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이 사무장 병원의 또 다른 루트로 악용된다는 우려가 치과계는 물론 보건의료계를 비롯한 정부나 국회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해마다 되풀이 되는 부분으로 의료생협이 더 이상 사무장병원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의료인의 윤리의식’은 물론 ‘지역민(조합원)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정부의 지속적인 현지조사’ 등 지속적인 관리가 뒷받침돼야 가능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민간·의료인 상생 조성
의료생협이 국내 최초로 설립된 것은 안성의료생협이 만들어진 지난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는 의료보험이 생기기 전 국민들의 의료비를 줄이고자 만들어 민간의료보험조합운동본부라는 단체를 통해 민간과 의료기관이 상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나갔다.
특히 2010년 9월 생협법 개정으로 제46조에 사실상 ‘100분의 50 범위에서 비조합원에 대해서도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2011년도부터는 의료생협 설립이 급증했다
보건복지부 요양기관 및 협동조합 인가 등 현황에 따르면 2014년 5월 현재 전국에 총 383개의 의료협동조합이 설립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108개에 지나지 않았던 의료생협이 무려 5년만에 4배가량 증가하는 등 큰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의료생협의 태동 취지는 지역민에게 보다 신속하게 의료서비스 및 건강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서 현재도 건전한 의료생협의 경우 지역민과 함께 상생을 하고 있다. 투명하게만 운영되면 지역민에게 원활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인에게는 원활한 환자 수급으로 서로 ‘윈윈 전략’을 만들어 낼 모범적인 모델이다.
# 변질 의료생협 관리 “엉망”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의해 근거해 300명의 조합원, 출자금 3000만원의 생협 설립요건을 갖추면 지방자치단체장의 승인을 얻어 설립할 수 있다는 느슨한 설립요건과 일부 몰지각한 설립자들의 금전적 이해관계가 들어가면 의료생협 본연의 취지는 충분히 퇴색될 수 있다.
이에 비의료인도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고, 전체 환자의 50%를 비조합원으로 채울 수 있다는 조항까지 더해지면서 일부 변질된 의료생협의 모습은 ‘의료생협=진화된 사무장병원’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있다.
실제로 전체 환자의 50%를 조합원이 아닌 일반환자로 채울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합원인지 여부도 묻지 않은 채 진료가 가능하다고 답변이 돌아오는 의료생협도 확인 결과 서울에 존재하고 있으며, 몰지각한 마케팅 수법을 동원해 환자 끌어오기에 혈안이 된 의료생협도 볼 수 있었다.
서울 모 지역에 의료생협을 내걸고 진료를 하는 치과는 일반인도 진료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여러 설명없이)가능하다. 의료조합 행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일반 치과에 비해 10~15%정도 진료비가 저렴하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치과의 경우 몇 해 전에도 사무장병원으로 의심돼, 지역구회 개원의들로부터 언성을 들어오고 있던 치과로 전화를 걸자 자동응답으로 흘러나오는 정보는 의료생협이라는 정보 대신 “임플란트, 보철, 교정 전문치과입니다”라는 메시지로, 무늬만 의료생협으로 운영되는 치과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치과, 성형외과, 피부과 등을 부설 의원으로 두고 있는 경기도의 한 의료생협도 홍보성 기사를 통해 조합에 가입하면 평생동안 ▲치과 임플란트 심미, 보철치료 등 비급여 진료비 20% 할인 ▲성형외과 가슴, 눈, 코 등 성형수술 20% 할인, 레이저 및 각종 시술 10% 할인 ▲피부과 비급여 진료비 10%, 레이저 및 시술 10%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홍보하고 있었다.
실제로 불법 의료생협을 적발하고 있는 일선 검찰 수사관들은 지금까지 의료생협을 만드는 일은 너무 쉬웠다는 용의자들의 자백을 듣고 혀를 내둘렀다고 소개했다.
모 검찰청의 한 수사관은 “기존에 사무장병원을 운영해 구속됐던 사람이 3개월 만에 의료생협법을 이용해 불법적인 의료기관을 개설해 잡혀왔다”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완전히 ‘누워서 떡먹기’였다고 할 만큼 설립이 쉬운 것이 바로 의료생협으로 사무장병원의 진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건전한 의료생협을 국내에 육성해온 인하의대 임종한 교수(한국의료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의료생협 현장을 가보면 실상을 쉽게 알 수 있다”면서 “관리감독기관을 복지부로 일원화하는 한편 건보공단에서 관리감독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는 명예건강감독관 위촉을 해 사무장병원으로 의료생협이 변질되는 불법 사례를 막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국회, 정부 “드디어 나서나?!”
이 같이 의료생협이 고차원적인 불법 사무장병원으로 탈바꿈하는 흐름에 따라 정부는 서류만 제출하면 인가를 해주던 과거방식에서 벗어나 본연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현지 실사까지 진행하는 등 의료생협을 적극 관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9월 의료생협 설립인가 기준을 기획재정부 소관 협동조합기본법의 ‘의료사회적협동조합’ 수준으로 강화키로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와 합의하는 등 탈법적 의료생협 정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의료사회적협동조합이란 의료생협과 소관 법률만 다를 뿐 모두 협동조합의 형태로서 복지부 장관 인가를 받아야 하는 등 보다 더 투명한 의료생협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점차 증가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와 기재부는 현재 생협법에 의해 300명의 조합원, 출자금 3000만원만 있으면 지방자치단체장 승인으로 의료생협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설립요건을 ▲보건복지부장관 인가 ▲최소 조합원수 500인 ▲최저 출자금 1억원 ▲1인당 최저출자금 5만원 ▲1인당 최고출자금 총 출자금 10%로 제한 ▲특수관계인 출자제한 ▲자기자본비율 50% 이상 ▲의무사항 경영공시 등으로 강화할 방침이다<의료생협과 의료사회적협동조합 비교 표 참조>.
이와 때를 같이 해 국회에서도 의료생협의 허술한 법령을 보다 강화시키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정보위원회)도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생활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현재 국회 계류중이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현재보다 강력한 규제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는 보건의료사업을 하는 조합의 설립에 필요한 조합원 1인당 최저 출자금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특정인의 영리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루트를 차단하는 한편 보건의료사업을 하는 조합의 임원이 특정인의 친인척 위주로 구성되는 것을 제한했다.
또 보건의료사업을 하는 조합의 경우 일정한 친인척 이사들이 현원의 2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이사와 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은 감사가 될 수 없도록 법 조항을 강화했다.
이밖에 의료생협이 추가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당초 조합 설립 인가를 해준 시·도지사로부터 별도의 인가를 받도록 해 다수의 의료기관을 개설해 영리추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방지토록 했다.
그러나 사무장병원화 하려는 목적이 크다면 교묘히 법망을 피할 수 있어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