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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갱년기, 그 후

스펙트럼

2022년은 갱년기로 보냈다. 직접 겪어본 갱년기는 심각한 번 아웃 내지는 급격한 노화와 같은 것이었다. 갱년기가 세냐 사춘기가 세냐,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갱년기가 그렇게 쉽게 볼 대상이 아니었다. 연말이 다 되어서야 겨우 기운을 차리고 산적한 일들을 처리하였다.

 

다행히 갱년기 증상들은 많이 사라졌다. 아침에 활기차게 집을 나서면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치료 계획을 세우면서, 임플란트의 위치와 각도를 잡으면서 임상가로서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끼고 있다.

 

갱년기를 겪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갱년기를 통해 노년의 삶을 살짝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갱년기 기간동안 노인 환자에 대해 많이 생각하였다. 노인 환자에게 치과 치료는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거동도 불편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사고력과 기억력도 쇠한 노인에게 치과 치료를 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성 통증과 우울로 지쳐 있는 노인에게는 입을 벌리고 고개를 돌리는 등 치과의사의 단순한 지시를 듣고 이행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치료에 대한 상담을 이해하고 주의사항을 숙지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노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 탓일까. 죽음이라는 시점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당장에 죽을 것처럼 아프고 우울하진 않았다.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난 하나의 생명체로서 살다가 언젠가는 나도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시점이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너무 꽉 쥐고 놓지 못하던 것들을 이제는 조금씩 내려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유해지는 것, 치과를 성장시키는 것, 내가 가진 생각들을 펼쳐 나가는 것...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목표들이, 노년과 죽음이 다가올 때에는 한 줌의 모래와 같은 것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갱년기 이전까지는 태어난 시점을 의식하며 살았던 것 같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어른이 되고, 가정을 이루고... 태어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해낸 일들을 추억하고, 앞으로 해낼 일들을 생각했다.

 

갱년기를 겪고, 죽는 시점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장성한 아이들을 출가시키고, 노년을 잘 대비하고, 마침내 노인이 되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사는 때가 올 것이다.

 

수렴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 줄 알아야 함을 깨닫는다. 일터에서 일구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성취하려면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현상 유지만 하기에도 치과 일은 많고 어렵다. 언젠가는 여유로운 때가 찾아올 것이라 믿고 노력해보지만, 계속 그렇게 사는 한 여유로운 때는 아예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꼭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은 조금씩 수렴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길고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내일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가족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끊임없이 눈을 맞출 줄 알아야 함을 깨닫는다. 평온한 노년, 그리고 이 세상과의 아름다운 헤어짐을 위하여...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