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치과에는 모든 체어에서 구강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구강 카메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환이나 오랜만에 내원하신 환자분이 있으면 구강 카메라로 구석구석 사진을 찍습니다. 상담할 때 그 사진들을 활용하면 환자분의 이해를 돕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진료 중간 중간에 중요한 장면이 있으면 구강 카메라로 찍어서 환자분께 보여드립니다. 충치는 모두 제거되고 치수는 노출되지 않은 상태와 같이 환자분께서 눈으로 보시면 안심이 되실 사진을 찍어서 환자분께 보여드리곤 합니다. 조금 번거로운 과정이긴 하지만 환자분과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작업입니다. 구강 카메라를 손에 쥐고 참 좋은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물건이 없을 때는 어떻게 충치를 환자에게 보여주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치경과 손거울을 이용해서 어찌 어찌 충치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는 해도 치료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게 하기에는 부족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자분이 비용에 대해서 납득하고 치료에 동의하게 하기까지 신뢰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치료를 받는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치경과 손거울을 이
“내가 뭐라고 누굴~ 설~득을 하고~” 동문회 날 늦은 저녁, 오랫동안 좋아하고 존경해 온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어떤 사람의 말이 그냥 내 귀에 쑥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땐 그 말이 나더러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어도 내가 그 말을 듣는다. 선배님의 그 말씀이 그렇게 나에게 들어왔다. 아마도 나는 많은 순간 남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선배님은 고등학교 동문 선배님이자 대학교 동문 선배님이셨다. 훤칠한 키와 빼어난 용모, 시원 시원한 말투와 생각. 그런 모습으로 기억되는 선배님이셨다. 내가 치과대학에 입학하여 동문회에 처음 나갈 즈음, 그 선배님은 S의료원에서 수련을 받고 계셨다. 어쩌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만 모이게 되는 경우가 있어 불고기에 당면 사리를 얹어 먹고 있으면, 그 선배님께서 퇴근길에 들르셔서, “쓸 데 없는 걸 먹고 있다.” 하시며 등심을 사주시곤 했다. 사리에 밝으신 그 선배님께서는 동문회 후배들에게 되는 사람은 된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셨다. 등심 외에도 그저 좋은 것들, 부러워할 만한 것들로 회상되는 그 선배님께서 남기신, 설득에 대한 촌철살인의 말씀. 나는 너무 많은 순간 남을 설득하려 했었다. 그리고,
“철수는 오늘, 이런 생각을 했다...” 배철수 성대모사였다. 40대 남자라면 그저 목을 조금 눌러서 목소리를 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배철수 성대모사라고 생각했다. 조회를 시작하면서 직원들의 주의를 끌어보고자 그렇게 회심의 성대모사를 했다. 내 귀엔 꽤 비슷하게 들렸다. 반응이 없고 좀 어리둥절해 보이는 직원들, 그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희 배철수 몰라요...” 그랬다. 우리 직원들은 배철수를 모르는 세대였다. 나이가 좀 있다 하는 직원도 나와 열 다섯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니 안철수는 알아도 배철수는 모를 만 하다. 차라리, “제가 갑철숩니꽈~”라며 권위를 잃어버린 원장의 하소연이라도 들어 주길 바래 보는 게 나을 뻔 했다. 어느새 40대 중반, 나보다 나이가 적은 환자가 점점 많아지더니 이제는 환자군의 절반 정도는 나보다 어린 것 같다. 노년 환자분들을 대하고 이해하는 일은 점점 쉬워지고, 청년 환자분들을 대하고 이해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나는 나 너는 너, 확실한 경계로부터 묻어나오는 우리 청년들의 어른스러움이 오지랖 넓은 나를 간혹 당혹스럽게 만든다. 우리 직원들, 배철수를 모르면 어떠한가. 청년 환자들과 말 통하고 느낌 비
비 오는 날, 풀잎을 타고 미끄러져 나아가는 달팽이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달팽이는 자기 몸보다 더 큰 집을 등에 지고 열심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집에 들어가 쉬는 시간도 있겠고 집을 통해 보호 받는 시간도 있겠지만 많은 시간, 달팽이에게 그 집은 무척 무거워 보입니다. 집 없이 매끈한 몸매를 뽐내는 달팽이도 있는 것을 보면 달팽이에게 있어 집이라는 존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개원의로 살아가던 어느 날, 경영으로 인한 스트레스 없이 진료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들과 협업하는 일, 기공소, 재료 업체, 건물주 등에 소정의 비용을 매달 지불하는 일, 건강보험공단을 위시한 정부와 관련된 사무를 처리하는 일 등등 그저 나열하기에도 힘들고 머리가 아픈 일들을 하면서 진료까지 하고 있는 저… 그런 제가 바로 집 있는 달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영이라는 무거운 집을 등에 지고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치과적 집 있는 달팽이가 바로 저인 것 같습니다. 개원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주인이 되는 치과를 꿈꾸지 않았다면 저도 집 없는 달팽이처럼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왜 굳이 이
