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해보세요.”
입안의 치아를 보면 시간이 보입니다.
그 안에는 환자의 세월이 담겨 있고, 저의 진료의 시간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올해로 개원 28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진료실에 앉던 날의 풍경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진료 의자 옆에는 호빵맨과 세균 인형을 붙여 두고, 아이들의 유치를 발치하며 설명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손도 서툴러 작은 처치 하나에도 하루 종일 고민하던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좋은 장비도 없었습니다. 변변한 엑스레이조차 부족한 환경에서 임플란트를 식립해야 했고, 모든 판단은 조심스러웠습니다. 한 번의 선택이 환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기에 늘 무거운 마음으로 진료에 임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주변의 도움과 배움 속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절 제가 치료했던 치아와 임플란트는 여전히 환자의 입안에 남아 있습니다. 마치 그때의 시간이 그대로 보존된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얼마 전 장애인 시설에서 구강검진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한 환자의 입안을 보는 순간,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5년 전 탈구된 치아를 살리기 위해 애쓰며 치료했던 환자였습니다. 피로 가득 찬 입안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 치아가 지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치료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의 삶을 뒤늦게 알게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한 번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고령의 환자에게 무료로 틀니를 제작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치료가 모두 끝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공사장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아들을 20년째 홀로 돌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라도 건강해야 아들을 지킬 수 있다는 마음으로, 꼬깃꼬깃 모은 돈을 들고 치과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진료 의자에서 마주하는 환자의 삶은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깊고 복잡합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환자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 잘 사용하셨습니다. 임플란트는 그대로 두시고, 보철만 새로 해드리겠습니다. 비용은 받지 않겠습니다.”
환자분들은 놀란 표정으로 되묻습니다.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저는 늘 같은 대답을 합니다.
“이익을 떠나, 평생 책임지는 치과의사로 남고 싶습니다.”
이미 그분들의 삶 속에 저의 치료가 깊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임상을 오래 하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성공한 보철 하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편하게 씹을 수 있고,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의 표정은 달라집니다.
반대로 부족한 보철 하나는 그 사람의 자신감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 책임 역시 결국 치과의사의 몫입니다.
요즘 치과 진료의 풍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임상의 많은 부분을 바꾸고 있습니다. 장비는 점점 더 정밀해지고, 치료 과정은 점점 더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대가 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환자를 향한 책임입니다.
지금의 의료 환경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광고와 경쟁 속에서 치과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후배들에게 한 가지를 꼭 말하고 싶습니다.
진료는 결국 사람을 향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치과의사는 치료를 하는 직업이지만, 동시에 환자의 삶 속에 오래 남는 흔적을 남기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20년 뒤, 30년 뒤에 다시 만나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치료자가 아니라, 환자의 삶의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진료실 문을 엽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아직도 책임져야 할 환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치과 치료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약속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20년 뒤의 환자를 떠올리며 조용히 말합니다.
“아,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