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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4.서양 의사들의 치과 진료

1885년 5월 3일 한국에 입국한 스크랜튼(Scranton, William Benton, 1856-1922)은 의사이며 선교사였다. 그는 1856년 5월 9일 코네티컷주 뉴헤이번에서 태어나, 뉴욕 시에 있는 내과외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1884년 12월 4일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듬해인 1885년 5월 3일 한국에 왔다.


스크랜톤(Scranton, William Benton, 1856~1922)은 1885년 5월 22일부터 그 해 6월 24일까지 북장로회의 알렌과 제중원에서 활동하였고, 1885년 6월 사임한 후 그는 병원을 개설하였다. 1886년 6월 15일 고종은 스크랜튼병원을 시병원(施病院)이라 이름을 지어주고 왕립 양호원처럼 대우하였다. 그러다가 1885년 6월부터는 독자적인 의료사업을 시작으로 1885년 6월 15일부터 4년 동안 총 12,209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그 가운데 치과 질환 진료로는 발치 이외에 특히 아구창(구강괴저병)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 후 스크랜튼은 감리교 선교부 간부로 감리교병원, 제일병원, 시병원, 보구여관, 상동병원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07년 6월 감리교 선교부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의료사업을 벌였다.
헤론(蕙論, John W. Heron, 1856-1890) 또한 의사이며 선교사로 입국하여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영국 태생의 미국인으로, 1885년 6월 20일 한국에 들어 왔다. 헤론 역시 선교사였지만, 한국에서 의료활동을 하였고, 1887년 9월 알렌의 후임으로 제중원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1890년 7월 26일 서울에서 사망함으로 주한 선교사 가운데 첫 순직자로 이름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헤론(蕙論, John W. Heron, 1856-1890)이 1888년 그의 어머니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면, 그 역시 치과 진료로 턱뼈 수술과 많은 발치를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1888년 6월 10일 사랑하는 어머님에게. (중략) 저는 지난 금요일에는 어그러진 지 16일이나 되는 턱뼈를 약 반시간 동안의 노력으로 바로 잡아 고쳐 주었습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은 수술은 별로 안 했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15개의 이를 뽑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치과의사와는 달리 보철 치료에 대한 기록은 발견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