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 가는 인사동 끝나가는 길 여기쯤이라는 다실 부근까지 구경 삼아 걸어와 뒤돌아보니 이만하면 됐다 길손 속에 끼어 이런저런 구경하다 길 끝 이만큼에서 잠시 멈추고 서 있는 일이 어디 흔하랴 지나오며 만난 이에게 눈인사 없어도 아직 길은 조금 남아 있어 여기쯤에서 뒤돌아보는 이곳 생각 없이 그냥 좋다 정재영 원장 -《조선문학》, 《현대시》 -한국기독시인협회 전 회장 -한국기독시문학학술원 원장 -국제펜 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 특별위원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조선시문학상> <기독시문학상> <장로문학상> <총신문학상> <중앙대문학상> <현대시시인상> <미당시맥상> <펜문학상> 수상 -《흔적지우기》 《벽과 꽃》 《짧은 영원》 《소리의 벽》 《마이산》 등 15권 -《문학으로 보는 성경》 《융합시학》 《현대시 창작기법 및 실제》
다 비운 사람 화장을 하면 다비(茶毘)라 하여 영롱 사리 나오고 버리지 못한 생각 불태우면 뼛가루 재만 나오는가 산에 갇힌 새벽안개 아침 햇살에 밀려 온종일 떠돌기 하던 마음 저녁노을 핏빛 불길에 타는 당신 고이는 생각은 무엇이 될까 정재영 원장 -《조선문학》, 《현대시》 -한국기독시인협회 전 회장 -한국기독시문학학술원 원장 -국제펜 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 특별위원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조선시문학상> <기독시문학상> <장로문학상> <총신문학상> <중앙대문학상> <현대시시인상> <미당시맥상> <펜문학상> 수상 -《흔적지우기》 《벽과 꽃》 《짧은 영원》 《소리의 벽》 《마이산》 등 15권 -《문학으로 보는 성경》 《융합시학》 《현대시 창작기법 및 실제》
동정호를 지나치니 삼국지의 본향인 형주고성(刑州古城)이 다가온다.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였던 형주 시내 입구에는 거대한 관우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높이가 한 20m쯤 되는 것 같았다. 적벽대전 후 관우가 주둔했던 형주성은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삼국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아직 석회가 개발되지 않아 쌀로 떡을 쪄서 모래와 섞어 시멘트처럼 벽돌 사이를 채우고 성벽을 쌓았다. 그래서 나중에 벌레가 먹어 수시로 보수공사를 했다고 한다. 촉(蜀)과 오(吳)는 힘을 합쳐 적벽대전을 승리로 장식했으나 서로 형주를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형주는 장강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중원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였다. 처음엔 촉의 영토였던 형주는 기습작전으로 오의 수중에 떨어지고 관우가 최후를 맞았지만 이후 60여 년간 서로 싸운다. 점점 강해지는 위(魏)를 앞에 두고 싸움을 계속하던 촉과 오는 차례로 멸망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형주를 지나 만 하루를 더 나아가니 2011년에 완공되었다는 거대한 삼협댐(산샤댐)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이 삼협댐은 높이가 130여 미터에 이르는 낙차를 극복하기 위해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갑문을 거쳐 배가 상류로
기다림은 빠르고 편하게 오르고 내리기 위한 승강기 문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빠른 비행기도 타기 전까지 탑승구에서 기다려야 한다 간단히 요기하는 라면도 물 끓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압력솥 다 된 밥도 김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의 시간은 빨리 바르게 당도하기 위해 시간을 쌓아 곧은 다리를 만드는 기간이다 기다림은 서리꽃 속 매자나무 붉은 열매가 겨울 산토끼 빨간 눈이 되어 뜨거운 눈빛으로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는 일이다 정재영 원장 -《조선문학》, 《현대시》 -한국기독시인협회 전 회장 -한국기독시문학학술원 원장 -국제펜 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 특별위원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조선시문학상> <기독시문학상> <장로문학상> <총신문학상> <중앙대문학상> <현대시시인상> <미당시맥상> <펜문학상> 수상 -《흔적지우기》 《벽과 꽃》 《짧은 영원》 《소리의 벽》 《마이산》 등 15권 -《문학으로 보는 성경》 《융합시학》 《현대시 창작기법 및 실제》
