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rum]
치과 이름의 변천사
최근 길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중에 하나가 치과 간판인 것 같습니다. 제법 크다 싶은 건물에는 적어도 두셋의 치과 간판이 걸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간판들의 대다수에 국적을 알수 없는 외래어나 ~플란트가 들어있는 치과이름이 씌여 있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동네에 치과가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치과들은 대부분 원장의 이름이 곧 치과의 이름이었습니다. 적어도 ‘신촌김치과’ 같은 식으로 원장의 성(성)이라도 치과 이름에 들어있던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아무개치과의원’ 하면 ‘김아무개가 원장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 영어로 된 이름은 세련되고 아름답다는 사회분위기 속에 한글이름을 영어나 외래어처럼 표현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누네띠네’ 과자 이름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치과이름에도 ‘드림, 화이트’와 같은 영어가 많이 쓰였습니다. 영어를 선호하는 사회분위기와 함께 다양한 영어로 된 이름을 가진 치과가 많아졌고, 세련되면서도 튀는 이름을 가진 치과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단순히 튀거나 영어로 된 이름보다는, 특정한 치과 진료 항목 등을 내재하고 있는 치과 이름이나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치과이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OO플란트류의 이름을 가진 치과도 많고, ‘미소’나 ‘스마일’이 들어간 치과 이름에서, 신선하거나 편안한 이미지의 치과 이름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치과이름에 치과의사 이름을 넣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대형화, 병원화하는 치과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고, 환자들도 세련되고 전문적인 느낌을 주는 치과 이름을 더 쉽게 기억합니다. 공동개원인 치과에서 치과이름을 두고 원장들간에 다툴 수도 없는 일이고, 치과의사 이름이 들어가 있으면 검색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이 어렵거나 엉뚱한 검색이 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동명이인이 먼저 검색되거나 여러 치과이름이 겹칠 수도 있겠습니다. 현실적으로 요즘같은 시대에 원장의 이름을 치과이름으로 하는 일은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원장의 이름을 건 치과가 적어진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이제 환자들은 원장을 보고 치과를 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치과 원장보다는 시설이나 규모, 인테리어, 가격이나 이벤트, 온라인 광고와 같은 것들로 치과를 평가하고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선배님들 처럼 ‘내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해 진료할 것이고, 그 결과에도 책임을 질 것이다. 그러니 원장을 믿고 치료를 받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현실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감기에 걸려서 동네 내과에 갈때도 ‘아무개내과’라고 써 있으면 왠지 친근함과 함께 믿음이 가는 것은, 저 스스로도 간판에 이름을 걸고 치과를 개원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나 반성이 아닐까요? 또 시간이 지나면 어떤 치과이름이 많아질지 궁금해집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 진 구
연세오슬로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