치과 근처에 작은 떡볶이 가게가 있다. 무려 1988년부터 영업을 해온 떡볶이 가게이다. 오다가다 생각날 때, 밥을 먹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을 때, 그 떡볶이 집에 들러서 떡볶이나 순대, 튀김 등을 먹곤 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튀김을 시켜서 먹었다. 내가 시킨 건 오징어, 김말이, 계란이었는데 시키지 않은 만두가 들어 있었다. 튀김은 떡볶이 소스에 버무려져 나오기 때문에 만두가 들어있는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시각적으로는 알기 어렵고 식감에 의해 인지가 되어야 한다. 낯선 식감에 튀김을 몇 개 들춰보니 역시, 만두가 있었다. “사장님, 몰래 만두 넣으신 거에요~?” 만두 이상의 어떤 것을 먹은 기분에 밝게 여쭈었다. 사장님은 그런 건 몰래 넣어야 되는데 들켰다며 쑥스러워하셨다. 평소, 조금 무표정이신 분이라 잠깐 보는 웃는 낯이 무표정과 대비되어 더 밝게 보였다. 가게를 나서는 길에 돈을 더 내려는 나와 안 받으시려는 사장님 간의 짧은 실랑이가 있었다. 개원 초가 떠올랐다. 몰래 만두를 넣는 마음과 같이 애정 어린 치료를 했었다. 파일 파절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 단계 더 파일링을 해서 근관장에 딱 맞게 거터퍼처를 넣어주는 마음, 기공료가 조금 비싸도 경
고등학교 수학여행에 가면 장기자랑 대회를 합니다. 학생들이 주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춥니다. 늘 노래와 춤, 둘 중에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이 너무 구태 의연해 보였는지 수학여행을 앞둔 체육 시간에 체육 선생님께서 이제는 그런 틀에 박힌 것들에서 벗어나 뭔가 창의적인 것을 해봐야 한다고 한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귀담아 들은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장기자랑 대회… 모두가 춤과 노래를 준비하여 나온 가운데 딱 한 팀이 극을 준비해서 나왔습니다. 체육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은 그 학생들이었죠. 귀추가 주목된 가운데 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빗자루를 든 학생이 무대 위를 왔다 갔다… 오리걸음으로 몇 학생이 무대 위를 지나가고… 전달력이 전혀 없는 극은 그냥 그렇게 뭔가 하나보다 하다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수학여행 무대의 한계였습니다. 결국에는 춤을 잘 춘 학생이 1등, 노래를 잘한 학생이 2등과 3등을 차지하며 장기자랑 대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체육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은 학생들은 아무 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세트도 조명도 부실하고, 심지어 마이크도 충분치 않은 상황, 체육 선생님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 말씀을 귀담아 들은
치과 근처에 네母난 밥상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엄마가 차린 밥상을 지향하는 밥집답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메뉴를 구성해서 집밥처럼 지어낸다. 내 치과 근처에 있는 밥집이라 점심시간에 종종 찾게 되었다. 그런데 음식이 맛있는데도 불구하고 갈 때마다 손님이 별로 없었다. 불고기, 고등어구이, 제육볶음, 닭볶음탕 등을 참 맛있게 만들어내는 집인데 말이다.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가... 조금 구석진 골목에 있어서 그런가... 2층에 자리해서 그런가... 밥 맛있게 먹고 쉬어야 할 점심시간에 밥집 걱정을 해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인근 상권에는 회사 같은 것이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메뉴를 찾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밥집 사장님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 전단도 돌려보고, 손님들에게 부탁해서 리뷰를 늘려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으로 홍보를 하셨지만 손님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내 입에 맞는 밥을 넓은 자리에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일 텐데, 밥을 먹는 동안에는 항상 손님 없는 밥집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이 마음 한 켠에 자리했다. 그렇긴 해도 밥이라는 게 자꾸 먹다 보면 다른 걸 먹고 싶어지
우리 동네 시장 어귀에는 작은 약국이 있다. 청년 약사님이 운영하는 약국이다. 여섯 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 약국이 차려져 있다. 약들이 있는 공간, 약사님이 움직일 공간, 박스가 쌓여 있는 공간, 약국 손님들 몇 분이 서 있을 공간이 전부이다. 그런데 그 약국에 손님이 정말 많다. 약사님이 정말 쉴 새 없이 약을 파신다. 공간이 작은 탓에, 약사님의 동선이 짧기 때문에 약국이 돌아갈 수 있겠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어떤 이유로 약국이 잘 되는 것인가 궁금해 하던 차에, 약국에서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어~ 이렇게 이렇게 달라고? 알았어~. 이거 하고 이거~ 이것도 넣어 줄게~. 이거는 오전에 먹는 거~ 이거는 저녁에~” 고분 고분… 청년 약사님의 반말을 듣고 있는 상대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였다. ‘와~, 약사님 신기하다. 굽실 굽실 친절을 베풀어도 모자랄 판에 반말이라니……’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약국에 손님이 뜸할 때를 기다려 어떻게 하신 거냐고 약사님께 여쭈었다. 약사님 말씀이…… 타이밍 같은 게 있다고 한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낌이 온다고 한다. 반말을 하면 어르신이 좋아하실 것 같은 타이밍…… 그 타이밍에 반말을 잘 구사하
