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쿵 와르르 르르..... 외톨이로 남아서 하늘에 걸려 옛 영광을 지키던 작은 집 한 채가 쇠공이에 맞아 무너져 내린다. 블로크 찍어내던 허허벌판에 굉음을 울리며 붉은 황토 파헤치고 저마다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면서 쑥쑥 솟아오르던 지구관 우주관 생명관. 섬나라 군화에 짓밟혀가며 지지리도 못 살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당당한 과학의 나라라고 만방에 선포한 ‘93 과학 엑스포. 세계 첨단을 날아오르려던 이름도 낯설은 자기부상열차. 달리고 싶다던 녹슬은 철마처럼 덩그마니 정거장 하나 남기고 갔지. 콘크리트 빌딩들이 밀고 들어와 엑스포 성전(盛殿)은 속세에 물 들어도. 한빛탑과 단둘이서 오뉘처럼 버티더니, 너마저 아우에게, “부탁해!” 하며 가느냐? 부수자 없애자 철폐하고 청산하자! 착한 우리 백성이 왜 이리 모질어져, 부수기 공화국이 되었단 말인가? 부수면 남는 것은 부스러기뿐인 것을. 서러워 말라, 우리가 너를 기억하리라, 테크노폴리스로 우뚝 선 대전, 주춧돌이 되어준 매그레브 옛터에, 빛나는 에피타프를 세워 주리라. 시작(詩作) Note 1993년 8~11월까지 대전에서 세계과학엑스포가 열렸다. 잿더미에서 일어나 전자제품에서 탈것까지, 대한민국이 40년 만에
로마식 표현으로(The First Citizen of Rome) 대한민국 제1 치과의사인 협회장이, 무릎 꿇고 큰절하는 사진이 잇따라 치과계 언론 1면을 장식하였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삼만여 회원의 믿음을 저버린 31대 이상훈 협회장은, 큰절이 아니라 삼두고구두례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난 제70차 정기대의원총회는 이상훈 집행부가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직접 편성한 첫 총회였다. 큰일을 맡은 공인으로서 꺾일 때 꺾일망정 끝까지 맞서든가, 명색이 러닝메이트 선출직인데 바이스들과 합의하여 회장단(1+3) 일괄사퇴를 하든가, 최소한의 뒷마무리를 해 놓았어야 한다. 뱀이 허물 벗듯 이불에서 몸만 빠져나가니 이부자리가 지저분할 수밖에 없다. 본래 러닝메이트라고 하면 회장 유고 시 수석부회장이 직을 승계하고, 정관대로 ‘잔여임기’에 따라 절차를 밟으면 된다. 재선거를 하면 선관위는 그냥 두고 정관의 정신에 맞춰 선출직인 회장‘단’을 뽑는 것이 옳다고 본다. 선거가 끝나면 전 회장단은 물론 임명직인 이사들도 당연히 일괄 사퇴하여 새 집행부를 구성해야 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정관 미비 사항을 보완하겠지만, 경우의 수를 모두 명시할 수는 없으므로, 최소한의 책임감을
소공동 수련의 시절, 협회 배지(badge) 만들어 달기가 한때 유행하였다. 인상을 뜨고 납형을 다듬어 금 백금 은과 구리를 7:1:1:1로 섞은 합금으로 주조한다. 주조선(sprue wire)을 조금 갈면 그대로 핀이요, 리도카인 앰풀의 고무 패킹은 훌륭한 받침대가 되었다. 치과용 합금은 강하고 은은한 귀티가 나서 선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날개 달린 천사 위에 KOREA와 DA를 돋을새김 한 둥근 모양은 디자인 자체로 개성이 있고 아름답다. 천사는 어쩐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飛天像)을 연상하게 한다. 에밀레종에 있는 두 쌍의 천녀(天女)는 꽃과 구름 위를 날면서 무릎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의사학(醫史學) 강의에서 들은 기억에 따르면, 성 아폴로니아는 치아를 뽑히는 고문 속에서도 믿음을 굽히지 않고 순교하여, 치과 환자의 수호천사가 되었단다. 치과신협 이사장 시절, D 합금회사에 자비(自費)로 주문한 순금배지를 신협 임원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로도 썼다. 그렇게 정들었던 배지가 어느 날 갑자기 총회 결의로 바뀌었다. 전에도 종종 논의는 있었는데, 일본 모 출판사의 로고와 닮았다는 것이 바꾸
