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저소득층 무료진료사업 수혜 노인
김진열 할아버지
“치과의사 너무 고맙다”
“이젠 맛있는 식사 기운 나는것 같아”
“윗 어금니 없이 수년간 생활 진료받은 후 소화 잘돼 기뻐”
“무료진료사업 어려운 사람에겐 희망이죠”
젠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있어 기운이 나는 것 같아. 밥맛도 더 좋은 것 같고…. 치과의사 선생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했는데 고맙다고 꼭 좀 전해줘.”
치협이 지난해 7월부터 전국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무료치과진료사업에 수혜자로 선정된 김진열(중계 3동·74세) 할아버지가 완성된 틀니를 들고 무척 기뻐했다.
김 할아버지는 현재 1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는 독거 노인으로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지급되는 37만원으로 한 달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중 전기, 전화료 등 관리비를 제하고 나면 쌀 외에 다른 음식을 구입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고 김 할아버지는 말했다. 방 옆에 옹색하게 자리한 주방에는 먹다만 풋고푸가 오래된 듯한 된장 곁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추운 겨울철에는 난방비로 지출되는 비용이 많아 세끼 밥이라도 제때 먹고살면 다행이라고 김 할아버지는 말했다. 최근 인근 교회에서 매주 쌀(3kg)을 갖다줘 그나마 다행이라는 김 할아버지는 세상엔 고마운 사람도 참 많다며 입가에 너그러운 미소를 흘렸다.
김 할아버지는 특히 두 달 전쯤 무료로 틀니를 해준 인근 치과의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못 건넨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치과에서 틀니를 건네 받고 볼일이 있어 급히 치과를 나오고 말았지 뭐야.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 말이야. 서두르지 않으면 해 떨어지기 전에 다 끝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랬나봐. 이후 따스한 어느 날 틀니를 하고 치과에 갔더니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는 거야. 순간 후회 되더라구.”
치과에서 틀니를 하기 전까지는 불편해도 돈이 없어 수년간이나 윗 어금니가 없는 상태로 지냈다는 김 할아버지는 우선 음식을 꼭꼭 씹어서 그런지 예전과 달리 소화가 잘 되는 것 같다고 무척 감사해 했다.
지금의 초라한 모습과 달리 김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육군 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6·25 참전용사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좁은 벽 한켠에 녹이 슨 훈장들과 먼지가 뽀얗게 쌓인, 국가유공자(1종)로 선정됐다는 증서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무려 4년간이나 전투를 벌였지.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어. 특히 1952년 12월 휴전선 근처의 두매(메)리 전투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전우들도 많이 죽었고….”
김 할아버지는 잠시 그때를 회상하는 듯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 할아버지의 오른쪽 정강이는 당시 전투중에 폭탄 파편이 스쳐 커다란 상처 흉터가 깊게 패여 있었다. 요즘 김 할아버지는 무릎 부분이 가끔 시큰거려와 거동하는데 불편을 겪고 있다.
낙 전투가 격렬해 정강이 정도 다친 것은 위생병이 오지도 않아. 전사자들이 넘쳐 났으니까. 압박붕대만 동여맨 채 전투를 계속 했지. 바로 치료만 받았어도 나이 들어 이렇게 불편해 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 후훗….”
김 할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운 전공에 대한 보답으로 국가로부터 의료급여증과 한달 생활비 37만원안에 포함된 일부 생활보조금을 지원받는게 전부다”며 “말로만 주어지는 유공자가 아닌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할아버지가 독거 노인이 된 것은 지난 십여년전 부터다. 사랑스런 아내가 이름 모를 병에 걸리기 전까지만해도 김 할아버지는 막노동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누렸었다.
지난 57년 7월 육군 상사로 군 제대후, 마땅한 일이 없어 막노동을 시작하며 모은 돈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년간 건설노동자로 일하면서 어렵게 모은 돈 등으로 김 할아버지는 조그만 집도 구했지만, 이내 아내 병원비로 모두 날리고 말았고 결국 1년간 입원해있던 아내마저 눈을 감고 말았다.
“요즘은 자식을 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