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 블랑제리는 이수역에 지점을 둔 유명한 빵집이다. 그냥 유명한 빵집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한 빵집이다. 유명 백화점에도 입점해있다. 팥 빵 하나만 먹어봐도 그 빵집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일단, 빵이 무척 묵직하다. 뭘 넣었는지, 손바닥에 전해지는 중량감에 사장님께서 재료를 아끼지 않았음을 대번에 알게 된다. 적당히 달달한 팥이 빵 속 가득히 들어앉아 내 앞니의 커팅에 속절없이 잘린다. 찰진 빵의 식감은 대구치의 주름에서 뇌의 주름으로 직행하는 듯하다.
사실, 쟝 블랑제리의 사장님은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이 아실만한 유명한 치과의사의 동생분이시다. 내가 쟝 블랑제리를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재료학 강의 시간 중이었다. 당시 강의에 들어오셨던 치과의사분께서 쟝 블랑제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그 치과의사분께서 유명해지셨다.
쟝 블랑제리는 낙성대에 있는 빵집이었다. 빵이 맛있기로 입소문이 자자하였고 특히 서울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낙성대에 있는 빵집의 봉투가 혜화의 서울대병원에서도 종종 발견되었다고 한다. 치과의사인 형의 존재가 쟝 블랑제리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쟝 블랑제리의 빵들은 화려하지 않다. 지금 백화점에 들어가 있는 빵들도 겉보기에는 그저 소박한 빵이다. 그런 빵이 특별한 광고 없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빵이 되기까지, 빵이 가진 맛과 식감, 즉 빵의 본질이 끊임없이 성장, 성숙되었다고 생각된다. 제빵사의 영혼이 담긴 노력이 빵에 실렸음을 느낀다.
나도 이와 같이 내 업을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광고, 저수가에 의존하지 말고 치과 치료의 본질적 성장과 성숙을 꾸준히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치과 치료를 잘 했는지 못 했는지 환자가 알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치료 결과 통증과 불편감이 해결되었는지, 치료가 편안했는지 불편했는지, 결과물의 수명이 길었는지 짧았는지는 환자도 안다.
소문이 나고 자리를 잡기까지 예전에 비해 긴 시간이 걸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 예전의 훌륭한 선배님들께서 견지하신 철학과 마음가짐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해본다. 본질을 추구한 결과와 비본질에 의존한 결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차근 차근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성장과 성숙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친절하고 성실한 직원들을 얻게 되기도 한다. 비범한 임상을 가진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화려하지 않은 빵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쟝 블랑제리처럼 삶에 꼭 필요한, 집밥 같은 치료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싶은 마음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나가면 의료계 환경도 개선할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낙성대 빵집의 빵이 유명 백화점에 들어갈 줄 처음부터 누가 알았으랴. 사람에게 하는 일, 영혼을 담아서 하자.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아 인력으로 이루질 수 없는 멋진 일이 내 앞에 일어날 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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