선친은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4회셨다(1929-1933). 가끔 절대다수인 일본인 틈에서 소수 조선 학생이 겪은 어려움을 회고하셨다. 조선 학생들이 축구팀을 만들고, 유난히 갑질을 하던 일본 학생을 옥상으로 불러내 무릎을 꿇리니까, 싹싹 빌더니 바로 교장에게 고했다. 양쪽을 불러 얘기를 모두 듣고 난 교장은 먼저 괴롭힌 일본 학생에게 더 큰 징계를 내렸고, 그 후로 조선인을 얕보는 갑질은 사라졌다고 한다. 협회란 무엇인가? 면허권을 가진 정부 당국은 지시나 감독을 하지만, 수많은 전문 직업인을 일일이 직접 관리할 수 없으므로, 정부가 인정하는 단체에 위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전문 직업인 또한 회원의 요구를 수렴하여, 관에 전달하고 협상할 언로가 필요하므로, 결국 ‘협회’는 쌍방 간에 꼭 필요한 소통의 공적 창구가 된다. 1981년 당시 지헌택 협회장은 협회의 생일을 제정하고, 최초로 창립 60주년 협회사(史)를 발간하였다. 몇 년의 우여곡절 끝에 대의원총회에서 1921년 10월 2일 안(案)을 만장일치의 축복 속에서 통과시킨 쾌거였다. 공교롭게도 지회장과 이종수 의장이 동시에 연임(連任)한 첫 해여서, 두 분 사이에 쌓은 ‘케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2 영어교과서에서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 Nathaniel Hawthorne, 1850)’을 읽으면서 러시모어의 조각이 떠올랐다. 필자는 보글럼의 네 대통령 조각 계획이, 붓다·노자에 필적하는 은유의 작가 호손의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믿는다.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 마을을 벗어나 보지 못한 어니스트에게, 인디언 부족(다코타는 본래 Sioux족의 땅) 대대로 전해오는 전설은 하나의 신앙이었다. 전설은 언젠가 이 마을에서, 뒷산 절벽에 자연이 빚어놓은 거대한 석상과 닮은 지도자가 태어나리라는 예언이었다. 성실한 전도사로 늙어가는 동안, 크게 이름을 떨친 마을 출신 재벌·장군·정치가들이 숱하게 다녀갔지만, 어니스트는 석상과 닮은 인물을 찾지 못한다. 어느 날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한 시인이 주민들에게 연설을 하다가, 마침 석양에 비친 주름진 백발의 어니스트를 바라보며 외친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씨야 말로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 어니스트는 시인과 함께 집에 돌아가면서, 여전히 나보다 더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큰 바위 얼굴로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성실과 정직과 겸손의 예찬이다. 필자는 칼럼 ‘큰 바위 얼
춘추 전국시대는 주(周)의 쇠퇴에서 진(秦)의 통일까지 550년간이다(770-221 BC). 봉건제도의 약화로 사회는 극도로 혼란하였으나, 무수한 영웅호걸이 종횡무진 활약한 무대요, 뛰어난 학자가 온갖 사상을 꽃피우고 결실시킨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명국에 묘수 없고 묘수는 난국(妙手·亂局)에 나온다는 바둑격언은 과연 명언이다. 문명사회의 묘수란 바로 춘추전국시대 같은 혼란기에 나타나 역사의 흐름을 바꾼 불세출의 영웅과 천재 아닌가? 서구사회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백과사전적 천재가 많았고, 프랑스대혁명 전후 루소로부터 나폴레옹까지 현인과 영웅들이 등장한다. 전제군주의 눈으로 본다면 프랑스대혁명의 시작은 미국 독립전쟁의 ‘모방범죄’였다. 형 미국은 자유민주주의공화국 건설의 외길을 곧장 걸어갔고, 아우 프랑스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유럽 제국에 혁명을 수출하려는 열정과 이에 결사 항전하는 전제군주들의 충돌로, 제3공화국이 서기까지(1870)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연출한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의 영웅들은 80여 년에 이르는 부침과 명멸(浮沈·明滅)로 인하여, 잘 잘못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고 국민의 애증도 교차한다. 이에 비하여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ers