2022년은 갱년기로 보냈다. 직접 겪어본 갱년기는 심각한 번 아웃 내지는 급격한 노화와 같은 것이었다. 갱년기가 세냐 사춘기가 세냐,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갱년기가 그렇게 쉽게 볼 대상이 아니었다. 연말이 다 되어서야 겨우 기운을 차리고 산적한 일들을 처리하였다. 다행히 갱년기 증상들은 많이 사라졌다. 아침에 활기차게 집을 나서면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치료 계획을 세우면서, 임플란트의 위치와 각도를 잡으면서 임상가로서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끼고 있다. 갱년기를 겪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갱년기를 통해 노년의 삶을 살짝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갱년기 기간동안 노인 환자에 대해 많이 생각하였다. 노인 환자에게 치과 치료는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거동도 불편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사고력과 기억력도 쇠한 노인에게 치과 치료를 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성 통증과 우울로 지쳐 있는 노인에게는 입을 벌리고 고개를 돌리는 등 치과의사의 단순한 지시를 듣고 이행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치료에 대한 상담을 이해하고 주의사항을 숙지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노
남자 갱년기는 30대 후반에서 40대에 찾아온다고 한다. 40대 이후 50대에도 찾아오고,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찾아온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만나봤다. 그 증상이… 무기력감, 만성 피로, 집중력 저하, 우울증, 불면증, 자신감 상실, 복부 비만, 근력 저하, 관절통 등 치과의사에게 해로운 것들만 잔뜩이다. 올해, 봄으로 진입하는 환절기에 몸이 많이 피곤하고 우울감이 심했다. 진료 중간 중간에 사무를 봐야하는데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직원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저절로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병원에 좀 다녀야 할 것 같아서 수요일 오전 진료를 비우고 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날 직원들에게 점심을 사 주면서, 마음 먹은 것을 공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한을 정한 바는 없지만, 한 동안 수요일 오전에 진료를 비우겠다고 직원들에게 말하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남자 갱년기는 그런 것이었다. 별안간 쏟아지는 눈물이라니… 별 감정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하던 말을 마저 하였다. 수요일 오전에 진료를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출근할 필요 없다고… 원장이 울어서 그런 거였는지, 수요일에 쉬는 게 좋아서 그런 거였는지 직원들이 “어…어…
얼마 전, 우리 치과 옆에 있던 백화점이 문을 닫았다. 단일 점포 백화점으로서는 서울에서 유일한 백화점이었다. 27년 동안 성업했던, 이 동네의 랜드마크 백화점이었는데 코로나19라는 악재를 견디지 못 하고 결국 폐업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명품 백화점은 아니었지만 나름 인지도 있고, 나름 가성비 좋은 물건들이 많은 백화점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없어지고 나니 자주 가서 사 입고 사 먹고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치과 주변에 있던 치과 두 개가 1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요즘 떠오르고 있는 상권으로 떠난 것 같다. 우리 치과가 입지한 동네는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4호선 출구 주변은 오래된 상권이고 7호선 출구 주변은 새 상권이라 할 수 있다. 재래시장을 앞세운 오래된 상권의 세력은 막강했었다. 새 상권이 생긴 후로도 오래된 상권의 세력은 좀처럼 쇠하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한 백화점도 오래된 상권에 있었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곳에 터널이 하나 뚫리더니 흐름이 바뀌었다. 그 터널로 통하는 긴 대로가 새 상권과 만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새로 지어지는 건물은 모두 새 상권에 자리하고 있다. 새 상권 주변의 주거지역이 마
생각이 많아질 때면 한강 시민 공원에 가서 연을 날리곤 한다. 산적한 일들의 규모가 가늠이 되고 대략의 개요가 잡힐 때가 연을 날리러 갈 시간이다. 얼레를 감았다 풀었다 하면 복잡하게 얽힌 내 생각도 단조롭게 풀어진다. 연을 날리는 데 있어서는 바람의 도움이 결정적이다. 어떤 날은 얼레에서 실을 풀기가 무섭게 연이 날아올라버린다. 이런 날에는 실이 다 풀려 나간 얼레를 나무 가지 사이에 끼워 놓고 하늘 높이 오른 연을 구경해도 된다. 어떤 날은 내가 몸소 움직인 만큼만 연이 난다. 바람이 없는 날이다. 그런 날에는 전략이 좀 필요하다. 걷거나 뛸 수 있는 백 미터 이상의 땅을 확보하고 속도조절을 통해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연을 띄워 올려야 한다. 안 되는 날이라고 그냥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지면에서의 바람과 지상 십미터에서의 바람은 다를 수 있다. 연이 지상 십미터까지만 날아오르면 그 때부터는 연이 바람을 타면서 순식간에 높이 날아오를 수도 있다. 연이 바람을 타기 시작하면 이제는 내 노력을 들이는 것보다 바람의 도움을 잘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바람이 세서 연줄의 장력이 세지고 연이 떠오르면 얼레를 푼다. 바람이 도와줄 때 얼레를 풀어놓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