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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와 치과는 왜 나누어졌을까? (1)교육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43)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치과의사로써 간혹 의사나 사회의 시각이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의사보다 전문성이 부족한 직업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하지요. 그래서 묻습니다. 의과와 치과, 의학과 치의학은 어떻게 나누어지게 되었나요? 앞으로 이런 차이에 변화가 생길까요? 익명

 

※이번 회차부터 세 번에 나누어 의과와 치과의 분리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합니다. 전문직의 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육, 제도, 연구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의 위치는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의사로부터 떨어져 나온 별도 의료 전문직으로써 다른 업무를 한다고 말하지만, 완전히 분리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애초에 구강이나 악안면부가 신체 다른 부위와 떨어져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치의학은 의학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기울입니다. 다른 영역임을 강조하고, 어느 정도 배타적인 위치에서 구강 전문가로서 역할을 강조합니다. 이런 설정은 치의학의 분화를 유지하나, 의학이나 사회가 치의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한편, 의학중심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나머지 의료전문직을 대하는 의사의 태도는 당황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사회에선 치과의사는 ‘의사’가 아니다, 라는 식의 말을 종종 들을 수 있고요.

 

이런 상황을 토대로, 여기에선 치의학과 의학이 분화되는 순간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이 탐구는 치과의사와 의사가 어떻게 나누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치의학이 의학의 한 분야로써 둘 사이에 어떤 위계가 없음을 증명합니다. 또한, 우리가 치의학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 고민해야 할 점들을 알려줄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오늘은 교육을 살펴보는 것으로 출발하고자 합니다. 교육에서 치의학의 분화를 만든 두 가지 시공간으로 저는 18세기 프랑스와 19세기 미국을 꼽습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치과의사의 교육을 위한 책이 만들어졌고, 19세기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치과대학이 생겨났습니다. 이를 통해 치과의사를 별도로 교육하는 체계가 확립됩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 프랑스는 유럽에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해 왔지요. 특히 루이 13세 시기부터 중앙집권화를 추구한 프랑스는 아직 봉건제가 굳건한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왕에게 강한 권력을 집중시켰던 국가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의사들이 자신의 지위를 높이는 토대가 되었는데, 국왕의 주치의나 국왕의 질병을 치료한 의사가 귀족이 되고, 이들이 다시 자신의 세력을 형성해 갔기 때문입니다. 먼저 내과 의사가 귀족층으로 진입했고, 외과 의사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18세기 초, 전문 분야를 표방하며 집단을 형성하는 의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구강 영역의 치료에 집중하려는 외과 의사들도 있었지요. 이들, 치과 외과의 중 피에르 포샤르가 구강 영역의 술식을 교육하기 위한 책을 씁니다.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치과의사』이지요.

 

이 책은 시장에서 치아를 치료하는 발치사(拔齒師)들의 지식 없음을 지적하고, 치아 질병의 이론과 치아 및 주위 조직을 치료하는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자료가 없음을 밝힙니다. 제대로 된 구강 영역 치료를 위해선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포샤르의 주장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포샤르의 책을 전문 치의학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지요.

 

한편, 세계 최초의 치과대학이 설립된 것은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유명세를 바탕으로 귀족 등에게 높은 진료비를 받던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 의사들은 진료와 함께 교육을 통해 소득을 얻었습니다. 이런 교육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지역에서 유명한 의사가 피교육자를 도제로 받아들여 가르치는 방식이었어요. 다른 하나는 외국 유학파가 설립한 의과대학이었습니다. 유학파가 의과대학을 만들었던 이유는 지역에서 유명한 의사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하며, 실험 등 과학적 접근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을 교육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이 자리 잡자, 치과대학 또한 설립해야 한다는 요청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1840년 볼티모어 치과대학의 설립으로 결실을 보았어요. 설립자인 호러스 하이든과 채핀 해리스는 유학파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의과대학의 형태로 교육을 하는 것이 이후 치과의사의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한 주요 수단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특히 치과대학의 설립에는 해리스의 공이 컸습니다. 그는 의사들의 반대를 돌파하고 설립 청원에 서명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지요.

 

단독 전문대학의 형태였던 치과대학은 이후 종합대학교에 통합되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 의과대학은 대대적인 개혁에 돌입하게 되는데, 그 기초가 된 것이 교육자 에이브러햄 플렉스너의 보고서였어요. 치과대학 또한 생화학자 윌리엄 기스의 보고서를 토대로 개혁을 시작합니다. 보고서는 치과대학이 종합대학교 안에 소속될 것, 5년제 교육제도 등을 주장하고 과학적 치의학 교육을 확립할 것을 요청합니다. 또한, 보고서는 치과는 의과의 한 분과이지만, 역사적 이유로 제도적으로 분화된 전문 분야이므로 의학과 치의학은 동등하다고 주장하지요.

 

이렇게 치과대학은 의과대학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별도의 길을 걷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이런 방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요. 다음 칼럼에서 제도와 연구의 분화를 각각 살펴볼 예정입니다만, 교육의 분화 과정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의학과 치의학의 동등성입니다. 의학에서 출발하여 특수 분야로써 그 교육을 확립한 치의학이 비록 임상에서 신체의 일부분에 집중하지만, 그것은 의학의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니까요. 물론, 이런 동등성 주장은 당연합니다만, 혹시라도 의학이 더 중요하다거나, 치의학은 위계상 의학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치의학 교육의 역사를 토대로 차분히 설명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