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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존엄사법’과 치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42)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최근에 ‘조력존엄사법’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치과의사로서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법이 큰 틀에서 노인을 위한 의료제도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것이라고 보면 치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요. 조력존엄사법과 치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익명

 

예, 말씀 주신 대로 최근 조력존엄사법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인데요, 기존 몇 개월 이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되며 법이 규정한 특정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 즉 말기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 법을 개정하여 말기환자가 주치의의 확인을 받아 자신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약물 처방을 요청하면 보건복지부장관이 주관하는 위원회의 승인 하에 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반대 의견을 의식했는지 이름을 이상하게 고쳤지만, 현재 여러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안락사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입니다.

 

치과는 이런 안락사 논의와 약간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존엄사, 즉 연명의료 결정과 관련해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치과와 존엄사·안락사 논의가 다른 어떤 과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존엄사·안락사 논의에선 현재 환자가 경험하고 있는 삶의 질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왜 말기환자에게 연명의료 결정권을 주어야 할까요? 더 나아가, 환자가 치사량의 약물 처방을 요청할 수 있다고 할 때, 그 근거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법적으로는 신체 자기결정권의 확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존엄사와 안락사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환자가 더는 산소호흡기나 투석 등의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이므로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됩니다. 그러나,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약물을 처방하고 그 약물을 환자가 직접 먹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자살을 의료 제도가 도와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즉, 안락사를 결정하는 것은 존엄사와는 다른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환자의 현재 삶의 질입니다. 안락사를 요청하는 환자는 보통 견딜 수 없는 지속적인 고통에 처한 이로 가정됩니다. 즉, 질병으로 인하여 환자는 해결할 수 없는 고통에 휩싸여 있으며, 이로 인하여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환자의 죽음을 돕는 것은 허용 가능한 일이 되는데, 왜냐하면 그에겐 죽음이 삶보다 더 낫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지요.

 

이전에는 극심한 통증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는 계속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통증을 계속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에게 심한 통증으로 가득한 삶을 지속하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악한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통증 관리 방법이 발달하면서 통증을 어느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은 꽤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구강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중증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를 생각해 볼까요? 질병 때문에 그는 이동하는 데 제한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삶에서 가장 큰 중요성을 띠는 행위는 무엇일까요. 모르긴 몰라도, 저는 대화와 식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긴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2022년 초, 거리두기 정책이 완화하면서 하루 수십만의 확진자가 나옴에도 사람들은 공공장소에 가거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질병에 걸리는 두려움보다 다른 사람을 만날 필요성이 더 컸던 거지요.

 

사실, 삶이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의미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결국 다른 사람들입니다. 물론, 종교를 가지고 계신 분은 신이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신이 우리에게 의미를 전하는 통로는 결국 주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소통의 통로를 필요로 하지요. 네, 언어입니다. 사람들은 그토록 말하고 싶어 합니다. 말할 수 없으면 쓰고 싶어 하지요. 사지마비가 된 환자도 눈을 움직여 안구 키보드를 작동시킵니다.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다시 환자로 돌아오면, 어디로 가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는 사람들을 만나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병실로 삶의 영역이 제한된 상황의 환자에게 말하기는 그 어떤 때보다 중요성을 띠게 됩니다. 거의 유일한 소통의 통로이자,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도구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치과적 관리가 구강 기능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안락사를 제도화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질병으로 인해 끔찍한 삶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방식의 안식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해결할 수 있는 끔찍함을 다루지 않은 채 안락사를 도입하는 것은 큰 잘못이 됩니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놓아두고 그저 죽으라고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안락사를 말하는 것은 (사실, 지금 우리 상황이기도 합니다) 도덕적 재앙입니다.

 

안락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논의가 나오려면 저는 전제 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환자들이 원할 때 호스피스 관리를 받을 수 있어야겠지요. 하지만 저는 한 명의 치과의사로 주장합니다. 호스피스 이전에, 중증 질환자 및 말기 환자의 구강 관리가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들의 구강 상태를 호전시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환자들의 삶의 질을 돌보지 않는 셈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락사 논의가 나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원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구강 기능을 제도적으로 돌보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는데, 안락사라니. 그것은 말기환자의 필요를 적절히 다루지 않은 채 환자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환자의 구강을 관리할 돈이 없으니 그냥 죽으라는 제도를 마련하는 셈이죠. 저는 그렇게 되어선 안 된다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