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의 대부분은 말로 시작하고 말로 하루를 마감한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말은 내가 하지만 듣는 것은 상대방의 몫이기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의도가 정확히 상대방에게 전달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을 하고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은 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말로 마음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반면 말로써 의도치 않은 오해와 편견을 만들 수도 있다. 근간의 베스트셀러 ‘언어의 온도’에서 저자는 말과 글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언어에는 따뜻함과 차가움, 적당한 온기 등 나름의 온도가 있어서 언어의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의사를 전달하는 상대방과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적당히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주지만 차가운 언어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반감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 세상살이의 어려움에 지칠 때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기도 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한 글로 위안을 얻는다. 이러한 따뜻한 언어는 한순간 상대방의 마음에 위안과 위로를 줘서 상처를 치유해 주기도
'공공의 딜레마’란 것이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지만 막상 이용할 일은 적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경찰, 소방관, 의사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공공을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막상 범죄든 화재든 질병이든 발생하지 않을수록 좋은 일이다. 의료계는 아픈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보다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초기에 진료를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국민들에 필요한 기본적인 치료에 대한 보험정책은 저수가 정책이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적정 진료비는 보험으로 편입될 때마다 항상 더 낮게 책정되곤 한다. 보험수가는 의료계가 양보하는 대신 더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합의된 것이다. 또한 수가 역시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용역 결과와 가입자 등이 참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저가 진료비가 진리인 양 호도하는 것은 오랜 조사를 거쳐 신중히 결정한 국가 기관들을 비하하고 정당한 비용으로 양질의 진료를 수행하는 다른 동료치의들을 모독하는 일이다. 가격만으로 의료를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환자는 기계가 아니며 의료인은 기술자가 아니다. 모든 환자마다 상태가
한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일들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아주 특별한 이벤트 등 기억할 만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그저 일상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그런 날이 되어가고 있다. 결혼기념일, 생일, 명절 등등…. 일상에 유독 올해는 모든 것들이 특별해지고 있다. 아마 처음이 아니라 한사람을 보내는 마지막이라는 의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고 엄마가 되면서 아주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내게 선물해 주셨던 집처럼 최선을 다하고, 가족들이 울타리 안에서 서로가 이해하고 편안한 가정을 꾸려보고자 노력하였다. 아이들은 돌이 되기 전부터 우리 집 여행 역사의 구성원으로 편성되어 험난한 시절을 보냈다. 그 험난한 첫 나들이는 1월에 태어난 딸아이가 맞이했던 첫 번째 어린이 날이었다. 갓 백일을 지낸 딸에게 어린이날을 기념해 주고 싶은 아주 아주 초짜 부모는 사람은 많고, 볼거리는 별로 없는 복잡했던, 놀이동산 그것도 어린이날의 놀이동산을 찾아 갔다. 아마도 그날 딸은 먼지와 소음을 선물로 받았고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너무 너무 뿌듯했다. “아! 우린 좋은 부모야. 어린이날 아이들이 좋아하
열대우림의 스콜처럼 폭우가 내린 주말 동안 九旬의 원로선배님과 불의의 사고를 당한 선배님이 우리 곁을 떠나셔서 마음 속 하늘에는 며칠 후까지도 비구름이 낮게 떠 있었다.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미소와 음성이 뇌리에 있어선지 가슴 한 구석이 많이 아파왔다.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은 알고 보면 실은 거의 일상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자주 일어나지만, 그 파동은 번번이 새삼스럽고 거센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기란 수월치 않다. 주위가 낯설어 보이고 자꾸 외로워지는 이런 느낌을 슬픔 말고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울적함을 달래려 동작대교로 한강을 건너 퇴근하기로 했다. 蓮步渡河라고 이름까지 붙여놓은 내 작은 의식인데, 항상 효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 개인 뒤 석양이 조연일 땐 금상첨화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다리 북단 쪽에선 미군기지 담벼락을 오른쪽으로 내내 끼고 돌며 한참을 한 줄로 올라가야 하는 아무리 봐도 이상한 진입로인데 차들은 별로 급한 기색이 없다. 급한 사람이야 이태원부근에서 이미 반포대교 쪽으로 내 뺐을 것이다. 지루함에 두리번거려봤자 볼거리도 별로 없는 좁은 길에 가다 서다 소걸음에도 얌전하기만 하다. 이촌동 쪽에서 오던 차들이 끼어들기
