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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올해의 수필상-아버지의 자전거

제1815~1816번째 이야기 2월 28일 / 3월 4일 게재



 회색빛 바구니가 달려 있고 변속기어가 없으며 검은색 각진 플라스틱 손잡이와 빛바랜 회색안장 그리고 앞바퀴와의 마찰력으로 전기를 만들어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빈티지(vintage) 스타일의 다홍색 자전거.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타시던 자전거이다.

아버지의 유품이라 생각하니
녹이 슬어 있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는데도 왠지 친근하다


작년 추석명절에 일이다. 추석이면 으레 온가족이 한상 가득 차려서 먹고 마시며 밥상을 치우는게 일이다. 추석특선영화도 재미없고 집안에 있기엔 볕이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 집에 혹시 탈만한 자전거 없어요?” 송편을 빚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타시던 자전거가 헛간에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가 남아 있었나?’ 기억을 더듬으며 헛간에 가보니 여기저기 녹슬고 거미줄이 잔뜩 진을 치고 있는 자전거가 한 대 웅크리고 있다. 헛간 터줏대감인 누렁이는 외부인의 방문이 마뜩잖은지 연신 짖어댄다. ‘이게 주인집 막내도련님을 몰라보고. ’


자전거를 꺼내 마당에 세워 놓으니 9년간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버지가 쓰셨던 물건에 대해서 관심을 갖거나 찾으려 애써 본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9년이나 지난 지금 새삼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라서 유난히 마음이 간다. 가만히 자전거를 바라보며 ‘네가 참 아버지가 많이 그리운가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유품이라 생각하니 녹이 슬어 있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는데도 왠지 친근하다. 폭이 좁은 타이어는 바람이 빠져 납작하게 눌리고 여기저기 갈라져 있어 금방이라도 찢어질거 같다. 자전거만큼이나 오래된 자전거펌프로 바람을 넣고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본다.


효심 깊은 둘째 아들이 사준 이 자전거를 타고 아버지는 대야 장터에도 가셨을 테고 농약통을 메고 밭에 나가 약을 치거나 삽과 쇠스랑을 싣고 농로를 달려 논에 나가서 일을 하시고, 가끔은 힘든 농사일로 부대낀 몸을 달래려 드신 약주로 자전거에 기대어 집으로 오셨을 게다.


견물생심! 지금이라도 당장 차에 싣고 아버지의 자전거를 가져가고 싶었지만 추석이라 어머님이 주신 찬거리와 야채며 쌀이 전리품마냥 차안에 한 가득이다. 아쉽지만 다음에 내려와서 가져가기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형! 아버지 타시던 자전거를
 서울로 가져가서 내가 타고 싶은데,
 형 생각은 어때?”


귀경길에 올라서 아내에게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를 가져오고 싶다고 운을 띄웠다. 아내는 자전거를 가져와서 거실에 전시라도 해놓을 거냐고 묻는다. “아니, 내가 타고 다닐거야” 그러자 아내는 톨게이트 통행료며 자동차 기름값이 더 들겠다며, 그럼 형들에게 당신이 가져가도 되는지 먼저 양해를 구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길 한다. 일리있는 말이다. 다음날 형들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형! 아버지 타시던 자전거를 서울로 가져가서 내가 타고 싶은데, 형 생각은 어때?” 현장에서 일하다말고 문자를 확인한 큰 형은 고맙다며, 그러라고 전화를 했다. 그런 일로 문자까지 준 동생이 기특했나보다. 본인은 왜 진즉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는 작은 형은 본인이 아버지에게 사드린 자전거이니 원소유권은 본인에게 있는거 아니냐며, 언제든 아버지 자전거가 싫증나거든 본인에게 꼭 넘겨야 한다고 웃으며 이야기 한다. 즐거운 실랑이다.