전설의 히치콕 감독은 ‘현기증(Vertigo)’의 참패를 만회하려고, 다분히 흥행을 의식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를 만든다(1959). 우연히 첩보전에 말려드는 아마추어와, 오만한 북구 금발미녀의 커플은 그의 전매특허다. 고해상도와 와이드스크린을 접목한 첨단기술인 비스타비전은, 35mm 네가 필름을 두 배나 잡아먹는 낮은 가성비 탓에 단명에 그쳤지만, 필자가 기억하는 비스타비전영화에 졸작은 없다. ‘Vistas of Orthodontics(展望)’가 서울대학교 교정과 초독회(抄讀會)의 첫 교재였던 때문일까? 이 책은 영화 ‘북북서’처럼 치과교정학의 고전이 되었다. 미국영화연구소 선정 위대한 미국배우(1926~60) 50인 중 남성 2위인 캐리 그랜트도 좋지만, 러시모어 산 화강암절벽에 새긴 네 대통령의 거대한 조각상을 넘나들며 벌이는 추격 장면은, 보는 사람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한다. 보글럼과 400여 조각가들이 만든(1927~41) 이 국립기념물에는, 워싱턴·제퍼슨과 링컨·루즈벨트의 네 대통령이 있다. 이들이 250년 역사를 통 털어 면면히 존경받는 이유는 위대한 업적에 못지않은 국민들에게 남긴 정신적인 유산에 있다.
가난한 이웃을 보고, “돈을 찍어서 나눠주면 될 것 아닌가?”하고 의아해하던 초딩 시절이 있었다. 사자 무리는 힘센 수컷이 지배한다. 사냥은 암사자들에게 떠맡기고 맛있는 부위는 먼저 차지하며 짝짓기도 독점한다. 눈에 거슬리면 폭력으로 다스린다. 한참 힘이 오른 젊은 수놈이 동료를 부추긴다. “옆에서 지켜보니 별 것도 아닌데, 내가 한 번 도전할 테니 좀 도와줘.” 대략은 실컷 얻어맞고 꼬리를 내린다. 쉽게 풀어본 ‘세대 갈등’이다. 대장은 새끼를 물어 죽이려는 외부의 적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하며, 발권력(發券力)을 남발하면 화폐는 신뢰를 잃어 휴지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 대장이 늙고 이가 빠지면 무리에서 쫓겨나고,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젊은 사자가 그 지위를 승계한다. 효(孝)라는 개념은 사회의 발전·경제적인 여유·수명 연장 등, 인간만이 성취한 ‘문화’와 분리할 수 없다. 성숙기간이 긴 인간이 낳고 키워준 1세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다. “자식은 내리사랑, 손자는 치사랑”이라고 한다. 부모에게는 맏이보다 뒤늦게 얻은 막내가 더 애잔한데, 3세를 보는 할아버지 눈에는 맏손자가 더 귀하고 든든하다는 얘기다. 먼저 아들의 경우다. 첫째
대전 만년동 스타벅스 앞 06시 40분. 젊은이 대여섯이 줄을 섰다. 가방이나 배낭에는 노트북이 들어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왼 종일 앉았어도 눈치를 주지 않으니, 쾌적한 독서실(?)에 좋은 자리 잡으려고 일찍 나와 기다린다. 몇 분 걸으면 서구보건소 버스정류장. 새벽 교통인구가 적고 배차시간이 떠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시계를 60년 전으로 돌려보자. 황금노선 홍릉 - 노고산 1번 버스 종점은, 현 신촌 로터리에서 서강대 쪽에 위치한 비포장 허허벌판. 비오는 날이면 신촌이 아니라 진촌,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동네였다. 새벽 여섯시면 버스타려는 시민이 백여 미터씩 줄을 섰다. 70여 명쯤 꽉 차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여차장이 “오라이!”, 차체를 탕탕 두드리면 출발이다. 버스는 처음 몇 정거장을 난-스톱으로 달린다. 다음 버스는 반만 태우고 출발하여, 이대 앞과 굴레방 다리에서 각각 20명씩을 더 태운다. 숨이 막혀 비명이 터져 나오면, 버스는 갈 짓 (之)자로 곡예운전을 한다. 젓가락 고르듯 승객을 이리저리 휘두르면, 신통하게도 다음 정류장에서 몇 사람 더 탈 공간이 생긴다. 능구렁이 기사님 비장의 특기다. 새벽 네 시 통금이 풀
