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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컬처, 또는 K-파탈(擺脫)

임철중 칼럼

검은 피부의 미군 해병대 상사가 젓가락 두드려가며 구성지게 뽑아내던 ‘동백 아가씨’ 얘기를 쓴 적이 있다(뽕짝의 세계화: 1996. 5. 치과타임스). 삶의 고달픔이 배인 흑인영가나 재즈와 우리나라 한(恨) 문화의 닮은꼴을 들어, 뽕짝이 만국 공통음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꿈꾸어본 것인데, 실제로 꿈이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깜짝깜짝 놀라는 요즘이다. 케데헌이 대체 뭔고 했더니 K-pop Demon Hunters란다.


예전에는 줄임말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어 머리만 조금 갸웃하면 정답이 나왔지만, 요즘 유행어는 땅띔도 못한다. 세대 간 소통부재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줄임말이 아닌가 한다. 케데헌을 꼼꼼히 들여다보자. 으뜸가는 특징은 국민개병제가 심어놓은 군대 집단문화와 품세(品勢)우선의 태권도를 결합시킨 칼 같은 군무(群舞)다. 자세가 제대로 나올 때까지 대한민국에 와서 먹고 자며 배워도, 몇 년으로는 어림도 없다.


필자가 알기로는, 서양 8음계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본 엥카(演歌)와 전통적인 타령조의 5음계가 얽히면서, 묘하게 떠는 ‘악극단 창법’이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었다. ‘홍도야 우지마라’ 3막 5장 막간에 한곡씩 등장하던 3절짜리 유행가에는, 전주곡-간주곡마다 4분의 4박자 아코디언이 따라오고, 흥 오른 관객이 “쿵짝 쿵짝 딴 따라 잔짠” 제멋대로 날리던 추임새에서 ‘딴따라’라는 이름이 붙었을 테다. 박자가 강세가 되자 뽕짝-뽕짝으로, 다시 6, 70년대 ‘춤바람’을 타고 도롯도로 변했다가, Foxtrot이라는 본명을 되찾아 ‘트롯’으로 진화한다. 트롯이라는 이름이 본시 말(馬)의 빠른 두 박자 걸음걸이를 말하니까(Walk, Trot, Canter).
이처럼 독특한 창법과 신명나는 리듬과 칼 군무가 어울려 K-pop이 완성된다.

 

라때, 즉 우리 시절에는 비록 노래방은 없었지만 요즘보다 훨씬 더 잘도 모였고, 앉은뱅이 막걸리 상에 둘러앉아 한 곡씩 돌아가며 노래 부르기가 메인 게임이었다.


당연히 노래는 뽕짝 일색인데, 음정 박자 또박또박 맞춰 부르는 필자 차례가 되면, 반도 못 가 “군가(軍歌) 부르냐?” 하며 웅성웅성했다. 뽕짝에는 진짜 잼뱅이니까.


중고교 때 전봇대에는, “성인가요, 보름이면 명가수가 됩니다”라는 광고가 흔히 붙었다. 학원에서 먼저 가르치는 것은 ‘ㅏㅔㅣㅗㅜ’ 모음에 ‘ㅎ’ 붙이기란다.


‘아하 에헤 이히 오호 우후’ 하는 발음이 꺾기의 기본이니까. 둘째, 소절 네 마디가 끝날 때마다 축 늘어져 ‘떠는’ 발성이다. 아마도 바이올린 운지법(Fingering)보다 음정변화의 폭과 뜨임새가 두세 배인 가야금의 농현(弄絃)쯤 되어야, 뽕짝의 떨림을 따라간다. 끝으로 ‘마음 놓고 망가지기’야 말로 신의 한 수다. 음악시간에 배운 음정 박자는 깨끗이 잊고, 몸과 맘 모든 걸 감정과 흥과 신명에 맡겨야 한다.


바로 이 망가짐이 무장해제, 즉 파탈의 끝판 왕이 된다. 파탈 하면 곧 ‘형식’을 버리는 것이니, 겉치장 훌훌 벗어던지고 어울려야지 혼자 내숭 떨어 흥을 깨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의 주특기 어울림과 쏠림이 집약된 ‘음악학적 반칙’이 바로 뽕짝이니, 딴따라-뽕짝-도롯도처럼 낮추어 불리어졌던 것 아닌가?

 

흑인(Afro-American)의 재즈 못잖은 한과 떨림의 노래가 포르투갈 파두(Fado)다. 대서양의 칼바람과 거센 파도 속으로 떠난 배가 돌아오지 않으면, 척박한 땅에서 기다리던 아내는 망부석의 과부가 된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검은 배(Barco Negro)’를 들어보면 누구라도 그 사연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역사를 보면 ‘대항해시대’의 주역이었던 인물들은 대체로 힘들고 어려웠던 지방에서 나왔다.


고난과 굶주림 그리고 전쟁과 같은 고통이 뭉뚱그려진 한(恨)은, ‘새로운 전진과 도약의 산파’이기도 하다. 헤일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른 우리의 트롯에는 세계화할 수 있는 자산이 풍부하다. 그러나 트롯은 파두처럼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에도 아직은 멀었다. 성장 중인 아이의 성대를 억눌러 꺾기에 동원하는 장사 속을 벗어나, 창법의 정상-정형화, 그리고 우리 고유의 한과 신명을 살리는 노랫말의 문학적인 가다듬기 등 장기적인 투자에 관심을 갖자.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