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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먹다가 든 생각

스펙트럼

어릴 때부터 워낙 유사과학을 싫어했다. 논리적이거나, 설명되는 것들을 따르는 성향이라 사주, 혈액형, 유사과학 제품들을 보면 경기를 일으켰다. 물론 본성은 어딜 가지 않아, 지금도 유사과학을 보면 경악한다! 친구들은 이런 나의 반응이 재밌다며, 일부러 게르마늄-음이온-기순환-팔찌 등을 어디서 구해오곤 했다. 물론 쓰레기통 행이다. 내 반응을 보면서 친구들은 그 돈이 아깝지 않다고 한다. 그 돈으로 뜨끈한 국밥이나 사먹지...

 

10년 전쯤 혈액형별 성격이 굉장히 유행했다. 에이형은 소심하고, 비형은 바람둥이고... 굉장히 유행했기에 대화의 주제가 자주 올랐고, 들을 때마다 경기를 일으켰다. 아무리 노출되어도 도저히 적응될 수가 없었다. 정말 다행히도 요즘 거의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유행이 찾아왔다. MBTI다.

 

물론 MBTI에 관해 얘기하면 반박할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적어도 혈액형 성격 분석만큼 유사과학은 아녀서 나름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말 해보기 싫었지만, 친구들이 하도 해보라고 해서 해본 검사결과는 ENTJ였다. 성공만 향하여 달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평소 미래와 성공에 대해서 지겹도록 자주 얘기하는 터라 친구들도 잘 맞는다고 했다. 하지만 성공에 관해서 얘기하다 보면, 자주 성공의 목적에 대해서 질문받는다.

 

“도대체 그렇게 성공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야?” “그만큼 돈 많이 벌어서 뭐에 쓰려고?” 돈을 많이 번다면 쓰고 싶은 분야가 참 많다. 잡다한 일도 해보고 싶고, 봉사도 본격적으로 돌리고 싶고, 당연히 좋은 집, 좋은 차, 훌륭한 음식, 사치도 해보고 싶다. 언제 그 시절이 올까? 고등학교 때 수능을 바라보며 살면서부터, 뭔가 내 인생은 항상 기다림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여전히 난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의심이 든다. 성공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정말 내 삶이 그렇게 바뀔지언정 나의 모습이 바뀔지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 일을 마치고 저녁을 찾다가, 또 집 코앞에 있는 중국집에서 간짜장을 먹었다. 공중보건의 시절 3년 동안도 수없이 먹은 짜장면이다. 근방에서 제일 저렴한 한 끼 식사인 데다가, 맛있다. 혼자 챙겨 먹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라면으로 끼니 해결하는 일도 많다. 물론 아주 한 때 돈이 궁해서 어쩔 수 없던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흘러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도 자주 먹었다. 그래서 오늘 짜장면 먹다가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참 사람은 안 변하구나. 내가 정말 정말로 성공해도 집 앞 짜장면 먹고 살고 있겠구나.

 

어릴 때 엄마가 여유가 되는데도 허름한 옷들을 계속 입고, 저렴한 음식점을 가는 게 정말 싫었다. 저승에 돈 들고 갈 것도 아닌데, 그렇게 아낄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 자주 다퉜다. 돈을 버는 목적에 대해 가족들과 자주 얘기 나누었다. 부모님께선 딱히 아끼려고 아끼는 게 아니라, 삶의 관성이라 말하였다. 이해는 되지만 와닿지는 않던 문장들인데 요즘 내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말인 것 같다. 나도 관성이 생기는구나.

 

유튜브에서 100년 전 영상을 복원해놓은 영상들을 자주 본다. 부산도 나온다. 장소만 같을 뿐 영상 속의 그들과 나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살고 있다. 흔히 말하는 이세계처럼 신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영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는데, 그 사람들이 느낀 모든 슬픔, 분노, 아픔, 행복, 열정 이 세상에 남아있는 건 없다.

 

나의 관성들 중, 나의 행복을 해칠만한 것들을 바꾸고 싶다. 어차피 없어질 부끄러움 때문에 도전도 없이 살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나의 관성을 부수고, 뒤를 돌아봤을 때 후회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날이다. 내일은 꼭 짜장면 말고 비싸고 맛있고 기억에 남을 무언가를 먹어야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