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0번째
화산몽접(和山夢蝶) (하)
- KBS 1박2일 시청자투어를 다녀와서
두번째 미션이 떨어지자 모두 뛰었습니다. “멤버 불러!” “주차장으로 와!” 하면서 조용하던 리조트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시청자 80명에 촬영팀 100여명이 이리저리 고함치면서 뛰면서 조용하던 리조트를 전쟁판으로 바꾸는 상상을 해보세요. 저희 열 명중 한 명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그사람 욕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되려 ‘XXXX’ 하면서 오는 겁니다. 로비에서 커피 마시다가 다들 뛰길래 저도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뛰었고, 강호동 군이 “아버님 짐 가지고 오셔야 해요” 하길래 다시 2층 숙소로 뛰어 가는데 이상하더랍니다. 다들 빈 몸인데 나는 왜 짐을 가져가야 하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속았지요, 강호동 군에게요.
여기서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저희 팀 59년생 역도부 OB팀원 호칭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MC몽 군은 형님이라고 하였지만 다들 ‘아버님’ ‘선생님’ 이라고 불렀습니다. 더 대단한 호칭은, 저는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어르신’이었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되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충격, 충격이었습니다.
곽지해수욕장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길을 묻는 저희들에게 맛난 노지귤을 한 상자나 주시는 분도 있었고 커피 한 잔 하라고 소매를 붙잡는 분도 있었습니다. 곽지해변에는 유명한 까나리 마시기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1등 도착은 유니버설발레단, 저희는 2등 이었습니다. 발레단은 16명이 모두 통과하였고 저희는 10명 중 4명이 걸렸습니다. 저는 강호동 군이 골라 준다고 받을 뻔 했는데 MC몽 군이 믿지 말라고 해서 옆의 것을 택해서 살았습니다. ‘까나리!’ 후유증은 높았습니다. 까나리를 마신 네 친구중 하나는 좍좍 설사를, 다른 하나는 두드러기 만개 였습니다. 둘은 멀쩡 하구요. 차안은 숨 쉴 때마다 나오는 구수한 까나리 냄새가 진동하였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두번째 미션인 ‘무슨오름’ 이름이 제가 기억나지 않는 겁니다. ‘양 머시기’라고 들은 것 같아 고민하다가 제주도에서 근무하는 해군 대령 친구한테 전화했습니다. 대령 친구는 사정을 듣고는 깔깔 웃으면서 조금 후 전화하겠다면서 제주 태생 사병을 붙여 주었습니다. 제 다른 친구는 경찰 친구한데, 또 다른 친구는 행안부에 전화하고 또 다른 친구는 농협친구한테 전화하고. 11명이 탄 봉고 버스는 요지경이었습니다. 이때 내비게이션을 보면 반칙입니다. 아무튼 우여곡절끝에 ‘새별오름’을 찾긴 찾았습니다. 여기서도 견제가 있었지요. 도저히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MC몽 군이 김C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형, 좀 가르쳐 주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 반쯤 착한 김C는 어떻게 했을까요! 틀린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반쯤 착하다는 것은 그래도 완전 틀린 곳이 아닌, 미션장소 바로 옆에 있는 오름을 가르쳐 주어 고생을 덜 했다는 의미이지, 믿을만 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새별오름’은 160미터 높이인데 비가 계속오고 있어서 매우 미끄러웠습니다. 새별오름은 정월 대보름날 짚불 태우기를 하는 세계적인 명소랍니다. 저희가 오르기 시작하는데 여자 럭비팀이 내려오면서 “선생님 저쪽 길이 더 빨라요”하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과연 정상에 오르고 보니 럭비팀 이야기가 맞았습니다. 안 믿어서 손해 봤지요. 강호동 군에게 속고 김C에게 속았는데 럭비팀을 믿을 수는 없었지요. 정상에는 묵찌빠로 유명한 카메라 감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기면 바로 내려가고 지면 5분 뒤 한 번 더 붙는 겁니다. 저희는 7판을 내리 져서 30분을 기다리면서 비오고 바람 부는 산에서 점점 생쥐가 되어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8번째 판은 져줬다고 하더군요. 부랴부랴 내려오니 저희 자동차 바퀴가 바람이 빠져 있는 겁니다! 어떻게 된 영문이냐 하면 저희가 오름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은지원군 팀이 먼저 와 있어서 은지원 군이 차를 빼지 못하게 바로 뒤에 주차했는데, 은지원 군은 저희 차의 바퀴바람을 빼고 강호동군 팀 차를 뺏어 가 버린 겁니다.
