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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꿈(동물화가)

시론

동물을 사랑하며 그림을 그린다. 꿈은 평소 생각한 것과 연관되거나 뜬금없이 나타나기도 한다. 동물화를 그리던 아이를 보며 동물화가가 요즘 각광받는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예전 아이가 수시로 그리던 동물화가 꿈속에서 뒤섞여 실제처럼 느껴진다.

 

어릴 적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틈만 나면 만화부터 인물묘사 캐리커처 등을 그려서 주변에 보여주면 잘 그린 게 아님에도 재미있어 하고 잘 그렸다며 종종 칭찬을 해주곤 했다. 잘 한다 잘 한다하면 더 잘해서 칭찬 받고 싶어 더 노력하는 아이들의 심리라 할까?

 

그런 계기로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며 자꾸 그쪽으로 시간을 많이 들이다보니 취미를 넘어 미술에 약간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예체능으로 장래에 성공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하나로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고등학교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서양화가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오로지 서양화를 그리며 인생의 목표를 정했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며 부모님이 극구 말리셨다. 사실 뚜렷한 결과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 뒷받침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할 수 없이 화가의 꿈을 접고 아무런 목표 없이 공부만 했기에 고교시절은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대학가서도 짬짬이 낙서하듯 캐리커쳐라도 그려주면 좋아하는 친구들로부터 위로 받으며 학업을 이어 나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부모님 그늘로부터 벗어나고 여가시간도 생기고 해서 내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그림그리기 취미가 발동하여 점점 더 열심히 그리게 되었다. 생업으로 하는 전문화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느 사회든 아마추어와 프로가 공존하는 것이니까 나도 언젠가 사람의 마음을 끄는 그림을 그릴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틈만 나면 취미 삼아 유화 붓을 들고 캔버스를 휘젓기 시작했다.

 

그때 많은 화가들 중에 문득 반 고흐가 생각났다.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른 자화상이 뇌리에 너무 깊게 새겨져서인지는 모르겠다. 수많은 작품을 남긴 천재화가였지만 살아생전 제대로 빛도 못 보고 동생 테오를 통해 겨우 한 점 판 게 전부라는 사실에 예술가의 고뇌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동생과의 깊은 우애가 더 가슴을 쓰리게 했는데 그의 수많은 작품은 사후에 평가받았다. 정작 그는 평생토록 너무나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았기에 천재예술가의 처절했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동시대의 고갱과 비교 당하면서 얼마나 좌절을 느꼈을까 하며 고흐에게 동화되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를 고흐에 견준다는 게 우습지만 마음껏 상상 아니, 망상을 하며 나름대로의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그린 그림들이 자꾸 쌓이기만 하니까 보관의 어려움도 생기고 아마추어 작품인지라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더라도 행여나 푸대접 받고 창고에 처박힐 신세 될까봐 망설이다 보니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가족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꿈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으로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집에 기르던 애완견 진이를 캐리커쳐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면서 동물그림을 자꾸 그려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 동물만 전문적으로 그리는 동물화가가 흔하지도 않았고 나름의 특별한 재능과 차별성이 있을 것 같다며 격려해 주었다. 그걸 계기로 지인의 애완견이나 고양이, 새 등을 그려주니까 서로 그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해서 제대로 된 동물화가가 되어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애완동물 천만 가구 이상 시대인 요즘, 반려동물로서 개들이 가족과 다름없는 소중한 대우를 받으며 사람보다 더 대접받는 일이 이상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해서 그림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겨서 본격적으로 동물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린 정교한 동물화와 애완동물을 대상으로 한 초상화를 보고 가끔은 대가를 주겠다며 동물초상화나 가족과 함께한 그림을 그려달라며 문의가 들어오곤 했지만 본업에 영향을 끼쳐가면서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사양하느라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면 칭찬해주셨던 부모님과 주위의 사람들 덕택으로 시작된 아마추어 동물화가, 남들이 다른 취미활동하며 여가를 보내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 때 혼자 서재 귀퉁이에서 우리 애완견 진이의 다양한 표정과 동작들을 캔버스에 옮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고 있다. 웃음 짓는 가족을 생각하며 아쉬워하면서도 동물화가로서 의욕을 갖고 오늘도 바쁜 하루를 임한다. 동물과 함께하는 새롭고 다양한, 무한정 팽창할 수 있는 지금의 애완동물 환경에서 항상 창의적인 작품을 위해 또 다른 도전을 꿈꾼다. 시간이 지나면 길거리에 ‘동물초상화’란 간판이 쉽게 보게 될 날이 올 것 같다.

 

 

동물화가

 

남다른 예술가의 삶

서양화 중 인물화

불투명한 미래

마음속에 묻었다

 

상상과 어우러진 동물가족

불현듯 방향을 틀었다

애완동물 초상화

 

이 시대의 가족이란

동물가족 천만 시대

암암리 찾아와

무작정 캔버스에 담았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늘 *진이와 함께

동물화가...

시간가는 줄 모르는 이 순간

인생은 아름다워라

 

 

*진이: 애완견(말티즈)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