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H 교수는 개발 중이던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의 면역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2022년 1월 자신에게 직접 주사하는 “자기실험”을 실시했다가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1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지법은 공익 목적과 안전성, 비영리성 등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 법원은 이 자기실험이 임상시험 규제 대상임은 인정하면서도 사회상규상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최근 나온 판결 관련해서 같이 살펴보셔도 좋을 것 같아 기사 요약문을 가져왔습니다. 신규 의약품이나 의료기기의 “자기실험”, 즉 개발자가 직접 자기 몸에 신약이나 기기를 적용하여 어떤 결과를 확인해도 괜찮을까요? 물론, 판례가 나왔으므로 끝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의료윤리적 관점에서 검토해 볼만한 논의이므로 소개합니다.
먼저 읽으시는 선생님께 여쭙습니다. 이런 자기실험, 해도 될까요? 얼핏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자기가 약을 개발해서 자기 몸에 직접 주사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 약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잘 아는 것은 자신일 텐데 결정에 대해 남이 왈가왈부할 권리가 있긴 한가? 라는 생각이 드실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 이것도 분명 임상시험에 속하니 연구자가 마음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떠오르실 거예요. 당위를 넘어, 인간 대상 임상시험은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므로 아무렇게나 수행돼선 안 된다는 생각은 이제 상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례에서 법원의 결론도 어느 한쪽의 손을 들기보다 두 생각을 모두 긍정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자기실험이 “임상시험 규제 대상”이지만 사회상규상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은 한편 이 연구, 치료제를 연구자 자신이 몸에 직접 주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만, 이것이 개인의 사익을 과도하게 추구하거나 심각한 해악을 끼칠 만한 행위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수행할 수 있는 행위라고 본 것인데요.
이런 “자기실험” 관련 논의가 치열하게 다루어졌던 사례 중 하나로 90년대 미국에서 에이즈 치료와 관련된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사례는 영화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이 상세히 다룬 적이 있으니 한번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지금은 항역전사바이러스제를 복합 사용하여 HIV 감염을 임상적 수준 이하로 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기에 심지어 에이즈를 만성질환으로 분류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상황이 되었습니다만(물론, 여전히 이런 약제를 사용하기 어려운 환자들에게선 심각한 문제지요), 90년대 에이즈는 그야말로 “죽음의 신”이자 아무런 치료법이 없는 악몽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의료계를 비난하며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섰습니다. 전기기술자였던 론 우드루프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 그는 당시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투약하던 아지도티미딘(AZT)이 효과가 없고 심지어 약물 부작용으로 환자를 죽이고 있다며 대체 약물을 직접 수입하여 사람들에게 판매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당시 의료계에서 허가되지 않은 방법이었기에 미 식약처(FDA)로부터 불법 약물 수입 및 판매로 고소를 당했고요.
하지만 우드루프는 이것이 타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구성원만이 약품 구매에 참여할 수 있고(“댈러스 바이어스 클럽”) 이들은 말기 환자들이 스스로 자기 몸에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며 방어했습니다. 다른 대안이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법원은 이런 행위가 법적 허가를 받을 수는 없지만, 현재 다른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서 아직 증명되지 않은 약제들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말기 환자에게 있다는 주장에 동정적이었어요.
물론, 영화는 주의해서 보실 필요는 있습니다. 마치 AZT가 나쁜 약물이라 환자들이 죽어갔다는 듯이 영화는 묘사하고 있지만, 이후로 AZT는 용량을 줄여 오랫동안 에이즈 환자에게 사용되었지요. 우드루프 본인도 여러 약물의 칵테일 요법으로 30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에도 몇 년간 더 생존하고 사망했고요.
연구자가 자기 몸에 개발한 약물을 직접 주사하는 “자기실험”과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의 이야기가 일대일로 매칭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배경 논증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시면 도움이 되어요. 자기실험은 규제되어야 하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과도한 사익 추구나 누가 보아도 몸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필요시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치과의사로서 우리 또한 실험적인 방법을 활용해 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생성형 AI가 가속화하고 있는 치의학(의학)의 디지털화로 인해 이런 필요들은 점차 확대일로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궁금해질 때가 있지요.
예컨대 치의학의 사례는 아닙니다만, 크리스퍼 기반 유전 조작 실험 키트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어요(지금도 판매 중이지만 지금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서요). 이 키트가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의도만 있다면 당연히 그런 방식의 활용도 가능했지요. 그리고 캘리포니아주는 “자기실험” 목적으로 크리스퍼 키트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런 실험의 위해가 명확히 규명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도, 충분히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을 개연성이 의심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의 자기실험도 마찬가지 범주에 들어 있습니다. 하면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험의 실행자는 스스로 그 목적과 위해를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해요. 그것은 윤리적 지식과 검토를 요구하는 일이지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