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에 대형마트가 처음으로 생겨 가족끼리, 친구끼리 구경 가는 것이 특별한 일이었던 적도 있었다. 아파트 분양 광고에도 부지 인근에 대형마트가 있다는 것이 엄청난 장점인 것처럼 부각하여 광고를 하는 요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형마트가 있는 건물에는 음식점, 안경점, 세탁소, 커피전문점, 심지어 영화관 등 마트 안에서 어지간한 일들은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으니, 생활에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언제부턴가 나도 장을 본다는 것은 마트를 같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고,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가 본 일이 손에 꼽힐 정도가 되었다.
내가 대형마트를 자주 찾게 된 것은 단지 깨끗한 실내에서 잘 정리된 물건들을 보고 살 수 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소한 기본은 되는 듯한 품질의 상품을 더 싸게 산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일 것 같다. 특히 1+1의 유혹은 하나 가격에 두 개의 물건을 ‘득템’한다는 심리 때문에 굳이 2개가 필요 없는 음식, 또는 물건이라도 카트에 담고 나선 필요한 것이었는데 싸게 잘 사는 것 같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는 창고형 마트에서 더욱 심해진다. 대용량 제품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 창고에서 1개당 가격이 다른 곳에서 구입할 때의 개별가격에 비해 월등히 싼 것을 확인하고, 언제 다 먹을지 모르는, 언제 다 쓸지 기약 없는 대용량 제품을 카트에 담는다. 그리고는 이만하면 현명한 소비를 했다며 뿌듯해 한다.
그렇게 현명하게 들여 놓은 음식이 한 가득 집에 있으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저거 언제 다 먹지. 얼른 먹어 ‘치워야’ 할텐데… 냉장고를 열어 볼 때마다 숙제처럼 눈 앞에 아른거리며 신경 쓰이는 존재가 되었다가, 억지로 욱여 넣어 먹는 것이 반,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것이 반쯤 되는 것 같다. 결국 내게 필요한 양은 1+1이 아니라 단지 1이었던 것이 판가름 나는 순간이다. 현명한 소비를 하고 낭비벽이 없다고 잠시나마 뿌듯해 했던 나는 마케팅의 호구가 되어 쓰레기만 양산한 소비자가 되어 버렸다.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따라다니며 보던 엄마의 시장에서 장보기는 말 그대로 꼭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식이었던 것 같다. 시장 상인과 흥정을 하고, 단골집으로부터 ‘득템’을 하여 양 손 가득 무겁게 든 비닐봉지에는 뭐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물론 지금처럼 맞벌이가 흔하지 않고, 평일 저녁 찬 거리를 매일 시장에서 공수해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환경과는 다른 옛날이지만, 한 번 장을 볼 때마다 커다란 카트를 꽉꽉 채울 일도, 장 본 물품들을 자동차가 아니면 옮기기 힘든 일도 드물었다. 신선한 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사다가 쌀 한 톨 허투루 버리지 않는 어머니의 소비생활은 지금도 귀감이 될 일이다. 손은 크더라도 낭비벽이 아니라는 주장에 걸맞는 현명한 소비를 하도록 해야겠다. 비록 이번 주말까지는 마트에서 쓴 영수증에 찍힌 3+1 품목을 보며 짧은 탄식이 나오더라도 말이다.
이은경 부산대학교 소아치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