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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마취로 배우는 치과 마케팅, 우공이산(愚公移山) 현공등산(賢公登山)

Relay Essay 제2550번째

요즘 사랑니 발치를 위해서 수면마취를 찾는 환자들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치과 공포증이 있는 경우에만 주로 수면마취를 했었는데, 요즘은 내시경 검사를 할 때 수면마취를 선택하듯이, 좀 더 편하게 사랑니를 뽑고 싶어서 수면마취를 원하기도 한다.

 

며칠 전 일이다. 덩치가 좀 있는 20대 남자 환자가 수면마취를 위해 입원을 하였다. 통상적인 난이도의 사랑니 발치였지만, 환자는 겁도 나고 한 번에 4개를 다 뽑고 싶어서 수면마취를 선택하였다.

 

수면마취를 위해 수술장으로 환자를 옮기고, 환자 모니터링을 위해 심전도와 혈압,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장비를 부착하였다. 진정제인 미다졸람(Midazolam)과, 수면유도제인 케타민(Ketamine)을 주고 나니 환자는 약간 어지러우면서 잠이 온다고 했다. 수술 준비를 위해 수술포를 덮고 마취를 막 마쳤을 때쯤이었다.

 

환자가 덩치가 좀 있다 보니 치과용 체어가 조금 작았고, 그래서인지 환자의 팔이 자꾸 체어 밖으로 떨어졌다.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간호사가 환자의 팔을 올려주었지만 이내 다시 떨어졌다. 팔을 더 안쪽으로 올려주기도 하고, 인형을 잡아주기도 하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체어 옆 진료 테이블을 당겨서 팔이 떨어지지 않게 받쳐주었다.

 

그때였다. 환자가 진료 테이블에 있는 에어건에 손가락이 닿자 이를 만지려고 하였다. 간호사가 몇 번 제지를 했는데도 계속 손을 뻗어 에어건을 찾았다. 마치 에어건이 철책을 사이에 두고 헤어지는 연인의 손이라도 되는 듯 절절하게 손을 뻗어 에어건을 만지려 했다.

 

이건 막을 수 있는 의지가 아니다. 순간 나는 판단을 했다. 간호사에게 에어건을 쥐어주게 했다. 그리곤 환자에게 “아프면 여기 단추가 있으니 눌러요” 라고 말해주었다. 양악수술을 하고 나면 무통주사라고 불리는 자가통증조절장치를 쓰는데 환자가 버튼을 누르면 진통제가 들어간다. 에어건을 무통주사 버튼으로 설정을 한 것이다. 꿈속에서 상황의 반전을 노렸다.

 

수면마취를 하더라도 전신마취가 아니기 때문에 환자는 스스로 호흡을 하고, 어떤 때는 잠꼬대 하듯이 이야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는 짧은 대화도 가능하다. 다만 환자는 수면마취를 깨고 나면 그 상황에 대해 기억하지는 못한다. 주로는 미다졸람의 역행정 기억상실(Retrograde amnesia) 효과 때문이다.

 

이제 환자는 에어건을 만지작거리며 버튼을 찾으려 했다. 에어버튼과 주수버튼 두 개를 번갈아가며 만지길래, “오른쪽 단추는 많이 아프면 누르고, 왼쪽 단추는 조금 아프면 눌러요” 라고 말했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환자는 그 이후 손에서부터 안정감을 찾은 느낌이었고, 수면 중 사랑니 4개를 뽑는 동안 편안해 하였다.

 

만약 환자가 손으로 에어건을 만지려고 했을 때 이를 끝까지 제지하려 했으면 어땠을까? 물론 수면마취가 잘 되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 환자는 뭔가를 하고 싶은데 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계속 움직이거나 불안해했을 것이다.

 

환자가 수면마취 중 에어건을 만지는 행위가 의료의 본질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행위는 아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떠나 현상을 인정하고 따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마케팅에 적용해보자.

의료시장에서 대중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현명하지 않은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료는 일반 대중이 전문적 지식을 충분히 가지기가 힘들고, 설사 정보가 충분하다 해도 전문적 판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료에서 싼 것만 찾고, 의료비용이 비싸면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물론 의료의 본질에 있어서는 대중의 잘못된 판단에 편승하여서는 안 된다. 우공이 되어서라도 산을 옮기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경우에는 때로는 타협을 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양악수술’이라는 용어이다. 양악수술은 위턱과 아래턱을 모두 수술한다고 해서 둘 양(兩)자를 써서 양악수술이라 부르는데, 정식명칭은 악교정수술 또는 턱교정수술이다.

 

2000년 쯤, 이 턱교정수술이 강남의 대형성형외과와 일부 치과에 의해 상업적으로 악용되기 시작하면서 양악수술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마케팅적으로는 턱교정수술보다 대중친화적인 용어가 필요했고, 양악수술은 발음하기 쉽고 뭔가 입에 잘 붙는 용어였다.

 

처음 강남 병원들이 양악수술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을 때, 치과계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양악수술이라 용어가 의미도 불분명하고 너무 상업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의 흐름은 양악수술이라는 용어를 선택했고, 방송에서도 양악수술이라는 말을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때 치과계에서도 양악수술이란 이름을 인정하는 판단을 하였다. 환자에게 설명할 때도 턱교정수술보다는 양악수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심지어는 대한양악수술학회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양악수술이라는 용어를 치과계가 받아들임으로써, 치과계가 양악수술 시장에서 프레임을 빨리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악수술과 수술교정에 있어서 올바른 진료를 계속 해온 여러 치과 구강악안면외과와 치과교정과 선생님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양악수술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현재 양악수술 시장에서 강남 성형외과들은 후퇴하고 치과계가 올바른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다.

 

우리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본질에 대한 문제는 우공이 되어 산을 옮기더라도, 방법과 관련된 문제라면 때로는 흐름을 파악하고 이에 적응하여 산을 오르고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생각은 최근 ‘미용양악’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미용양악은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거나 크지 않음에도 미용적 목적을 가지고 양악수술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대해서도 긴 이야기가 있지만 지면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언젠가 이 내용에 대해서도 오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다려 본다.

 

 

※이 이야기는 진료 중 실제로 일어난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밝힌다.