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흔적과 오사카여행기(상)
정 성 훈
바텍 부산본부센터장
나에게는 어릴적부터 심심찮게 들어온 얘기가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얘기로 일제시대에 청운의 꿈을 찾아 오사카로 가셔서 당신들이 겪으셨던 얘기들, 그 중에서도 오사카의 동해남부선다리 위에서 실족을 하신 할머니에 대한 얘기는 우리가족의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먼 얘기로만 여겨졌었다. 어느덧 나의 나이도 불혹에 접어든 지금 아버지께서 부쩍 오사카에 대한 얘기를 자주하셨고 결국 어쩌면 이번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가족 6명은 2009년 7월 22일부터 25일까지 3박4일간 오사카를 여행하였다. 오사카의 조선인촌, 그곳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고모를 데리고 가셨고 우리 아버지가 태어나신곳이며, 해방직전까지 치열하게 사시다가 돌아오신 우리가족의 삶의 일부이기도 한 곳이다.
7월 22일 오후 3시 일그란데 호텔에서 Check in을 마친 후 우리는 곧바로 大淀豊崎 西通 5丁目 48번지 中津川筋 東海道線 鐵橋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내려 철교를 지난후 제법 걸으니 요도가와 강변이 나왔다. 난 만감이 뭔지 아직 잘 모른다. 마치 전설을 만나기라도 하듯, 아버지의 기억을 디딤돌 삼아 드디어 말로만 듣던 할머니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 도착을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평생소원인 할머니의 제사를 돌아가신 자리에서 거행했다. 이게 만감인가…제사를 드린직후 눈물이 터질려고 하였으나 애써 태연한 듯 막내동생과 가벼운 얘기들로 제사후를 정리했다. 어쩌면 아버지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셨을 것 같다. 황혼이신 아버지는 지금도 당신의 어머니를 생각하실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난 분명히 느낀다. 얼굴을 알지못하는 나의 할머니 이지만 따뜻하게 나를 어루만지시는듯한 기분에 그리고 아버지의 평생소원을 풀었다는 기분에 마음이 다소 평온해졌다. 나는 유유히 흐르는 요도가와강 쪽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그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이곳은 어떤땅 이었을까 하고, 이곳은 우리가족뿐 아니라 수많은 조선인들이 꿈을 좇아 찾아왔던 땅 이었다고 한다. 제사후 우리는 가까이 있는 나가라바시로 가서 아버지가 태어난 곳,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을 찾아가 보았다. 저녁에는 회전식 초밥 집에서 식사를 즐겼다.
오사카 성
7월 23일 아침 일찍 오사카 성을 방문하였다. 말로만 듣던 토요토미히데요시의 동상과 흔적을 보니 혼란이 왔다.여기서는 일본의 영웅중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가 천하통일의 거점으로서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난공불락의 거성앞에서 솔직히 나는 압도되어 버렸다. 이 성을 1583년에 착공하여 1585년, 그러니까 2년 만에 완공하였다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저 큰 돌 바위와 목재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옮겼을까? 도목수는 과연 누구였을까? 일본에서는 히데요시의 자랑이 대단하다. 천민으로 태어났지만 천하통일을 이룬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도는 무사 집단과 천하통일에 공을 세운 사람들과 집단에 대한 보상 문제와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조선을 통하여 명나라를 정벌하여 명실공히 중원과 인도까지 차지하겠다는 엄청난 계획이 그것이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조선에 출병하였지만 명나라 군대가 조선반도에 들이닥쳤기 때문에 철병하였다”라고.
풍국신사에 들려 보니 히데요시의 커다란 동상이 서 있었다. 사무실에는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한국어나 영어로 가이드를 해 주기를 요청했지만, 일본어로만 가이드를 한다고 대답했다. 아마 이 Volunteer Guide들은 자국민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히데요시를 칭찬하고 선전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