추석연휴를 보내고 몇 주가 지나고 나서야 어머니댁에 내려갈 수 있었다. 결혼한 이후로는 늘상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었는데 이렇게 혼자 차를 몰고 내려가 보기는 처음이다. 밤늦은 시각 도착해서 어머니가 당면을 푸짐하게 넣고 끓여주신 김치찌개며, 갓담은 겉저리,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박대구이로 저녁상을 물리고 드라마를 보면서 동네 이집 저집의 소식을 묻는다. 위뜸(위쪽에 위치한 마을)에 영택이는 언제쯤 장가를 가게 될 런지, 옆집 인숙이 신랑은 뭐하는 사람인지, 큰 누나네 건강원은 요새 장사가 잘 되는지…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뒤뜰과 앞마당과 텃밭을 둘러보니 대추나무와 감나무엔 가을햇살이 만들어낸 열매들로 가득하다. 초등학교시절 가을날 아침이면 나는 습관처럼 장독대 담벼락에 올라가 이슬먹은 대추를 따먹을 정도로 대추를 좋아했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단감을 한 소쿠리 따고 그렇게 좋아하는 대추도 따며 먹으며 한 박적(‘바가지’의 전북방언) 채웠다. 감따는 장대 끝에 집중하느라 고개가 아프다 싶은데 아침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랑 단둘이 마주한 소박한 아침밥상엔 햇살이 가득 내려 앉아 있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마음의 평안함. 이랬던 적이 마치 처음이었던 것처럼… 세상에서 한참이나 멀리 떠나온 듯한 편안함이다.


집안에 손자 손녀들이 태어날때마다 아버지는 감나무며 대추나무, 배나무 묘목을 대야장터에서 사다가 손자손녀의 이름을 붙여가며 심곤하셨다. 일종의 기념식수를 하셨던 셈이다. 추운 겨울날이면 학교를 다녀온 막내아들을 보시고는 아랫목 요를 들추시면서 춥다며 어여 들어오라고 아랫목을 내주시곤 하셨던 아버지다. 요를 들어 올려 속으로 들어갈라 치면 밥공기 뚜껑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벗겨진다. 아버지가 막내아들 뜨신 밥 먹으라며 넣어 두신 게다. 정겨운 기억이다.


아버지가 오시기도 전에 원서를 써가지고 지원할 대학에 가버렸다 …
얼마나 서운하시고 맥이 풀리셨을까?

철이 들어서 그때 일을 떠올리곤 할 때면… 아버지의 한참이나 처진 어깨가 눈에 선하다.
“아버지, 그땐 제가 정말 죄송했어요.”


아버지에 관한 가슴 시린 기억도 있다.


고 3때 원서를 쓰는데, 진학상담을 위해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학부모상담이 있던 날,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아버지가 오시기도 전에 원서를 써가지고 지원할 대학에 가버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오신 아버지는 이미 막내아들이 원서를 써가지고 갔다는 담임선생님의 말만 듣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원서를 접수하고 집에 돌아왔을때도 아버지는 내내 아무 말이 없으셨다. 얼마나 서운하시고 맥이 풀리셨을까? 철이 들어서 그때 일을 떠올리곤 할 때면… 아버지의 한참이나 처진 어깨가 눈에 선하다. “아버지, 그땐 제가 정말 죄송했어요.”
농번기의 농촌은 집지키는 누렁이의 손을 빌릴만큼 분주하다. 어느덧 집으로 향하는 경운기, 트랙터 소리가 저녁노을에 묻힐때쯤이면 쇠스랑이나 삽을 받아들고 아버지의 옆에 나란히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소한 일상이 마냥 좋았다. 하지만 농사일을 거들때마다 농사일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매번 투정부리는 것도 막내아들 몫이었다.


아버지는 눈이 많이 내린 날이면 마당 한켠에 눈을 치우고 볍씨를 뿌려놓고 먹을 것이 궁해진 참새들이 모여들기를 기다리셨다. 삼태기를 받쳐놓은 막대기에 새끼줄을 묶어 방안까지 늘여 놓고 한지로 바른 방문에 낸 조그마한 유리창으로 내다보시면서 경계심 많은 참새들이 방심한 틈을 노려 새끼줄을 잡아당겨서 잡은 참새로 참새구이를 해주기도 하셨다. 아버지 쉐프(chef)만의 겨울철의 별미다. 

