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다양해진 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 중에 ‘나의 역사 쓰기’라는 것이 눈에 띄더라고요. 자신의 인생을 길게 펼쳐 연대기를 쓰기도 하고 나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찾아보기도 하고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펼쳐보기도 한대요. 자신이 이제껏 살았던 삶의 방식을 살펴보다 보면 자기에게 흐르고 있는 내면의 힘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힘은 앞으로 살아갈 힘이 된다고 합니다.
건축가 승효상씨는 어느 책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근거없는 말이라고 얘기할 때 터무니없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터에 새겨진 무늬를 다 없애버린다, 터에 새겨진 무늬가 없다는 뜻이래요. 집을 지을 때도 그 전 땅에 있었던 모든 기억을 허물어 터무니를 없애고 새집을 짓는 것 보다 터무니의 기억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요. 그것이 지속가능한 건축이라고.
우리의 역사인 삶을 들여다보는 이유도 그런 거겠지요. 터무늬의 기억을 찾는 것. 함께 나누고 픈 노래가 있습니다. bright eyes가 부르는 first day of my life.
글쎄요, 당신 인생의 첫날은 언제였을까요? 그 날은 물리적, 육체적으로 세상에 태어난 첫 날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알싸한 아픔 같은 것을 처음 느꼈던 첫 사랑이 시작된 날일지도 모르겠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고아처럼 남겨졌던 두려운 고독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내 삶을 통째로 흔들리게 했던 어떤 순간을 책에서, 영화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만났던 날, 난생처음 분노를 느꼈던 그 사건이나, 타인을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던 그 일이 있을 후, 전과는 다른 삶이 시작됐을 수도 있겠죠. 예기치 않았던 엄청난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리라 다짐했던 그 날, 작은 감사가 시작되었던 날, 어쩜 그 날일 수도 있겠네요.
겨울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나의 살아온 날들을, 지나온 한 해를, 나의 역사를 보듬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엄선영
안산 한마음치과의원 치과위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