이솝 우화는 동물이 의인화되어 만들어진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있다.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 사자와 생쥐, 도시 쥐와 시골 쥐. 모두 보편적 진리와 올바른 삶에 대한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다. 이솝 이야기는 세계 어린이들의 도덕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는데, 치과대학 학생뿐만 아니라 치과의사를 위한 덕성 교육을 위한 교재로도 삼을 만하다. 의료 윤리에 대한 사회적 경종이 울려 퍼지는 상황에서 이솝 우화는 누구나 알지만, 치과에서는 누구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이솝 우화는 다양한 갈등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치과에 뜻밖의 지혜를 선사할 수 있는 지침서다. 전국에 만 육천여개의 치과가 도시와 시골에 있다. 어디에 있든 도시와 시골을 오고가면서 치과의사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시골에는 정이 있고 도시는 삭막하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 다시 이솝 우화로 돌아가서 도시 쥐는 부족함에는 불만을, 풍족함에는 예찬을 한다. 반면 시골 쥐는 부족함과 안전함에 나름 만족하며 산다. 또한 시골 쥐는 도시 쥐와 비교도 하지 않으며 비교를 당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다. 개원의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서 개원을 하건 의술을 행하고 인
이번호부터 그리스 로마 원전을 연구하는 이기백 학당장이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을 주제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진한 ‘고전의 향기’로 독자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철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이나 최초에나 놀라워함으로 인해서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현상에 대해 놀라워한다고 해서 곧바로 철학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신화도 놀라워함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는 놀라운 자연 현상을 초자연적인 신을 도입해 허구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진정 철학이 시작된 것은 이 같은 신화적·종교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자연 현상을 자연적인 요소들로 설명해내는 합리적 사고에 의해서였다. 고대 그리스는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철학을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합리적인 의학의 전통도 확립하게 된다. 곧 히포크라테스의 코스학파는 질병을 초자연적인 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신체를 이루는 자연적인 요소로 설명해냄으로써, 주술적·종교적인 의술이 아닌 합리적인 의학의 전통을 확립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의학은 철학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캘수스에 의하면, “애초에 치료의 학은 철학의 일부로
한 평생을 사는 동안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린시절 딸부잣집 셋째딸로 유복하게 평탄하게 살아온 나는 1986년도 결혼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고 6년 동안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1992년 귀국을 했다. 다행히 겉으로는 아무런 표시는 나지 않지만 그 죽을 고비를 넘긴 그 충격은 아직까지 나에게 “외상트라우마”로 나의 뇌 깊은 한곳에 남아 한번씩 나를 과거로 돌아가게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정말 기억하고 싶지않은 경험들… 그 3번의 죽을 고비 중 하나… LA 흑인폭동사건. 1992년 4월 29일 저녁. 졸업이 불과 두 달도 남지않은 터라, USC Dental Clinic은 clinical requirement를 채우려는 student doctor 환자들로 야간 진료는 늘 북적였다. 나 또한 여느때와 같이 Nursery에서 하루종일 있는 5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나의 진료 cubicle에 앉혀두고 야간진료를 한참 하는 중이었다. 늘 즐거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원내 스피커에서 “진료하던 모든 작업을 멈추고 병원을 떠나라”는 다급한 소리의 원내방송이 연겨푸 스피커로 통해 흘러 나왔다. “All Doctors!! Evacuate the hospi