대전예술의전당 후원회를 창립하면서 졸저 ‘I. O. U.’를 냈다(2004). 대전광역시치과의사회장 때 영시(英詩)와 수필을 엮은 ‘첫사랑’(1993)으로 시작하여, ‘오늘부터 봄’은 대전치과신협 초대이사장(1996), ‘거품의 미학’은 협회 대의원총회 의장(1999)에 취임할 때 출판하였다. 자신의 포부와 정견을 홍보하려는 선거 입후보자의 통과의례, ‘출판기념회’와 비슷한 맥락이다. 다른 점이라면 필자는 출판시점이 취임 후 3개월쯤이고, 최종 발송까지 모든 비용은 자비였으니, 선거운동이나 정치자금 모금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제적인 부담은 컸지만, 회무를 추진할 때에 회원들이 베풀어준 이해와 협조를 되돌아보면,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은혜를 입었다. ‘차용증서(I Owe You)’라는 책 이름은, 캐리 & 론의 노랫말을 빌려 불가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풀어낸 수필 제목이었다. 장형은 부모(長兄父母)요 부모만 한 자식 없다는 말은, 인물비교가 아니라, 가없는 헌신의 내리사랑 얘기다. 공기와 물처럼 내 전부가 그 안에 잠겨있어, 떠나가신 뒤에야 비로소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님 은혜는 살아생전에 갚을 길이 없고,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만기
해군 군의관 전역 후 초창기 충남대학병원 치과 과장을 맡고,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12시까지는 선친의 임 치과에서 교정환자를 진료했다. 대위 4호봉을 조금 넘는 박봉이지만, 동문 주니어 스태프들과 어울려 즐겁게 보낸 5년이었다. 오후 4시 외래가 끝나면 테니스로 땀을 흘리고, 병원 앞 슈퍼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에 이어 은행동 정종대포가 풀 코스였다. 임상연구비 연 백만 원은 사실 생활보조금인데, 논문 제출이 의무였다. ‘구저부(口底部)에 발생한 피부양낭종(Dermoid Cyst) 적출 증례’를 써서 용감하게(?) CPC에 발표했다가, Skin Inclusion을 따지는 조직병리학 교수에 진땀을 뺐다. 평소 큰소리 치는 내과는 직접 열어본 외과에 밥이요, 외과는 세포로 확인하는 조직병리에 밥이라는 속담과 나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고, 다음부터는 주제를 치과 영역으로 돌렸다. 덕분에 남은 ‘하악 제3대구치 발육에 관한 X-선학적 연구’는 작으나마 보람 있는 논문이었다. 당시 성년 전후의 연령감정 수요가 많았다. 남자는 병역과 청소년 운동선수의 한계연령, 여자는 동갑이나 연하남을 기피하는 사회적 통념 탓이었다. 천여 장의 필름에서 제3대구치 발육상태를 10개 패턴으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순위는 사람에 따라 바뀌어도, 으뜸가는 불가사의는 역시 인간 자체일 것이다. 인간을 정의하려는 노력이 인문학(文史哲)이며 그 중심에 역사가 있다. 역사를 읽는 현실적 단위인 국가 흥망을 보면, 멸망 원인은 내우외환(內憂外患), 즉 내우가 앞선다. 가정에서 국가까지 경계해야 할 대상은 항상 ‘내부의 적’인 것이다. 협회장 재선거 과정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달은 교훈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처럼 수익구조가 없는 전문인 단체는 소송 같은 파상적인 소모전 공격에 대책이 없다. ‘미 투’의 물결로부터 “독버섯은 침묵과 방관을 먹고 자란다.”는 교훈을 보지 않았는가? 구성원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는 무관심을 기화(奇貨)로, 목소리 큰 자가 휘젓고 다니는 일방통행을 방치하면,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른다. ‘닥치고 소송’의 재발 방지에 전 회원이 뜻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선거를 물고 늘어져도 문제지만,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협회의 작은 통제력마저 훼손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요양기관이나 영리병원 등 대세의 흐름을 앞두고 심각한 재앙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사무장치과 체인이 ‘연쇄소송’을 ‘학습 모델’로 삼아,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