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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을 찾아

시론

화초를 가꾸는 일은 삶에 있어 크나큰 활력과 색다른 묘미를 안겨준다.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매일 관심을 기울이며 보살펴야 하고, 나날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애완동물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주기적으로 물주기와 병충해 예방을 위한 방제와 영양제 공급, 적절한 온도와 습도유지 그리고 통풍관리 등 나름대로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집집마다 혹은 사무실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향기와 함께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난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난은 서양란, 동양란, 풍란, 한란 등으로 나누고 그중에서 동양란은 또 중국, 일본, 대만, 한국춘란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한국춘란의 아름다운 특성 때문에 동양란에서 따로 분리해서 별도로 취급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한국춘란을 취미로 배양하고 있어서 한국춘란에 대해 조금 얘기해 보려 한다.

 

한국춘란은 늦여름부터 꽃눈이 생기기 시작해서 겨우 내내 꽃망울을 품고 있다가 이듬해 3월 전후로 해서 꽃을 피운다. 한 송이 난 꽃을 피우기 위해 7~8개월가량 꽃망울을 품고서 긴 세월 견뎌내는 산고의 고통이랄까... 이런 과정을 거쳐 봄에 꽃을 피워 한국춘란이라 한다. 한국춘란은 다시 화예품과 엽예품으로 나뉘는데, 화예품은 꽃이 예쁘고, 단정하고, 맑고, 깨끗하고, 단단한 화형의 좋은 꽃을 피우는 난을 최고의 난이라 평가한다. 게다가 맑은 홍색, 주금색(황금색), 황색, 자색과 같은 색을 겸하면서 잡티가 없는 난(색화소심)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엽예품은 잎을 보고 감상하는데 잎이 두껍고, 빳빳하고, 폭이 넓고, 끝이 뭉뚱하게 모여 있고(옥아있고), 잎에 줄이나 무늬가 들어 있으면 명품의 반열에 들어간다. 특히 좋은 잎 모양과 무늬를 겸해서 좋은 꽃을 피우는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난이 최고의 난으로 대우받게 되는데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한국춘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이유다. ‘한국춘란’으로 검색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좋은 난을 길러보고 싶은 마음이야 애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지금은 코로나사태로 등산이 어렵지만 예전엔 산속 어딘가에 주인을 기다리는 예쁜 난을 위해 주말마다 만사 제쳐두고 멀리 남해나 전라도 쪽으로 산행했는데 그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마도 골프를 처음 배울 때, 라운딩 전날의 기다림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일생일란(一生一蘭)을 위해 수도 없이 다니면서 모우고 모은 난들이 베란다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하지만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며 길러도 한 순간의 부주의로 고사되기가 일쑤, 동물이든 식물이든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애써 기른 난들이 떠날 때의 슬픔과 아픔... 그렇게 기른 난들이 다 자식처럼 소중한 난임에도 눈이 높아지고 타성에 젖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좋은 난의 기준이 가격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흔하다. 아무리 좋아도 희소성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낮으면 귀하게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난 자체를 즐기며 서로 교감을 나누며 위안을 얻어야 하는데 비싼 난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더 큰 위안이 되는 현 세태가 안타까울 때도 있다. 난과 관련해서 생계수단을 삼는 사람들도 많고, 고가에 거래가 이루어지다보니 재물의 차원에서 여겨질 수 있으리라. 다행이도 요즘은 한국춘란의 진정한 묘미를 알고 일반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배양하며 취미생활 겸 도시농사를 짓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코로나정국이라 한국춘란 전시장 가기도 쉽지 않아서 그저 난실에서 꽃을 피우는 난들을 바라보며 애정 어린 눈으로 교감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전라도 어느 섬에서 중투복색소심 한 터부리를 캤는데 전국이 떠들썩했다. 가끔 명품난이 발견되기도 해서 애란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도 했는데 그 가치는 웬만한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취미 삼아 난을 기르며 자식이 커가듯, 파릇파릇 난이 자라는 과정을 보면 하루하루가 즐겁다. 한국춘란과 함께 풍란의 맑은 꽃과 향기로 신선함과 감미로움에 취해 있으면, 힘든 요즘 세상에 위안을 얻을 곳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난을 바라보며 난향에 취해 향기로운 봄을 즐긴다. 사계절 생기 있는 난과 함께 우울할 때마다 의욕과 활력을 북돋운다. 매년 봄이 오면 한국춘란 전시장을 방문하여 앙증맞은 난을 보며 내 꿈도 함께 키운다. 모진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 난처럼 차디찬 어둠 헤집고 세상을 향해 뾰족이 고개 내밀어, 예쁘고 신비로운 꽃들을 내 마음속에서도 내 난실에서도 피우리란 희망으로... 새 봄을 맞아 대기실이든 거실이든 난향을 느끼며 눈과 마음의 위로가 되었으면...

 

 

니사금(尼師今)에 부쳐

 

오랜 기다림 홍조 띤 얼굴
흰 입술 내비치는 속살
때 묻을까 두려워라
모든 혼 흡입하는 그 얼굴 떠올리며
한없이 바라본다

 

마냥 들떠 온종일 내 가슴에
건강하고 씩씩하게 위세 넘치는 자태
세상에서 주목 받는
예쁜 꽃 피우는 최고의 홍화소심
애타게 기다린다

 

매일 교감하며 무수히 회자된
위풍당당
가까이 할 수 없는 황제의 예
고이 품어온 터질 듯 붉은 열기
이제야 터뜨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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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사금: 신라시대 왕을 칭하는 말, 여기선 필자가 배양하는 한국춘란 홍화소심의 예명.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