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을 관통하는 독립기념일 대로(大路)는, 오뉴월에 연수정 빛 꽃이 피는 가로수 하카란다(Jacaranda)가 화려하다. 핑크궁전으로 꺾이는 어귀에 한 남자가 열 마리쯤 개를 몰고 간다. 몇 년 전 파리에서 처음 본 반려견 도우미(Pet-sitter)다. 늑대가 조상인 개에게서 질주와 추격 즉 사냥본능을 빼앗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도심에 사는 반려견은 달릴 기회를 얻기가 힘드니까, 건강유지와 정서적인 안정을 위하여, 산책을 시켜주는 배려다.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죄로 경제적인 고통을 겪지만, 유럽 보다 더 유럽답다는 아르헨티나의 문화유산은 이어진다.
작년 가을 벼르고 벼르던 아프리카 여행 중에, 케이프타운에서 개 산책 도우미를 다시 만났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반려견 교육이 의무적(Compulsory)이라 한다. 일정기간 훈련을 시켜서 불합격이면 재교육을 하고, 그래도 합격하지 못하면 안락사(Euthanasia)를 권한다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의 진실과 화해위원회라는 선견지명이 답보(踏步)하면서, 인재의 탈출(예; 일론 머스크) 등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세계최초로 심장이식을 한 나라요 표준영어(King’s English, 여왕 재임 중이면 Queen’s)가 남아있는 문화국가의 뿌리는 살아 숨 쉰다.
증조부께서 남기신 용운동 집과 전답을 수용당하여 주택단지로 바뀌자, 선친이 수구초심으로 분양받은 62평에 집을 짓는 바람에(1985), 필자도 서둘러 이웃 두 필지를 사들여 곁에서 모시게 되었다. 집을 지킬 번견(番犬)을 기를 작정으로 마당을 넓게 설계하여 40여 평 잔디밭을 만들었다. 먼저 3개월 된 진돗개 돌비를 들이고 이듬해에 하얀 진순이를 짝 지우면서, 아이들의 성화로 고양이까지 데려오니, 명실 공히 반려동물 가정이 되었다. 계획대로 두 눈 색깔이 짝짝인(Odd Eyes) 귀염둥이 고양이는 집안에서, 두 진돗개는 마당에 묶어 키우되, 해가 지면 목줄을 풀어주고 필자가 출근하면 기사와 뒷산에 올라 마음껏 뛰어다녔다. 일 년이 채 못 되어 늠름하게 자란 돌비는 몸집이 두 배나 되는 동네 짱 도사견을 물리쳤고, 인근에 소문이 나서 씨받으려는 견주가 줄을 서고, 기사는 수수료까지 챙겼다는 루머(?)가 돌았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 K-돌풍으로 한국인의 머리와 솜씨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세계 수출시장의 절반이 넘는 자주포(自走砲) K-9을 개발한 한화는 선견지명이 있었나 보다. 오래전에 본 경찰견(犬)영화 제목은 발음이 개, 즉 Canine과 같은 K-9이었는데, 미 경찰견 부대 이름이 K-9이라고 한다. 치과에서 케나인은 송곳니를 의미하고, 개의 조상이 바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주 무기로 삼는 늑대다.
스무 마리쯤이 무리를 지어 사냥으로 살아가는 늑대는, 서열이 분명한 가족관계에 얼굴은 자존심으로 가득하다. 필자의 편견인지 모르나, 조상의 모습을 많이 간직한 셰퍼드나 진돗개는 주인에 충직하면서도 자존심이 강하고 영리 용맹한데 비하여, 마치 분재(盆栽)한 나무처럼 인간 욕심(?)에 맞추어 약하고 작은 체격으로 개량된(?) 애완견들은, 대부분 주눅이 든 표정에다가 인간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다.
우리나라에 1 내지 2인 가구는 65%요 아파트 인구가 64%라는데, 공식적인 반려동물의 누적등록 수는 350만이라고 한다. 결국 반려견 태반은 운동부족에 성인병 후보군으로 짐작되는데, 왜 펫시터들을 만나기가 힘들며, 매년 십만이 넘는 유기(遺棄)견들을 어떻게 설명할까? 겉으로는 반려자라고 병원과 미용실을 부지런하게 드나들면서, 속으로는 나의 애완용 소유물이라는 인식에 갇혀 사는 사람은 없는가?
사람이든 짐승이든 제 대접을 받아야만 당당하게 품위를 지키고 제몫을 해낸다.
반려라는 낱말에는 ‘동격(同格)과 배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남아공의 안락사 권고는 비정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기 힘든 사회성 교육(Social Education) 탈락자를, 흉악범에게 그리하듯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배려다. 평균수명이 현격하게 달라 이별은 정해져있는 이치요 일방적인 관계는 불가피하다고 해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외로운 현대생활에, 체온과 위로를 주고받을 반려동물은 전에 없이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 고급 호텔이나 값비싼 장례식에 앞서 ‘반려’에 걸 맞는 ‘배려’를 먼저 생각하자. 반려동물의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위하여, 최소한 산책길에 펫시터가 넘쳐나는 ‘K-반려나라 만들기’로 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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