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원장
“영인본 속간됐으면”
착각도 이런 착각이 있을까. ‘치의신보’를 볼 때마다 치대 재학 중 편집하던 ‘치대신문’과 ‘치과월보’를 편집하던 때가 떠오르다가 ‘내가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며칠 전 ‘서울대학교대학원 보철학전공 동문회 30년사’를 내면서 은근히 힘들었던 후유증이 가시기 전에 ‘치의신보’ 창간 41주년을 맞았다.
내 옆에는 늘 ‘치의신보’ 영인본 총6권이 있다. 영인본을 꺼내 놓고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의 낙원동 치협회관에서 영등포 시대 그리고 오늘의 송정동 치협 빌딩 시대를 끊어진 필름을 이어 보았다. 끊긴 필름은 징검다리처럼 건너 뛰어 보지만 어느 해 아침 치협 총회 개회식 시간에 무너졌던 성수대교는 복원되었지만 그처럼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초창기 영화 필름이 많이 없어졌다는 것. 필름에서 납을 추출하고 밀짚모자 테두리로 쓰느라고 무심결에 버리기도 했거니와 자료보관의 필연성과 당연성을 잊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일제강점 36년과 6·25와 4·19, 5·16 등 사회격동기를 거치면서 몸에 배어버린 생존우선의 생활철학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중전달매체 전달수단의 변화가 흐름이 아니라 폭포수 같아졌다. 활자와 종이에서 전보·전송·화상을 지나 초고속 문자·화상 이동시대로 말려들고 있다. 그래서 책이라거나 신문 등의 종이를 쓰는 문화가 사라질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컴퓨터로 세계 갑부가 된 빌게이츠도 고서 수집을 하였다는 소식은 예사롭지 않다.
‘치의신보’도 종이매체이고 ‘대한치과의사협회지도’, 1977년 1월부터 지금까지 발행하고 월간 ‘치과연구’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인들이 노트북이나 셀룰라폰이나 들고 다니지 신문이나 잡지는 버린 지 오래인 듯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며 종이가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이집트 파피루스처럼 확신한다. 이 확신 속에는 ‘치의신보’의 장래가 보장돼 있다는 뜻도 된다.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치의신보’의 지면 내용이다. 치협 기관지이지만 무적 치과의사가 늘고, 보건복지부에 구강팀이 폐지됐는가 하면, 임플랜트 관련 광고로 꽉 찬 광고나 지면이 폭넓은 반면 개원 개개인, 즉 치협 회원의 눈과 가슴에 와 닿는 기획한 지면은 얼마나 있는가 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묵묵히 개원가에 묻혀있는 회원에 관한 원고 1매 정도의 기사들이 적어 유감이다.
‘치의신보(축쇄판) 영인본’을 들쳐보면 ‘치의신보’ 기사 또는 기획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 영인본이 출간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홈페이지나 인터넷으로 필요한 것을 검색할 수는 있으나 오리지날 지면은 다르다. 지면을 차지하는 광고도 시대상이고 두세 줄의 인사동정이라도 큰 뉴스다.
10년간의 영인본을 기획은 했는지 궁금하다.
이준규 원장
“치의신보의 positioning 전략은”
마케팅 이론의 하나로 STP전략이 있다.
STP 전략은 segmentation(세분화), targeting(집중화), Positioning으로 나누는데, 이 가운데 positioning이란 소비자의 마음을 확 잡게 만든다는 뜻으로 쓰이는 마케팅 용어이다.
치의신보는 소비자, 즉 치과의사들의 마음을 어떻게 확 잡아둘수 있을 것인지, 그러한 치의신보의 포지셔닝 전략은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이 뜻깊은 날에 한번쯤은 자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치의신보는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성장, 발전해 왔음은 자타가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동안 질적으로 양적으로 성장한것은, 치의신보를 키우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역대 임원들과 직원들의 열정으로, 감사와 치하를 드리고자한다.
그러면 이제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먼저 현재의 치의신보의 상황을 면밀히 평가 해야 할 것이다.
치의신보가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가.치과와 관계있는 다른 치과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