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2번째
보스톤 마라톤대회의 추억(하)
<지난호에 이어>
보스턴 마라톤의 최대 볼거리 중 하나는 하프지점인 Wellesley에 힐러리 등 미국 유명 여성인사들이 나온 Wellesley 여자 대학의 여대생들의 열광적인 응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시나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있을 무렵 언덕 저편에서 여자들의 발광 소리가 들려 거의 하프 지점에 근접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비명과 함성을 지르며 손을 내미는 끝도 없이 늘어진 여대생들의 행렬은 정말 장관이었지만 말로만 듣던 “Kiss Me”라고 쓴 여대생은 찾을 수가 없어 사심을 버리고 계속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하프: 1시간 27분 27초)
춥지만 비가 그쳐 다행히 이런 볼거리도 빠지지 않았고 거리에 시민들이 양쪽 길가를 메우며 열심히 응원을 해준 덕분에 하프지점까지는 춥고 배고픈 느낌 외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시간적인 여유를 느끼며 달릴 수 있었지만 25km에서 35km 구간까지 수도 없이 나타나는 길고 짧은 언덕에 25km 파워젤 스테이션에서 받은 파워젤 2개를 털어 넣어도 체력이 점점 바닥나게 되었다. (30km: 2시간 5분 49초)
이게 마지막일거라고 생각했던 언덕을 힘겹게 넘었더니 저기 또 하나의 언덕이 보이고 내 자신과 심리전에서의 패배로 이 “상심의 언덕” 에서는 정신력, 근력 모두 바닥나 이젠 걸어야겠다고 결심을 했지만 너무도 열심히 응원하는 거리의 시민들 옆을 걸어갈 용기가 도저히 없어 이건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닌 기막힌 상황이 되어버렸고 아마도 여기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것 같다.
드디어 40km 표지판이 보이고 메트를 밟는 순간 시계를 보니 약 8분 정도가 남았고 써브3를 하기에는 2분 정도 모자란다. 너무 아쉽다.
펀런과 써브3 둘 다를 얻을 수 없는 걸 보니 역시 마라톤은 인생인 것 같다.
누구에게나 꿈은 많지만 다 이루며 살 수는 없는 일.
이제 남은 2km 지금부터는 시계는 보지 말고 달리자.
내 평생 이렇게 최선을 다한 마라톤은 없었을거야.
물론 시민의 열렬한 응원의 힘 덕분이지만 달리지도 못하고 끝날 줄 알았던 꿈의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이렇게 달렸다는 것만으로도 또 비가 그쳐 시민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소중한 추억을 얻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다.
써브3에 대한 마음을 비우니 몸도 가벼워지고 시민들의 얼굴도 더 잘 보인다.
사람들의 응원소리, 대회 아나운서의 마이크 소리에 결승선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의 이봉주도 이 길을 달렸겠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길 모퉁이를 돌고 나니 2004년 마라톤 입문 이후 내가 본 가장 멋있는 결승점이 눈에 들어온다.
결승선이 코 앞인데 지난 동아 마라톤때처럼 쥐가 난다.
사람들의 응원 소리에 귀도 멍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드디어 골인 (3시간 1분 44초, 대한민국 출전선수 170명중 2등)
힘든 고비 고비마다 코리아 파이팅,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쳐준 보스톤 시민들께 감사를 드리며 비싼 여행이라 본전 치기는 어려웠지만 마라톤 입문 이후 나의 보이지 않는 스승이었던 보스턴 마라톤을 달렸다는 것만으로도 마라톤 같은 인생에서 값진 성취감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우리 치과인 가족분들도 마음 속 꿈의 대회를 잘 준비하셔서 마라톤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원하시는 모든 꿈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그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라톤을 즐기고 있지만 좋은 운동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것 같아 함께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던 차에 유방암 후원을 위한 핑크리본 마라톤 대회를 뛰다가 아이디어를 얻게 되어 대한치과의사협회 주최로 구강암 및 얼굴기형 환우 후원을 위한 스마일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내부적으로는 치과의사, 치위생사, 기공사 등 치과인들을 위한 화합의 축제로서, 밖으로는 멀게만 느껴졌던 사회와의 거리를 후원을 통해 좀 더 가깝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성진
강남 차병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