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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Relay Essay 제2084번째, 제2085번째

대학을 막 졸업하고 동문 선배이자 동아리 선배님 치과에 근무의사로 들어갔다. 진료 전반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치과 경영과 사회 초년생의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살펴주셨다. 사모님께서 내 점심 도시락까지 보내주신 일도 빈번했다. 치과의사로 걸음마를 떼는 시기에 깊은 관심과 사랑을 주신 선배님 곁을 떠나 개원을 하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나의 멘토 선배님은 대한치과의사합창단(이하 DENTAL CHORUS)의 창단 때인 1990년부터 단원으로 활동하셨기에 나도 덴탈코러스 정기연주회에 몇 번 관객으로 또는 후원회원으로 참석했었다. 1997년 우리치과에서 가까운 곳으로 합창단 연습장소가 옮겨왔다며 내게 입단을 권하셨다. 노래 부르는 것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사랑하는 선배님의 권유이기에 공손히 연습실에 따라갔다. 합창연습에 참여한 첫 해에는 악보를 제대로 볼 줄도 몰랐고 마음과는 달리 노래는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황홀한 미성을 가진 합창단원들의 화음을 듣는 월요일 저녁이 즐거웠다.

월요병이란 단어는 벌써 잊어버렸고 여성단원들이 챙겨주시는 맛있는 간식에도 마음을 빼앗겼다. 합창단에서 연습하던 곡이 라디오에서 나오면 무척 반가워서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

연말이 되어 제7회 정기연주회 공연에 서게 되었을 때 떨리고 설레던 리허설 시간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객석이 채워지고 무대에 올라서서 조명이 들어오니 떨리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지휘자 선생님의 지휘봉을 바라보랴 표시가 가득 적힌 악보보랴 정신없이 어느새 첫 무대가 끝나있었다. 여러 단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첫 공연을 마치고 감동이 남아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로운 단원을 맞이하고 또 다른 곡을 연습하고 지휘자와 반주자 선생님이 바뀌고, 선배 단원의 떠남을 지켜보기도 하면서 함께 무대에 서다 보니 벌써 열아홉 해가 되었다. 2010년에 안식년을 맞아 진료와 합창연습을 쉬었던 한해를 제외하고는 매주 월요일마다 덴탈코러스에서 사랑하고 노래해왔다. 처음에는 즐겁게 노래만 따라 불렀다. 어느 해에 이사를 맡게 되었고 그 후 오랜 시간 홍보이사로 활동해오다가 지난 3년 동안 부회장의 중책을 맡아 덴탈코러스의 살림을 돕고 있다.

회장단을 맡기 전에는 회장단은 수고가 많겠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무엇인가 부탁하시면 돕는 정도로 지내왔다. 그러다가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부회장에 선출되고 보니 회장단의 책임이 무척 많아서 놀랐다. 긴 세월동안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봉사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부모님 사랑 안에서 무심히 자라다가 어느 날 부모가 되고 보니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듯이 선배단원들의 큰 사랑을 알게 되었고 후배단원들이 더욱 사랑스럽다.

25회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곡은 뮤지컬 맘마미아 메들리였다. 일단 가사를 외웠는데 안무를 익히려고 하니 가사가 기억나지 않고 가사를 생각하면 손과 발이 따로 놀았다. 연주회 전날까지 거울에다 가사를 붙여두고 안무연습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중에 안무와 가사를 번갈아 놓쳤으니 관객들이 부디 즐거우셨기를 바란다.

덴탈코러스는 내가 입단하기 전 하와이 교민 초청연주를 시작으로 3년 후에 오스트리아 건국 1000주년 축제에 다녀왔다고 한다. 내가 입단한 후에도 3년마다 해외 초청연주를 다녀오고 있다. 지중해의 작은 나라 말타의 세계합창축제에 세계유일의 치과의사합창단 자격으로 초청되었고 성악의 본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베르디 음악원 초청으로 푸치니홀에서 연주도 하였다.

물론 이탈리아에 간 길에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야외 오페라 ‘아이다’를 관람하는 호사도 누렸다. 이렇듯 덴탈코러스의 여행은 특별하다. 패키지여행으로는 돌아보기 어려운 곳도 찾아가고 세계적인 공연도 함께 볼 수 있다. 전세유람선을 타고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제노바 해안을 바라보며 청아한 초승달 아래 수많은 별을 이고 은빛 물결 일렁이는 밤바다 위에서 가족들까지 함께 불렀던 합창은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백야의 땅 북유럽의 먼 이국땅 교민들의 외로운 향수를 달래주었던 노르웨이 한인교회에서의 감격도 기억에 남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북서쪽에 있는 몬세랏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에스꼴라니아 소년합창단의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운도 덴탈코러스와 함께 안았다. 13세기에 창단된 유럽최초의 소년합창단인 에스꼴라니아 합창단은 오직 그 수도원의 미사시간에만 노래한다. 스페인 최초로 설립된 론다 투우장에서 부른 아리랑의 선율은 공연장에서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었다. 작년에 터키여행에서 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 던 순간은 뭐라 말로 할 수 없다.

음악을 사랑하여 모인 덴탈코러스는 한 해 동안 열심히 준비한 정기연주회를 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내기 아쉬운 맘에 해마다 수익금의 일부로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갔다.

올해는 어떤 사정으로 누구에게도 사랑과 이해를 받을 수 없게 되고 사회의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고 계시는 김하종 신부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성남에 자리한 ‘안나의 집’을 후원했다.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집 나온 가출청소년이 사회의 어두운 곳으로 추락하는 사례를 줄이려고 반년 전부터 ‘아지트’사업도 시작하셨다고 한다.

아이들을 지키는 트럭의 줄임말로 일주일에 세 번,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같은 장소에서 어른들을 믿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기다리신단다. 간식을 주고 말벗이 되고, 닫힌 마음이 열리기를 바라며 병원 치료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일을 돕는다고 하셨다.

한국이 좋아 고향 이탈리아를 떠나 귀화한 김하종 신부님은 곧 60살이 되지만 거리의 아이들과 만나면서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눈시울을 붉히셨다. 우리가 갖는 작은 관심이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를 조금이라도 밝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난 11월 미국의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보도에 따르면 치과의사가 건강에 가장 좋지 않은 직업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치의신보의 창간 49주년기념으로 실시한 치과의사 건강상태 설문조사에서 30%의 치과의사들이 우울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어려운 개원환경 일수록 가족과의 대화를 늘리고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취미생활에서 활력을 찾는 것은 어떨까. 지금이 기회다.

덴탈코러스는 제25회 정기연주회 공연을 마치고 겨울 방학을 했다. 이른 봄에 다시 모여서 새로운 악보를 마주할 것이고 노래를 사랑하는 신입단원도 맞이할 것이다.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단원들과 광주시립합창단의 상임지휘를 맡고 계시는 훌륭한 지휘자 선생님과 피아니스트로 연주활동도 활발한 반주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나에게는 어렵지만 또 아름다운 합창에 도전할 것이다.

노래 부르기보다는 듣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30회 그리고 40회 정기연주회까지 덴탈코러스의 단원들과 함께 그리고 새롭게 덴탈코러스의 문을 두드릴 치과의사 선생님과 그 가족들과 함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싶다. 

허진경  다나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