저희 팀은 5등이어서 역시나 점심미션에서 탈락되었습니다. 게임이란 게임은 모두 져서 화도 나지 않습니다. 이긴 팀 3팀은 족발을, 진 팀 4팀은 라면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MC몽 군과 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저희가 게임이란 게임을 전부 져서 안돼보였던지 메인 작가라는 분이 아무도 모르는 계란 세 개라면서 입단속을 신신당부하면서 주방에서 몰래 훔쳐다 주었고, MC몽 군은 족발을 몇 개 훔쳐 와서 열 명이서 단 한쪽씩 먹었습니다. 엄격한 1박2일에도 인정은 있었습니다.계란 세 개에 인정을 운운하는게 이상하시겠지만 이쯤되니 창피하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각 팀 소개 촬영을 하는 날은 정오경 조그만 도시락을 먹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게임에 져서 배를 타기위해 인천부두로 갔습니다. 절대 간식이든 뭐든 음식을 먹지 말라고 받은 주의는 잊은 채, 몇몇 친구가 라면이며 우동을 시켜 먹기 시작했습니다. 절반도 먹지 못했을 때 저희 팀 담당 작가 눈에 뜨인 겁니다. 20대 후반의 딸 같은 작가한테 사람 가득한 대합실에서 훈계 듣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외롭게 한 그릇 온전히 남은 라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때부터 계속되는 비로 자정 촬영 때까지 꼼짝 못하고 숙소대기 상태로 11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 좋은 제주에 와서 외출도 못하고 방에서 라면 끓여 먹고 싱싱한 회 한 점 못 먹고 아예 비린냄새 조차 못 맡은 여행은 처음입니다. 계속되는 비로 결국 운동장에 설치했던 무대장치를 실내로 옮기느라 저녁 촬영은 자정이 지나서 시작되었습니다. 백지영, 김태우 같은 연예인들이 바로 코앞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처음 보니 흥분도 되더군요. 그래서 제가 좀 흔들었던 모양인데 신나게 흔드는 모습이 방송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건데 저는 춤 잘 추지 못합니다. 그래서 백댄서 제의가 들어와도 저는 받아 들일수가 없습니다. 신나는 공연이 두어시간 이어지고 유명한 잠자리 복불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촬영으로 이미 상당 시간이 지나버려 사다리타기로 간단히 정했습니다. 저희 팀은 물론 져서 한데 잠을 자야했습니다. 이때가 아침 6시입니다. 그러고는 8시에 일어나 번개처럼 아침을 하고 마지막 해산 촬영을 하였습니다.
방송이란 현장에 직접 들어가 보니 송충이는 솔잎 먹는게 제격이란 생각이 맞습니다. 더구나 저같이 잠 많은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 강호동 군이 인기를 얻는 비결은 다름이 아닙니다. 많은 준비였습니다. 각 팀을 소개할 때마다 배경까지 언급하는 솜씨에 저는 반했습니다. 운동선수 출신이라고 조금 달리 보았는데 사용하는 언어구사력이 아나운서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촬영은 물론 기본 구도는 있겠지만 워낙 변화무쌍하게 진행되는 프로그램인지라 순발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저는 피디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밀리면 빼고 빠르면 늦춰서 물 흐르듯 강호동 군이 지휘하였습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PS. 우습지도 않은 광대짓을 하고 왔다고 나무라실 동료 분들이 계시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저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가볍게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민 경 호
서울 우리가족e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