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봉직의 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이 흘렀다. 동기들과 간간이 주고받는 근황 속에는 “누구는 벌써 어떤 술식을 했다더라”, “누구는 어디에서 얼마를 받는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섞여든다. 다른 동기의 빠른 임상 속도나 높은 급여 이야기에 스스로 조급해지기보다는, 이러한 상황이 묘하게 익숙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또래 친구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부분의 친구들이 수능 성적에 맞춰 바로 대학에 진학할 때, 나는 N수의 길을 선택했다. 20대 초·중반에 또래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있을 때, 나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치과대학 학부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시 필기를 준비하던 시기에 누구는 벌써 2회독을 끝냈다는 말이 돌았고, 원내생 실습을 돌 때는 누군가 특정 과의 정해진 점수를 훨씬 상회하는 정도로 채웠다고 하는 식이었다. 그때도 나는 동기들보다 한 템포 늦은 위치에 있었지만, 초조하다거나 다급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태 살아오면서 남들과 같은 속도로 갈 수 있었던 몇 번의 분기점이 있었다. 수능 재수를 마치고 정시 지원했던 학교로부터 합격증
벌써 수어(手語)를 공부한 지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매주 월요일, 수요일마다 치과 진료가 끝나는 대로 경기도수어교육원을 찾아가 수어를 배우고 있는데, 수어를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다소 부끄럽지만 ‘대단하다’거나, ‘약자를 생각하는 모습이 멋지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수어를 배우게 된 건 그렇게 약자를 위하고 대단한 모습으로 비춰지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치과대학 원내생 시절 나에게 치과병원은 출퇴근이 가능한 군대와도 같았다. 병원에서 원내생은 마치 부대에 갓 전입한 이병과도 같았는데, 숨 막히는 진료 현장에서 같은 조 동기들과의 이야기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조용하면서도 부산스러운 상황에서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간 삽시간에 주목받기 일쑤였고, 이 때 불현듯 든 생각이 ‘수어를 사용하여 대화를 하면 어떨까’였다. 예상외로 수어는 굉장히 훌륭한 대화 수단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조 동기들과 ‘필요하다’, ‘끝나다’, ‘아직’ 등의 간단한 수어 위주로 사용하였는데, 사용하기 전과 비교하여 의미전달이 명료하고 신속해 매우 만족스러웠다. 특히, 소아치과에서 수어는 매우 유용했는데,
몇 달 전 아무나 붙잡고 드라마 뭐 보냐고 물으면 열에 일곱은 중증외상센터라 답할 정도로 붐이었던 것 같다. 드라마에 메인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백강혁 교수는 죽어가는 환자도 벌떡 살려내는 그야말로 현대판 화타 그 자체다. 그리고 함께 등장하는 ‘1호’ 양재원 전공의는 어딘가 부족해보이지만 백강혁 교수 옆에서 점차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회차 내내 보여주는데, 두 사람의 케미를 보고있자면 어느새 시즌 끝까지 정주행해버리게 될 정도로 보는 사람을 드라마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것 같다. 지난한 공부와 실습 끝에 올해 드디어 치과대학을 졸업했고,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무사히 합격했다. 당초 계획은 졸업까지 달려온 나 자신을 위해 몇 달간 휴식기간을 가진 뒤 페이닥터를 시작하는 것이었는데, 졸업하고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지인으로부터 수원에 페이닥터 공고가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집에서 불과 15분 거리임을 알고는 당장 이력서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원장님으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회신을 받았고,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지도교수님과 선배들이 항상 입이 닳도록 해주신 말이 있었다. 수련 없이 바로 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