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온갖 성격의 환자들이 들고 난다. 진료내용 자체나 진료비는 물론, 의료진의 태도 하나에도 예민하고 까칠하게 시비를 걸어오는 ‘진상 환자’들과 마주치기는 다반사.
욕설에 폭력까지 수위를 더 한 ‘초 진상’ 환자들이 등장할 때면 의료진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의료진들의 스트레스는 그야 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작은 일에도 짜증이 더해지는 요즘. 치과 의료진들의 스트레스에 기름을 들이 붓는 치과 진료실 환자들의 ‘천태만상’을 들여다봤다.
대기실 공공의 적 ‘비 매너 환자’
“아가씨(치과위생사) 진료도 받았는데 좀 더 있다 가도 되죠? 날도 더운데 여기는(치과) 에어컨도 빵빵하고 커피도 있고, 어디 옮기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서울 모 치과의 스탭은 며칠 전 스케일링을 받고 난후 두 시간 가량이나 치과대기실을 차지하고 앉아 있던 50대 후반의 남성 환자를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 거린다.
“날이 덥긴 더운가 봐요. 그래도 그렇지. 반말도 그렇고. 치과를 커피숍쯤으로 착각하신 건지. 대기실에서 커피를 뽑아 드시며 비치해 둔 신문을 끝까지 정독하시더니,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며 업무까지 하시더라고요. 목소리가 어찌나 크신지, 같이 있던 환자들은 물론, 진료하시던 원장님마저 짜증을 다 내시더라고요. 진료까지 받으신 분을 야박하게 가시라고 할 수도 없고...”
진료대기실 사용 매너가 ‘꽝’인 비 매너 환자들은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다.
마감시간 넘겨 막무가내 진료 요구 ‘밉상 환자’
“저 같은 경우는 퇴근하면 곧바로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해서 늘 마음이 조급한데 꼭 마감시간이 지나고 와서는 막무가내로 ‘진료를 해 달라’고 우기시는 환자들을 만나면 정말 난처해요.”
치과에서 특히나 스탭들이 가장 싫어하는 환자 중 하나는 마감시간 1~2분을 넘긴 후 찾아와 굳이 진료를 해 달라고 우기는 경우다.
미리 예약 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위급상황도 아닌데 이런 저런 핑계에 자기 사정만 얘기하면서 “지금 꼭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우기는 환자들이야 말로 ‘밉상’이다.
“사실 이럴 땐 원장님께서 단호하게 결단을 내려주셔야 하는데 원장님 입장에서는 치과경영이나 이미지를 생각하면 거절하시기가 힘들죠. 어린이집에서 엄마가 오기만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 아...마음이 아파서 말이 다 안 나와요.”(한숨)
치과에 애완견 동행 ‘민폐 환자’
“진료 받는 동안 데스크에 ‘우리 아기’ 좀 맡겨도 될까요?”
사람의 아기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문제는 사람 아기가 아닌 ‘애완견’ 얘기다. 애완견을 가족처럼 아끼는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병원은 공공장소. 그것도 의료가 행해지는 장소에 다른 환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이 애완동물을 동행하는 민폐 환자들 때문에 겪는 의료진의 스트레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다른 환자들도 있고 위생상 애완견을 병원에 데려오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엄청 불쾌해 하시며 가셨어요. ‘우리 아기를 맡길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 그런 것도 이해 못해 주느냐’고 하시더니 다음번엔 가방 안에 숨겨 오셨더라고요.”
치과물품 싹 쓸어 가는 ‘얌체 환자’
대기실에 환자들 마시라고 준비해 둔 커피믹스며 각종 티백들을 한 움큼씩 싸들고 가는 얌체 환자들도 단골 골칫거리다. 음료 뿐만이 아니다. 치과에 비치해둔 일회용 칫솔, 치실, 손세정제, 우산 등도 놓아두기가 무섭게 사라진다.
“저희는 믹스커피, 티백 등을 다 치우고 아예 원두커피 머신기로 바꿨어요. 칫솔 등 일회용품도 데스크에서 싹 치워버리고 대신 ‘필요하신 분은 데스크에 말씀하세요~’라는 메모지를 붙여 놨어요.” 좀 야박해보일 수 있지만 치과에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다.
“그런데 치과 원두커피기를 놓았더니 ‘치과 커피가 맛있다’며 가지고온 텀블러 가득 커피를 추출해 가시는 환자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러니 말 다했죠 뭐.”
서울의 모 치과에 근무 중인 한 스탭은 “사실 진료내용이나 진료비를 가지고 진상을 피우는 환자들에게는 차라리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대놓고 따지고 설명이라도 하면 되지만, 환자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의 경우 뭐라고 말도 못하고 속만 태우게 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자칫 ‘쪼잔하다’는 핀잔으로 돌아오거나 ‘불친절한 치과’로 낙인찍힐 우려 때문에 가슴에 담을 수밖에 없는 소소한 스트레스들이 사실 더 많다는 얘기다.
이 같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시원한 비책이 없을까.
전문가들은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환경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면서 “대책은 자신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병원 의료진들과 논의를 통해 문제를 직접 풀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럴 수 없을 경우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