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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러운 아빠

Relay Essay 제2517번째

철없는 아빠로 살기로 마음먹었기에 엄마 몰래 라면도 끓여주고 아토피에 안 좋은 양파링도 가끔 사주며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항상 아들에게 묻곤 한다. “아들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답을 정해 놓고 물어본다고 생각했건만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엄마가 좋지.” 질문이 적절한 대답을 유도하지 못했기에 다시 물어봐야 한다. “아빠가 말이야, 엄마 몰래 일요일마다 라면도 끓여주고 아이패드도 사주고 했잖아. 다시 생각해봐. 아빠가 좋지?” 10살 먹은 아들은 잠시 생각하다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빠는 말이야. 좋고 싫은 게 아니라 부담스러워.” 묘하게 설득이 된다. 생각지 못했던 녀석의 표현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사람 보는 안목이 있어 인생 사는 데 어려움이 없겠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부담스러운 아버지가 있다. 초등학생 때(사실은 국민학생 때) 용돈 인상을 위해 기안문을 작성해서 오라고 하시고, 여러 근거들을 노트에 적어서 가면 자꾸 이런저런 이유로 안 된다고 하시고는 부담스러운 눈빛과 함께 엄마 몰래 몇 천 원을 더 쥐어주시던 그런 아버지가 있다. 대학시험 보러 갈 때 부담스럽게 내 손을 꼭 잡아주시고, 항상 전화할 때마다 “밥 먹었니?”라고 부담스럽게 물어봐주시는 그런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 지난 4월 아버지는 담도암 진단을 받으셨다. 처음 들었을 때 생소하기만 했던 진단명이 이제는 내 머릿속에 그득그득하다. 지난 4월 소화도 안 되시고 황달까지 있으셔서 동생이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담도암 진단을 받으셨다. 여러 검사를 계속할수록 기대와는 달리 의심 소견이 ‘가능성이 많은’으로 바뀌고, 결국은 확정 진단을 받으셨다. 자식이니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항상 되뇌어 왔건만 막상 내 차례가 되니 사나운 머릿속을 잠재울 수가 없다.

 

외롭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외롭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제일 외로울 수 있는 시기에 가장 가까이 하고 싶었고, 갑자기 외로워진 나에게도 응원하고 싶었다. 암 병원이라는 곳에 처음 가보고 세상에 암 환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데 놀라고 암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너무나 일상적이라는 데 다시 놀랐다. 돌아보면 그들도 일상적이고 의연하지 못하다면 그들의 삶을 경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위축된 눈빛을 감추려 일부러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바른 자세로 담당 교수님을 처음 뵙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깝다. 80세에 가까운 노인이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이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6월 초에 가능하다던 수술은 급하게 취소되는 환자가 있어 5월 초에 이루어졌다. 담당 간호사가 전화해서 5월 초에 수술이 가능하다며 바로 입원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전화를 받는 그 짧은 순간 여러 생각들이 머리와 가슴에 스친다. 다행이다, 라는 머릿속의 이야기와 혹시나 잘못되면 그나마 한 달이라는 시간도, 라는 가슴 속의 이야기들이 서로 부대낀다.

 

아버지는 지금 이 시간 그의 삶을 잘 운영하고 계신다. 열심히 걷고 계시다. 수술 탓에 소화기관이 많이 없어져 먹는 기쁨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생존을 위해 식전, 식간, 식후 소화제와 함께 탄수화물, 단백질 등을 인생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드시고 계시다. 그런 그의 노력들이 감사하다. 그리고 하루하루 세상의 모든 근심들과 싸우던 그때, 나는 늦둥이 둘째의 아빠가 되었다. 산술적으로 동적 유아기간이 10년 늘어난 것이다. 적어도 10년 더 누군가에게 부담스러운 아빠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더욱더 부담스러워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