 
빗자루로 자전거의 먼지를 털고 SUV 차량에 자전거를 싣고 서울로 올라왔다. 고속도로에서 운전대만 잡으면 졸음운전하는 버릇이 있어서 늘 가족들의 감시 1호 대상인데도 그날은 한번도 졸지 않고 거뜬히 올라올 만큼 나는 들떠 있었다. 아버지의 자전거가 내 차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에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좀 남아 있어서 백화점 명품시계관에 들렀더니 한 신사분이 직원에게 한참 불평중이다. 이유인 즉슨 비싸게 주고 산 명품시계가 시간이 느려져 안맞는다는 것이다. 직원은 태엽시계라서 중력때문에 느려질 수 있다고 해명한다. 그 말에 더 맘이 상한 고객은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주었다면 이 비싼 명품시계는 안샀을 거라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아빠를 기억해줄까?
우리 아빠가 쓰던 물건들이라며
간직하고 싶어 할까?
오늘 문득 궁금해진다.


느리게 가는 것… 우리 삶의 어느 순간도 중력때문에 느려졌으면 좋겠다. 고장난 시계마냥 멈추어도 좋겠다. 사람들마다 짧은 순간이지만 평생을 두고두고 곱씹을 때마다 기분좋아지게 만드는 기억들이 있다. 마지막 기말시험이 끝나고 우연히 음대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회오리바람에 하늘로 휘감아 올라가는 샛노란 은행잎들이 그랬고, 무더운 여름날 아카시아 나무 아래를 쉬이 흔들며 지나가는 향긋하고 시원한 실바람도 그랬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에 노곤함을 못이겨 달리는 버스 창가에 기대어 단잠에 빠져있던 순간에도 그랬다. 내내 바쁘고 쫓기던 일상속에서 이제는 멈춰서서 소중한 사람과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삶이 느리게 흘러 가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아빠를 기억해줄까? 우리 아빠가 쓰던 물건들이라며 간직하고 싶어 할까? 오늘 문득 궁금해진다.


다음 주 주말이 어머니의 생신이라서 온 가족들이 어머니댁에 모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서 이렇게 여쭤봤다. “엄마! 아버지가 차시던 손목시계! 아직 남아 있지 않아요?”


■수 상 소 감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 가슴이 먹먹 “사랑합니다”


어느 날인가 누군가를 안아주는 것이 사람의 건강에 매우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면역기능이 약해지신 연로하신 분들에게요. 생각해보니 성장하면서 수없이 저를 안아주셨던 어머니를 제가 안아드렸던 기억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흰머리도 제법 눈에 띄는 40대 아들의 수줍음일까요? 그래서 어머니를 뵈러가던 날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어머니를 안아드려야지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고 보니 마음이 어색해 만집니다. 조심히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시는 어머님을 바라보다 용기를 내어 차에서 내렸습니다. 이제는 허리가 많이 구부러지고 야위신 노모를 안아드리며 “사랑합니다. 어머니! 늘 건강하세요”라고 말해드렸습니다. 입으로 ‘사랑한다’ 고백하며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나니 수줍었던 마음이 한순간 따뜻해지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이제는 편안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글을 쓰는 작업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필의 제목을 생각하고 마음속의 즐거운 기억들과 생각들을 떠올리며 입술로 ‘사랑한다’ 고백하듯이 글로 다듬어 가는 과정이 말입니다.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서 가족들의 추도모임이 있는 날이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의 조각이 살아나며 퍼즐처럼 맞춰지고, 정겹게 아버지와 나누었던 입담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웃음짓는 우리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답니다.


‘아버지의 자전거’란 제목의 글을 쓰면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니 때론 가슴이 먹먹해지고 자주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내내 커져만 가는 그리움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도 일평생 아빠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써내려가며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올해의 수필상으로 뽑아주신 치의신보 관계자분들과 많이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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