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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을 잃었다

두근대는 붉은 부겐빌레아*

바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너

우산 밑으로 거품처럼 터지는 초록색 웃음

배를 드러내고 꼬리를 흔드는 잔디

 

우리를 부르는 숲길에는

인색한 스테인리스 삼각형 분수대 하나

반가운 부레옥잠 여럿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여름 달빛에 흔들리는 미친 사랑

수런거리는 빗소리, 또 빗소리

네 손가락 사이로

떠오르는 미코노스* 해변의 밤바다

 

후드득 우듬지를 내려치는 겨울 소낙비

얼어붙은 미코노스 해변

부레옥잠 빼앗긴 스테인리스 분수대

어디로 데려간 걸까

 

난, 빈 껍질만 남았어

물기 없는 너의 목소리

웃음기 사라진 네 흰 블라우스

 

너와 다른 세상에 산다는 나

더는 아무것도 줄 게 없다던 너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너와 나

불편한 침묵

 

불면의 새벽마다

널 위해 기도할게.

화살기도 하듯

아픈 배를 그러쥐고

 

아파, 너무 많이 아파져

그곳을 꾹꾹 눌러서 달랬지

손을 떼면 금방 네 숨이 멎을까

허리가 활처럼 휜다

 

꺼멓게 타들어 간 네 입술 자국

사금파리 씹어낸 내 삐딱한 입술

첫사랑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말

그 말을 듣지 말 걸

네 말을 믿지 말 걸

내 눈을 후벼 팔 걸

 

너는 자궁을 잃었고

나는 시력을 잃었다

나는 네 안에서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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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겐빌레아(bougainvillaea): 분꽃과의 덩굴성 관목으로 남아메리카 원산이다. 포 는 자줏빛이고 아름답기 때문에 꽃처럼 보이며 그 안에 들어있는 꽃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화려한 색깔과 풍성한 꽃으로 멀리서도 눈에 띄는 꽃이다. 원산지인 브라질에서 가로수로 쓰인다. 꽃말은 조화, 열정, 영원한 사랑이다.

 

*미코노스(Mykonos): 에게해의 남쪽에 위치한 그리스의 섬. 에게해 400개의 섬들 중에서 산토리니섬과 더불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먼 북소리>에 소개됨.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