하나, 대학 졸업 30주년 행사로 12년 만에 간 제주, 섬은 만물을 고립시키지만, 대신에 파도라는 고독을 키우고, 또 그 때문에 섬도 썸을 타고, 섬이 외톨이가 아니라, 열리는 시작이라 생각하면 자유다. 그러나 온통 트인 곳보다도, 관음처럼 틈으로 보는 것이 더 자극일 때, 나도 그렇게 태어났음을 아는 것, 일출봉도 위가 아닌 밑에서 태어났듯이. 둘, 섬(島)은 물에 둘러싸인 육지다. 섬은 그린란드보다 작고 사람이 살 수 있거나 경제활동이 가능한 암초보다 큰 것으로 오스트레일리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고, 그린란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섬으로 약속했다. 섬을 재테크 용도로 구매하는 부자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섬과 육지는 형제지간이다. 섬은 어떤 대륙에도 속하지 않는다. 섬은 자기만의 생태계를 갖고 있다. 섬 중 자연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이스터다. 섬도 반도나 곶을 뚫어 만든다. 섬 중 화산섬(제주·울릉·독도)과 산호섬은 양도(洋島)다. 군도(郡島)와 읍면도(邑面島)를 제외한 것이 낙도(落島)다. 섬만 다니는 여행도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섬이 인간들 때문에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섬을 만들기도 한다. 이익을 위해서
구화산을 거쳐 만 하루를 더 상류로 헤쳐 가니 황학루, 악양루와 함께 중국 강남 3대 누각 중의 하나인 등왕각(滕王閣)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등왕각은 당 고조 이연의 22번째 아들이자 당태종(唐太宗) 이세민의 아우인 이원영이 그 지역 목사로 봉해져 부임한 후 8층으로 지은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강변 누각이다. 첫 건축 후 29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다. 이원영의 후임 목사였던 염백서가 베푼 연회에 참석한 시인 왕발(王勃)이 지은 시가 장원으로 뽑혔다. 왕발은 수나라 말의 유명한 수학자 왕통의 손자로서 당나라 초기(初唐) 4걸(傑)이라 불리는 당대의 대표적 시인이었다. 약관 1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조산랑(朝散郎)이 되었고, 그 후에 괵주참군(虢州參軍)을 지냈다. 왕발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참신하고도 건전한 정감을 노래해 성당시(盛唐詩)의 선구자가 되었고 특히 7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났으며 시문집으로 《왕자안집(王子安集)》 16권을 남겼다. 그는 불과 26세였던 676년 8월, 교지땅(交趾令)에 좌천된 부친을 찾아가다가 배에서 떨어져 장강에 빠져 죽었다. 여기에서 당시 왕발이 염백서에게 올렸던 <등왕각서(滕王閣序)&
무기를 녹이자 미제 검은 안경을 끼고 온 세상을 바라보았다 사막은 온통 금가루 욕심이 날 법도 하더라 점령군이 메고 있는 총알은 알사탕으로 보이더라 그것을 받아들고 떠난 영혼들 약자의 한을 품고 가더라 색안경을 벗자, 온통 핏자국 “총질은 이제 끝장내자” “무기를 녹여 다리를 놓자” “오아시스에 손을 씻자” 악몽의 이명증에 시달리던 전상자들은 저렇게 소리치고 이 세상에 평화의 눈길이 쏟아져 전쟁의 불길은 꺼져 가고 있다.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
1. 침묵 위주치명(爲主致命, 주를 위해 목숨을 바침)!,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오지 못하는 프랑스 알프스(희고 높은 산)의 그랑드 샤르트뢰즈(Le Grande Chartreuse) 봉쇄 수도원를 담은 영화 위대한 침묵(Into the Great Silence, 2005년, 162분)의 첫 장면은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다. 모든 종교의 수도원들은 도피가 아니라 구별이다. 수도원은 절제, 기도, 청빈과 무소유가 기본이고 제일 규칙은 Silence다. 침묵과 묵언은 모든 종교(유불선 포함)의 기본원칙이다. 짙은 침묵은 최소의 소리(수도복, 성경, 바람소리…)도 증폭시킨다. 종일 침묵과 관상기도(Contemplation)로 하나님을 만난다. 침묵은 내면의 응시다. 새벽기도(Martins)를 모두가 잠든 12시 5분에 올린다. 수도사들은 수방(修房, Cell)에서 홀로 은수(隱修)한다. 그 안은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있다. 