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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논쟁 (禮訟論爭)
김 진 구
연세오슬로치과의원 원장
조선의 제18대 왕인 현종(1641-1674)은 15년의 짧은 재위기간 동안 심각한 정쟁을 겪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두번의 예송논쟁(禮訟論爭)이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면서 현종이 즉위하게 되었는데, 이 때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법적인 아들인 효종의 상을 맞아 상복을 입는 기간을 3년으로 할지 1년으로 할지에 대해 조정신료간 의견이 갈리었다. 인조의 장자가 아니었던 효종이 왕이 되었으므로 차남의 경우에 맞추어 1년간만 복을 입는 것이 맞다는 서인의 주장과, 일단 왕이 된 효종이 장남의 권위를 승계한 것으로 보아 장남의 예에 맞추어 그 계모가 3년간 복을 입어야 한다는 남인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어린 현종의 즉위와 동시에 일어났던 이 논쟁의 결과, 예학의 거두 송시열과 송준길로 대표되는 서인의 주장이 관철되었고 윤선도와 같은 남인들은 유배지에서 비참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것을 기해예송(己亥禮訟)이라고 한다.
1674년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가 죽는 일이 또 일어나고, 아직도 살아있는 자의대비는 또 다시 얼마나 복을 입어야 되는지로 남인과 서인의 의견이 갈리게 된다(왕의 계모정도 되면, 장수하는 것도 국가적으로 큰 이득이 아닐 수도 있다). 큰 며느리의 상을 당하면 시어머니는 기년복(1년)을, 작은 며느리의 경우에는 대공복(9개월)을 입는 것이 원칙이다. 서인은 효종이 승하했을 때도 작은 아들의 예로 관철시켰는데, 이제와서 밀리면 지난번 기해예송때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므로 대공복을 주장했다. 남인은 큰 아들의 예에 맞추어 기년복을 입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변수는, 1차예송때와는 다르게 장성한 현종이, 자기 아버지 효종대왕을 돌아가신지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적자취급하지 않는 서인에 대해서 큰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에는 자의대비는 큰 아들의 예에 맞추어 기년복을 입게되고, 서인의 거두 영의정 김수흥은 파직되고 유배되며, 남인들이 대거 중용된다. 이것이 갑인예송(甲寅禮訟)이다.
이 두번의 예송으로 십수명이 넘는 조정의 중신들이 파직되거나 유배되었으며, 현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숙종때에는 노론과 소론, 영조때에 시파와 벽파로 나뉘어 계속되는 정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계모가 죽은 아들과 며느리의 상복입는 기간’을 두고 국가 지도자들이 명운을 걸고 싸우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는, 지금의 기준에 생각해보면 비상식적인 논쟁일 수 있지만, 예학과 성리학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설정한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논쟁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현종은 재위기간 15년의 처음은 아버지상에 관한 기해예송으로, 마지막은 어머니 상에 관한 갑인예송으로 홍역을 치르고 시름시름 앓다가 같은 해에 사망한다. 또 재위기간 동안 가뭄과 재난으로 흉년이 계속되어 기근이 끊이지 않았으며, 인구의 20%가 굶어죽은 경신대기근(1670~71)이 있을 만큼, 특별한 외란 없이도 인구가 감소한 조선의 대표적인 암흑기였다. 어쩔 수 없는 기후이상 때문도 있었지만, 이 기간동안 현종이 한일은 기우제와 기청제(비가 그치기를 기원하는 의식)를 번갈아 지낸 것이 고작이다.
얼마전에 한의사 친구가 치과계는 전문의 문제, 직선제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에 ‘아직 치과는 먹고 살기 괜찮은가 보다’라고 하는 것을 듣고 적지않이 충격을 받았다. 전문의 제도를 빨리 정비하는 것도, 회장 선출의 방법을 정하는 것도 치과계의 미래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결정 사항이므로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을 거쳐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과계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치과가 잘 안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치과 경영이 어려운 원초적인 원인이 치과의사의 과잉공급이라면, 치과의사 더 많아져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관료나 대중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입학생 정원을 조정해 나갈지를 연구하는 것이 어렵지만 원초적인 해결책이다. ‘그래도 직장인 보단 더 벌잖아’라고 비아냥 거리는 시기어린 눈초리들에게, 치과의사가 정말 별볼일 없는 직업이 되는 것으로 반증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조선의 국시는 주자학과 성리학이지만, 치과계와 특히 치협의 목표는 ‘치과의사의 행복과 국민건강 증진, 의료정의 실현’이다. 예송논쟁도 중요하지만, 예상되는 재앙을 피하려는 실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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