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상가건물에 서너개씩 들어 차 있는 치과간판. 치과의사 인력과잉과 경제악화에 따른 환자수 감소로 병원경영에 시름이 깊어져만 가는 개원가지만 여전히 치과대학에는 상위 0.1%의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 재수·반수생 상당수
얼마 전 진행된 모 치과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신입생들의 절반 이상이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 특수고교 출신이었다. 이른바 SKY라 불리는 서울소재 명문 대학 이공계열학과에 입학했다가 재수 또는 반수를 해 다시 치과대학에 들어온 학생들도 상당수였다.
서울대 공대를 다니다 반수를 해 치과대학에 들어온 한 학생은 “고교시절 물리와 화학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공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를 다녀보니 이 전공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과에 맞춰 회사원이 돼 자동차의 부속품과 같은 삶을 사느니 스스로 주체가 되는 삶을 살고 싶어 치과대학에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치과대학 수가 줄어들어 지원 학생들의 점수대가 더 높아진 것 같다. 수능점수를 기준으로 하면 상위 0.1~0.2% 사이의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이는 전국등수 500등 안팎이다.
내년부터는 경희·경북·조선·전북대 등 기존 치전원에서 다시 치과대학으로 전환하는 대학들이 늘어남에 따라 현 250여명 수준이던 치대입학정원이 500여명 수준으로 두 배 가깝게 늘어 아슬아슬한 성적대에 있던 상위권 학생들에게 치과대학의 인기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대치동 학원가의 한 관계자는 “의학계열 입학정원 증가에 따라 벌써 각 대학별 전형에 맞춘 일대일 맞춤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의·치대를 지원하는 중학생들을 위한 조기교육반도 인기”라며 “의학계열은 학생들에게나 학부모들에게나 인기가 식지 않는 과”라고 말했다.
# 벌이 좋고 자유로운 직업 인식
치과대학에 대한 이 같은 상위권 학생 쏠림 현상은 당연히 수익적인 부분에 대한 매력이 크다.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벌이도 좋고 자유로운 직업으로 인식된다는 것.
수도권소재 치과대학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치과의사가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직업이라 생각하고 지원했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가끔 친구들과 진지한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유 있는 삶에 대한 ‘장밋빛 꿈’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치과대학 관계자는 “고교를 졸업하고 치과대학에 바로 들어온 학생들의 진학 동기는 대체적으로 수익에 대한 기대와 치과의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위상 등”이라며 “그러나 빡빡한 학사일정에 묻혀 살던 학생들이 어려운 치과계 환경에 대해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되는 것은 요즈음 같은 졸업시즌”이라고 말했다.
한 개원의는 “우수한 후배들이 모교에 몰린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어려운 개원가 현실을 보면 최상위권 학생들이 치과대학을 가서 나중에 만족할지 의문”이라며 “현실은 그렇게 우수한 인재들이 원하는 만큼 모든 것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