의탁하지 않는 삶을 산다. 물질보단 정신적인 가난을 추구한다. 밝은 색 카울(Cowl, 고깔이나 두건 달린 겉옷)을 입고 있다. 스님들의 배코머리 정도는 아니지만 기계식 바리캉(Bariquant)으로 삭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군의관을 마치고 처음 치과의원을 개업했던 1986년까지 해외여행이라곤 꿈도 못 꾸었다. 개업 이듬해에 가까웠던 친구 부부와 태국 파타야를 다녀온 것이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물론 그 전에 고등학교 수학여행지와 신혼여행지로 일종의 해외(?)인 제주도에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고등학생 때의 제주도 수학여행은 말 그대로 악몽이었다. 44년 전 어느 가을날이었다. 목포에서 제주를 왕래하던 여객선 ‘가야호’가 제주에서 목포로 돌아오던 중에 기관 고장으로 동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도 추자도 근해였던 것 같다. 600명이나 되는 우리 일행을 싣고 배는 정처 없이 섬 사이를 헤집으며 떠다녔다. 몇 시간을 파도에 흔들리며 떠돌자 모두가 심한 뱃멀미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날이 어두워진 후 출동한 해군함정에 의해 다시 제주항으로 예인된 다음 날 새벽녘까지 온통 공포와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아마도 ‘세월호’ 사건의 전주곡은 아니었나 싶다. 1987년의 첫 태국 해외여행 이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남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세계 곳곳을 두루 다녀왔다. 특히 ‘대한영상치의학회’를 따라 인도와 남아프리카 일대를 여행한
조선 후기에 태어 난 달항아리(백자대호)는 귀족보단 서민, 세련보단 풍성, 남성보단 달을 품은 여성이다. 입(口)은 눈썹 모양으로 크루아상(Croissant)을 탄생시킨 초저녁 초승달로 태동한다. 진정한 비밀처럼 입술도 없는 듯 짧게 시작한다. 어깨는 반달(Young moon)이다. 입에서부터 목(頸)이 없이 시작하다가 해산(解産)달의 배처럼 팽창한다. 혜곡은 무심한 아름다움의 시작이라 했다. 몸통은 꽉 참(滿)의 보름이다. 점점 헤어지듯 벌어진다. 저마다 세로 또는 가로로 성장한다. 그러다가 두개의 반원을 차낸 후 접합한 흔적을 남긴다. 풍만함은 절정에서 쉬었다가 다시 하강한다. 허리의 하현은 활시위(弦)가 아래(下)로 가는 신호다. 빛이 약간 어두워진다. 윤회(Samsara)를 구현하고 묵직한 비대칭도 시연한다. 여기를 지나면 매처럼 날카롭게 하강한다. 저부(바닥)는 마지막인 그믐 그리고 안정을 위한 숨고르기다. 시작(입)과 끝(굽)은 형제의 높이다. 입에 비해 굽 지름이 8할 정도 작다. 그래도 짐을 지는 대속의 십자가가 되었다. 꾸밈없이. 이런 달항아리(Moon jar)를 가슴에 하나씩 소성(燒成)하여 삶을 넉넉하게 채우기도, 넉넉하게 비우기도… 송선
박용호 원장 박용호 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장(전) 한국문인협회 회원 치과신문 논설위원 치의학 박사 수필집 《와인잔을 채우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치과가 미국 일반의학계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치과의사(구강외과 의사)들이 악안면 손상 환자 처치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공식적으로 5000여 명의 치과의사들이 참전하여 안면골 골절수술 2000건, 하악골 총상 1123건, 골이식 125건을 기록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2차 대전 중에는 성형외과, 구강외과, 간호사, 마취사로 구성된 악안면손상 외과팀이 야전병원에 배치되었다. 전쟁 후, 전쟁외과의 발전에 자극되어 치과의사들 측에서 새로운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이 정립되었다. 이는 1946년 창립된 미국 구강외과학회의 요구 조건을 이수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1950년 미국 육군 치무대장 Smith는 피츠버그 치과대학 및 가맹병원과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이때 배출된 치의들이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한국의 구강악안면외과 발전에도 기여한다. 이병태 著 《나는 사람이 좋다》에서 이런 일화가 자세히 서술된다. “정순경 박사가 군의관 파견 교육을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