고방식 사이에 충돌이나 반대가 있기마련인데 이를 정리하고 관계화를 이루어주는 것이 산수이다. 산수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공정의 기본 원리가 된다. 어떻게 정하는가의 문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정해진 합의사항을 잘 지키는 것이 공정한 사회 관계를 만드는 가치인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 일에 공정한 기준이 중요하고, 각자의 기준이 다르면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1.4가 반올림으로 1이 되기도하지만, 1.1이 올림으로 2가 될 수도 있다.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들여다보면 0.3이 더 컸던 수인데! 그러나, 1.9가 내림/버림으로 1이되는 것을 보면 위안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반올림을 원하고 상대는 버림을 원하는 기준으로는 소통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 기준은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켜져야한다. 만들어진 기준은 내가 조금 손해보는 계산이 나오더라도 받아들이고 내가 조금 덕을 볼 때는 다음에 조금 손해 볼 수 있으려니 미리 생각해 둘 필요도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잃어버린 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숫자 사이에 작은 숫자들, 정수사이를 이어주는 많은 소수와 무한 수들이 연속적으로 아날로그로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한번은 되짚어보는 아날로그적 생각이 필요하다. 오늘 반올림으로 손해보고 사라진 0.4가 언젠가는 0.1이 더 많아서 0.5를 덤으로 얻는 것으로 돌아오리라 믿고 지내는 것이 우리 모두의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