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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수필(819)>
정겨워라, 사투리
김범수(UCLA 치과과정수료 현재 LA 개원)

"이런, 총구내미!" 하고 말한 때면 그것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무슨 일을 영리하게 해내지 못 한다는 뜻의 애정 표현이다. 현이는 5살이다. 어금니에 충치가 있다. 치료를 받던 첫날, 현이는 울면서 간호사에게 말했다. “이를 뽑는 기라예? 내가 마, 한 개도 안 아프다 안 캅니꺼.” 현이의 부모는 표준말을 쓰고 있어서 몰랐는데 아이가 어디서 사투리를 배웠을까? 물어보니 일하는 부모가 낮에 아이를 남의 집에 맡기는데 그 집 할머니가 경상도 분이란다. 나는 사투리 듣기를 좋아한다. 대학 때 미팅에서 만난 한 여학생이 경상도 억양을 쓰고 있었는데 한국말이 그토록 정답게 들리는 줄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지도(나도) 커피를 초아합니데이.” 하며 다소곳이 ‘애프터’신청을 받아들이던 모습이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런가하면 다른 과와 합반을 할 때 만나게 되는 학생 가운데 전라도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억양도 친근감이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워메, 이게 뭔 말이다냐? 이게 다 라틴말이당가? 이걸 다 외워야 학점이 나온다고이? 아이고 엄니요, 나 죽소이.”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도 가끔씩은 부모님이 쓰시던 ‘피양’식 억양이 나올 때가 있다. “이런, 총구내미!” 하고 말할 때면 그것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무슨 일을 영리하게 해내지 못 한다는 뜻의 애정 어린 표현이다. 또 오랜만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릴때면 서울식으로 똑 떨어지는 ‘어머니’보다는 ‘오마니’에 가까운 발음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이제는 한국 땅에서도 토속 사투리를 들어 보기 어렵다고 한다. 방송 매체를 통해서나 여러 가지 생활권의 압축으로 지역적인 특색을 지키기 어려운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는 지금도 ‘지방문화재급’의 유명 인사였던 호남 지방의 ‘욕쟁이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시장통의 국밥집 주인이었던 이 할머니는 돈 내고 밥 먹으러 오는 고관 대작(高官大爵) 손님을 앞에 놓고 걸직한 욕바가지를 한바탕씩 퍼붓고는 국밥을 내주곤 했다. 하지만 아무도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고 그 구수한 욕을 듣고 나면 더욱 식욕이 발동하여 훌훌 국밥을 말아먹고 그 집을 나섰다는 얘기다. 나도 학생 시절, 친구의 안내로 그 지방을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보았는데 우리 일행을 보더니 다짜고짜 “옴메, 요것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자슥들이 양복만 쪼옥 빼 입고 누굴 꼬수러 가냐? 요새 서울 것들은 다 제비여. 허라는 공부는 안허고이. 느그 부모 속이나 썩히지 말랑께, 이 썩을 놈들!” 하고 욕바가지를 퍼부었다. 억울한 한 친구가 그 할머니한테 볼멘 목소리로 반항을 했다. “왜 공부를 안 합니까?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공부를 하면서 이 원서를 파고 있는데.......” 그러자 우리가 시킨 쇠고기 국밥 대신 할머니의 욕지거리가 곱빼기로 날아왔다. “야. 이 잡것들 보랑께, 느그들이 뭘 갖고 사내 꼽팽이여! 내놔봐, 벗어봐.......”하고 따발총처럼 욕설이 이어졌는데 그 내용은 이 자리에 차마 옮길 수 없는 남녀의 특정 신체 부위에 관련된 것이었다.결국 우리 일행도 그분의 사투리에 끈끈한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며 맛있게 국밥을 비우고 돌아왔던 것이다. 군의관으로 입대해서 훈련을 받는 중에 한 번은 경상도 상관이 나타나서 인원 점검을 했다. 신병 하나가 귀청 떨어지게 씩씩한 목소리로 관등 성명을 밝히고 이름을 댔다. “XX의 신득룡임다.” 경상도 상관은 귀엽다는 듯이 반복했다. “니가 신덕룡이가?” “아님다. 저는 신득룡임다.” “그래 짜슥아, 신덕룡이 안 캤나.” “아님다. 저는 신득룡임다.” 잠자던 사자 상관의 코털을 건드린 그 날의 결과는 뻔한 스토리다. 한 명문 고교에 멍청한 아들의 보결 입학을 부탁하는 지방유지에게 경상도 교장이 내놓은 거절의 한 말씀. “마, 참, 쪼맨치만 거슥해도 머슥할 낀데, 마 억수로 머슥하니까 거슥하다 아닙니꺼?” 이건 100퍼센트 실화다. 아, 그리워라, 사투리여! 아, 그리워라. 나의 고향 땅, 한국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