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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9988 123!”
암호 같은 이 숫자를 처음 얘기해준 사람은 소강 민관식씨다. 최장수 문교부(교육)장관에 약사회장 7선의 명예회장이어서, 약사회 일을 맡았던 집사람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올림픽위원장 당시 태릉선수촌을 건립한 전설적인 인물답게 골프도 싱글 수준이었는데 독특한 습관이 하나 있다. 첫 홀에서 어려운 퍼팅을 가볍게 집어넣고는, “자, 봤지? 이제부터 그린에 올라오면 무조건 투 퍼트 OK야." 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하루 이틀 앓다가 사흘 만에 가자(?)는 “9988123" 의 전도사였는데, 정작 본인은, 아차! 88을 먼저(1918년 생, 2006년 서거) 하셨다.
전날 많은 지인들을 만나고(작별인사?) 테니스를 즐긴 다음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하여, 웰 다잉의 표본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필자가 담배를 끊는 일에 백만 원의 내기를 약속하셨는데, 2001년 현충일의 금연 이후 만나 뵐 기회가 없었다. 나중에 만나면(?) 꼭 결제해달라고 떼를 써야겠다.
1949년 창설된 해병대의 개인화기는 일제 99식 소총이었다. 제로 전투기보다 한 살 더 먹은 고물이지만, 사령관이 일개 중령이니 무기교체가 부지하세월이다.
결국 2개 대대 3백명이 해군무기고를 야습, M1을 탈취하여 무장을 갖추었다고 전설(?)은 전한다. 바로,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라!"는 해병대 정신의 탄생설화다. 1970년 해군 군의관 후보생들은 진해 의무단에서 훈련을 받았다. 춥고 배고픈 것은 훈련병의 영원한 생리인 데, 내무반 일본식 목조건물의 깨진 유리창으로 황소바람이 몰아친다. 어느 날 한밤에 비상이 걸렸다. 훈육관 한광수 소령의 지시에 따라 비어있는 한 건물을 의사 89명이 포위(?)한 다음, 유리를 뜯어내어 내무반 유리창을 말끔하게 갈아 끼웠다. 해병대정신의 산교육 현장이었다. 다음 주에 상남에서 받은 지옥훈련 즉, 직각식사·3분 식사·침투훈련·야간 행군·천자봉 구보 등은 이미 많이 소개된바 있어 설명을 줄인다.
장교, 사병 가릴 것 없이 가장 힘든 것은 피교육생시절, 즉 훈련과정이다. 유사시 명령에 따라 즉각 대응하도록 만드는, 군인이 되는 첫 관문이니까. 훈련이 끝나 자대에 배치된 후의 군대생활은, ‘고강도 훈련"에 비하면 양반이요, 요령이 생기고 고참이 될수록 점점 더 향상(?)된다. 오히려 사회의 특기를 살린 사병이야말로, 후임이 올 때까지는 꼼짝없이 빡세게(?) 복무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금언은 군에서도 진리이기에 인사참모의 서열이 높다. 그리고 인사의 기본은 개인 능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바로 ‘적재적소(適材適所)"가 아닌가? 가장 힘든 훈련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쳐서 자신을 충분히 증명했다면, 그에게 주는 ‘투 퍼트 OK"는 특혜가 아니다. 인기 높은 배우 현빈을 모병 홍보병으로 배치하는 일은, 우수 졸업생을 특기에 맞추어 배치하는 인사행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것뿐일까?
소강이 한밤에 전화로 필자의 금연약속을 받아낸 것은, 건강전도사로서 만나는 후배마다 던져주는 충고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후배들이 그 말을 흘려듣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그 분이 바로 소강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P.S : 지난 4월 22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해병대사령관의 합동참모회의 위원자격과 인사·군수 권리를 되살리는 법안을 의결했다. 고전적인 상륙전보다 기동타격대의 비중이 훨씬 커졌다는 당위성도 있지만, 연평도 포격사건과 현빈 입대 등 여론의 뒷받침도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상륙작전 시는 전과같이 작전 사령관인 해군제독 예하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