지난 8일 토요일에 타계 하신 지헌택 선생님께는 돌아가신 이를 생각하여 슬퍼하는 추도 대신 돌아가신 이를 간절히 생각하는 추모의 글을 전하려고 합니다. 90여년 평생에 훌륭한 일을 너무나 많이 하시고 오신 곳으로 돌아가셨으니까요. 지난 4월 7일, 문안전화를 큰 따님이 받아 건네주어 나눈 선생님의 육성이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한번 찾아뵌다고 한 것이, 적어도 백수는 하시리라 믿었는데 그만 영정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선생님을 몹시도 존경하는 김규문 학형으로부터 첫 부고 문자를 받고는 멍하니 몇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올리버(APDF 사무총장)에게 부음을 전했습니다. 다음 날 받아본 올리버의 조문에 이어 스리랑카 가미니와 힐라리, 파키스탄의 알비교수가 조의를 전해왔습니다. 올리버 헤네디에게는 지선생님이 “brother”요, 우연인지는 몰라도 의사 따님의 사위는 한국인에 한복 입은 손녀 돌 사진을 품고 다녔습니다. 앞으로 인도에서 키키와 발리, 홍콩 웡과 제프리, 태국 피살과 포라니, 필리핀 디암포, 일본 쭈루마끼, 2009년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친선훈장’받은 몽골에서는 아말사이칸, 국제고아 처지의 대만 치과계가 국제사회에 복귀하는데 지선생님으로부터 결
곤도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1년 일본 쯔루미 대학에 유학을 한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쯔루미 대학의 교정과 외래교수이셔서 장기 안정을 보이는 증례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셨으니까요. 교정치료한 환자를 30년, 40년씩이나 오랫동안 관찰을 하고 그렇게 긴 세월에도 좋은 교합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2005년 한국에 귀국을 하고 2007년에 선생님께서 장기 안정을 보이는 증례와 그 비결을 책으로 내셨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감동적인 책이어서 한국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같이 알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여 한국어로 2008년에 번역을 하여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Muscle wins!의 교정치과임상, 2008년, 대한나래출판) 곤도선생님께서는 한국임상교정치과의사회의 초청으로 2007년에 한국에서 강의를 해주셨고, 외국의 연자를 두 번이나 초청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한국임상교정치과의사회에서 이례적으로 2009년에 한차례 더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강의를 할 때 제가 통역을 맡게 되면서 선생님과는 좀더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2011년에는 곤도선생님의 초청으로 선생님 댁에서, 한국인으로 저와, 중국교정의사
현재 만 65세 이상의 노인틀니 및 임플란트 건강보험 급여 시 본인부담금은 50%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과의원 진료의 본인부담금은 30% 정도인데 노인틀니 및 임플란트만 본인부담금이 50%에 달해 환자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의료의 접근성이 나빠지고 이용률 또한 낮아질 수밖에 없어 본인부담금 인하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는 노인틀니 및 임플란트 급여 시 본인부담금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는데 당시 김상희 의원은 객관적인 통계를 발표하면서 본인부담금 인하를 주장했다. 2015년 말 기준 노인틀니 및 임플란트에 대한 건강보험(의료급여 포함) 급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464만9568명의 대상자 중 44만4999명이 급여를 받아 급여율은 9.57%에 불과했으며, 이를 소득구간별로로 세분화하면 고소득층인 건강보험 10분위는 1000명 당 106명이 틀니나 임플란트 급여를 받은 반면, 최하위층인 의료급여 대상자는 1000명 당 74명만 급여를 받은 것으로 김 의원은 분석했다. 임플란트 시술의 경우 소득수준 최상위계층인 건강보험 10분위의 임플란트 급여율은 4.5%인데 비해 의료급여 대상자는 1.8%밖에 급
일반인이 해병훈련소에 입소하게 되면 노란색 명찰을 달고 철모 위의 노란색 번호를 가진, 구분되지 않는 훈병 중의 하나가 됩니다. 수많은 훈련과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빨간색 명찰을 달게 되며 해병대의 일원이 됩니다. 해병대만이 가진 빨간 명찰은 대한민국 해병대라는 자부심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2011년 해병대에서 총기사고가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병영 내에서 구타와 폭언, 욕설, 왕따, 기수 열외 등 가혹행위에 가담한 해병대 병사에 대한 처벌 중에, 해병대원을 상징하는 빨간 명찰을 일정기간 떼어내고 해병대사령부 직권으로 다른 부대로 전출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본 해병대 예비역 준장은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해병대 병사들의 가슴에 부착된 빨간 명찰을 뗀다 함은 그 병사에게는 명예적으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처벌이다. 이렇게 되면 빨간 명찰을 떼인 병사는 더 이상 해병의 일원이 아니요 죽은 목숨과 같은 치욕을 느끼게 될 것이고, 이러한 병사를 배출하게 된 지휘관 역시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할 군 복무 기록에 그 내용이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다.” 최근 시행된 의료현장에서의 명찰패용으로 의료계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치과의사의 명찰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